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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세상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다

by 이든 Mar 16. 2025







나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작은 북카페의 사장으로서, 독서용품 및 문구 브랜드 디자이너로써, 4살 남자아이 엄마로서, 한 사람의 아내로서, 집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가정주부로써, 이것저것 공부하고 배우는 학생으로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의 페르소나를 갈아 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시작으로, 아이와 등원전쟁을 치르고, 가게로 출근해 책을 팔고, 책을 사고, 커피를 만들고, 문구도 만들고, 식물 관리도 하고, 가끔 손님들과 수다도 떨었다가, 도서관 납품도 하고, SNS 관리도 하고, 마케팅, 브랜딩, 디자인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정신없이 북카페 일을 하다 아이 하원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간다. 아이랑 놀다 밀린 집안일도 하고 밥도 먹고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제야 수업을 듣거나 미쳐 마무리하지 못한 가게 업무를 보고 잠이 든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내 삶의 모양이 이렇게 변할 줄 상상도 못 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7년 넘게 소속되어 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둬야 했던 그때의 나는 세상이 무너진 좌절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 전의 나는 하루 종일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무직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에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이돌을 쫓아다녔던…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꽉 채워진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햇수로 6년째 다니던 회사는 업무도 적성에 잘 맞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평생 여기서 월급이나 받아먹으며 지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게 되자 그 모든 날이 한낮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회사, 내 직장, 내 취미, 나의 시간...

식사 때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보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그동안 모아둔 미술도구들은 창고에 처박힌 지 오래고, 주말이면 키즈카페를 찾아다니고, 아이돌이 아닌 아이를 쫓아다녔다.




정신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 속에서 아이만 바라보고 아이만 생각하느라 다른 곳은 보지 못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앞을 보니, 내가 알던, 내가 살던, 나의 세상은 이미 손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떠내려가 버린 후였다.

회사 출퇴근, 사내 메신저로 회사 욕하던 동료들, 꿀맛 같던 반차 연차, 퇴근 후 자유로운 취미 생활,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하루,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꿈은 아니었나. 낯설기만 했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다 사라진 텅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내 삶이 폐허가 됐음을 느꼈었다. 부정적, 긍정적 의미를 떠나 문자 그대로의 폐허. 존재했던 것들이 모두 무너져 내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쓸쓸한 공간. 


내가 살던 세상을 잃었으니, 나 자신도 잃은 것이다. 이제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삶과 나를 잃었다는 생각에 분노와 억울함이 밀려왔다. 허탈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허무하고... 


그럼 나는 이제 누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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