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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엘 Feb 26. 2024

오늘도 미어지는 마음으로 빨래를 합니다

약간 격양된 듯,

큰 딸이 말한다

"엄마! 이 옷은 빨래할 때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되는 거야!"







며칠 전, 큰 아이가 교회 수련회 가서 입을 옷을 몇 벌 구입한 걸로 안다. 

수련회에 다녀온 아이는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져 15시간을 내리 취침했고

그 사이에 일이 터졌다. 


아내는 트렁크 짐을 열어 아이의 세탁물들을 베란다에 내어 놓았고,

집안에서 빨래 담당인 나는

자연스레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아이의 빨래를 돌렸다.

늘 하던 대로!


세탁까지만 성실했음 되었을 것을, 건조기 돌리는 일까지 성실해서

그 새 옷들을 모조리 건조기에 돌려버렸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여자옷들은 복잡하다. 뭐는 울샴푸, 또 뭐는 건조기 돌리면 안 되고..

헷갈리고 머리 아프다. 


이번 일도 잠깐 긴장을 늦춘 틈에 내가 자행한 일이었다.

  

15시간을 취침하고 일어나 외출을 준비하던 큰 아이가 바라본 광경은 

어땠겠는가.


애지중지 그 소중한 옷들이

줄어들어 사이즈가 작아진 형상. 

핏은 온데간데없고 쭈굴쭈굴해진 상황.

아이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엄청 크게 화를 낼 것 같은 상황인데도

큰 아이는 이런 상황 몇 차례 겪어봐서 그런지, 

분노하지 않는 모습이다. 


아니 

화는 나지만 화풀이를 하지는 않고

화를 꾹꾹 누르다 보니 억양에는 강세가 잔뜩 들어간,

말하는 모든 단어에 힘이 들어가 있다.


"엄마! 이 옷은 빨래할 때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되는 거야! 새 옷이잖아. 딱 보면 알지 않나"


"빨래는 아빠 담당이라니깐!"

아내가 건조하게 대답한다. 


"아니, 이게 이러면 진짜 안 되는 건데.."


'빨래는 아빠 담당이야"

아내가 날 쳐다본다. 


맞다.

빨래는 내 담당이다. 내 실수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하지만 용기를 내 본다.  





"큰 딸, 아빠가 빨래한 건데 뭐가 잘못됐어?"


내가 묻는데, 아이는 계속 엄마를 보며 얘기를 한다. 이제 좀 투덜대는 양상이다.

아내의 대응은 한결같다.

"아빠가 빨래 돌린 거야. 아빠한테 말해"


내 말을 못 들은 걸까? 아이는 계속 엄마에게 같은 말로 툴툴대고 있는데

아내도 화를 내지 않고 아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아내: "아빠한테 말해!"


나: "아빠가 한 거라니까"


천천히

아이가 몸을 돌려 내게 말하기 시작한다 

투덜대거나 툴툴거리지 않고 

아주 어렵게 본인의 요구사항을 얘기하는데,

아내에게 얘기하던 톤이 아닌 거다. 


"이 옷은 이러저러하니 앞으로는 저렇게 이렇게 해줘"

;

;

엄마에게 말하는 톤과 내게 말하는 톤이 다르다. 


'음.. 날 어려워하는구나'


순식간에 가슴이 찡하고 아프다. 


큰 아이는 날 어려워한다. 






양육기준 세운다고 큰 아이 키우면서 좀 엄했다. 

최근에는 아이에게 두어 번 피드백을 받았었다.

"아빤 너무 극단적이야"


아직 개선하지 못한 거다. 


이런 미묘한 순간에

아이의 몸이 반응한 거다. 

'아빠는 편하지 않아.'라고..


마음이 아프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나도 내가 이런 아빠가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큰 아이에게 나는 늘 따뜻하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길 꿈꿔왔다. 

정 반대인 지금 내 모습에 

다시 쥐구멍을 찾고 싶다. 


시간만 지났지,

세월만 흘렀지,

네 몸집만 커졌을 뿐이지.

아빠가 널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은 그대로인데..

내 관점이, 내 말들이 쌓이고 쌓여

네가 아빠를 대할 때 여전히 편하지 않은 거구나..


큰 아이가 열여덟이 되었다. 

지나온 세월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겠는가. 


나도 노력했었다. 아이가 어렸을 적 인자한 아빠가 되고자 많이 노력했었다.

나름은 좋은 아빠가 되려고 신경 써왔고 노력했던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 건 최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고등학생에 이르면서 

몇 가지 이슈들이 있었고, 나는 인자하지 못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을 세워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보통스러운 이슈들이었을 것이다.

진학, 문화, 친구..

심각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심각하지 않고 보통스럽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 모든 것들에는 흔적이 있다.


아빠를 대하는 어려움에 아픔의 흔적이 보인다. 


애써 침착하게 말하는 큰 아이를 보니

눈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리다.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듯 갑갑하다.





큰 아이가 건조기로 인해 줄어들어 사이즈가 작아진 옷들을 

둘째에게 권한다.


"핏이 망가지긴 했지만 사이즈는 맞네"


아무렇지 않게 본인의 신상 옷들을 동생에게 건네고 입혀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나는 작아지고

큰아이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어제  이 일이 있고

아직 큰 아이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리고 

아빠가 많이 사랑해. 


네가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하는 시점이 

너무 빨리 다가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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