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다닌 회사를 나왔다.
더 많은 선택을 하기 위해.
나는 대기업에서 수소전기차 개발자로 일했다. 지난달, 드디어 10년 근속을 이뤄냈다.
그리고,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10년 전 입사 연수 사진을 보니 옅게 미소가 지어진다.
퇴사 날 퇴근길 가장 먼저 한 일은 머리를 다듬는 일이었다. 그다지 덥수룩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평소보다 조금 더 짧게 잘라낸 모습이 어색했지만 좋았다. 퇴사 후 내게 일어날 큰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그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벗어내었다. 평소라면 오후 2시쯤 멍하니 일어났을 텐데, 그날은 오전 10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내 속의 넘치는 에너지가 무엇이든 하고 싶다고 나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평소 숙원사업이었던 탄천을 걸었다. 처음에는 10킬로미터, 다음 주는 20킬로미터를 걸었다. 원래 내가 체력이 이리 좋았었나 의심이 될 정도로 나는 건강했다. 그동안 하루 3시간 깨어있기도 벅찼던 내 저질체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나는 최근 번아웃을 경험했다. 아무리 쉬어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고,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정강이 근처에는 생전 처음 보는 붉은 발진도 났다. 많은 직장인들이 경험하는 대표적 질환인 무기력증, 우울감 등도 보너스로 추가다.
업무 과중, 관계, 미래 불확실성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쉽게 피로해지니 잠을 깨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운동은 뒷전이었고 시간이 나면 잠자기 바빴다. 나를 망가뜨리기 딱 좋은 루틴이었다.
일단 살기 위해서는 이 사이클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직장이 주는 안정감과 높은 급여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다. 매년 성장하는 회사에서 내 미래는 보장된 듯 보였다. 현재의 안락함이 내 두 손과 발, 그리고 머리, 영혼까지 묶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내겐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선택이 늦어지면, 나는 조만간 5인실 병동에서 여생을 편히 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눈앞의 이익 비교보다 더 큰 관점으로 계산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분석해봤다. 과연 내 미래는 보장되어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그 일이 돈이 될까. 나는 언제 가장 즐거운가. 돈을 많이 벌면 즐거울까. 거의 1년간의 고민 끝에,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회사의 발전과 나의 발전은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회사가 커질수록 업무는 세분화되고, 나의 일은 좁고 깊어진다. 실제로 나는 쉴 새 없이 바빴지만, 내 영역은 점점 더 좁아져갔다. 회사는 나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나는 그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제품을 연구 개발하는 일이 좋았다. 그런데 직급이 높아질수록 연구보다는 관리업무가 늘어났다. 이건 내가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어느새 선배보다는 후배가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교육 업무까지 늘어났다.
나의 하루는 24시간인데, 내 머릿속은 240시간씩 소모하는 것 같았다. 퇴근해서도 늘 일을 계속하는 기분이었다. 회사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난 10년간, 나는 늘 지쳐있었고 작아져만 갔다.
지난 과거들을 돌아보니, 나는 글 쓰는 일도 좋아했고, 실험하는 것도 좋아했고, 특허 발명하는 것도 좋아했고, 돈 버는 것도 좋아했고, 강연하는 것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회사를 대체해 버리자.
나는 그 첫걸음을 시작에 옮겼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밤마다 설레는 미래가 그려져서 잠이 오질 않는다. 비록 이뤄지지 않더라도, 지금 이 과정이 너무 행복하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하려 한다.
할 수 있다. 잘 된다. 잘 안되더라도 괜찮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