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기관 중에서도 특히 노인주간보호센터는 남자요양보호사를 구하는 것이 매우 흔한 일입니다.
노인주간보호센터의 특성상 스타렉스 같은 큰 차를 운전할줄 알아야 하고 무거운 어르신이나 짐을 들거나 남자 어르신 목욕 등의 일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노인주간보호센터도 이용자가 늘어감에 따라 남자요양보호사를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요양보호사를 구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남자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경우가 흔치 않고, 따더라도 대부분 가족요양을 하거나 보수가 적다보니 다른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인이 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 분께서 한 남자요양보호사를 조심스럽게 추천해주셨습니다.
"센터장님, 제가 아는 사람 한명 있는데 한번 만나보실래요? 겉모습은 좀.. 그래도 일은 잘할 거예요"
겉모습이 좀 그렇다는 말이 그때는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몰랐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본 순간 그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큰 키와 덩치, 그리고 강한 눈매.
길에서 마주치면 눈 피하고 지나갔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분과 눈을 마주치지 않게 시선을 아래로 깔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나도 이런데 어르신들이 무서워하지 않으실까? 직원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고민 끝에 정중하게 돌려보내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그 분은 마치 저의 이런 반응을 예상한듯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인상과는 다르게 예의있는 모습과 진중한 태도에 놀랐고 다음 한 마디가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 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말에 같이 일을 해보기로 하고, 추천해준 지인에게 감사의 전화를 했습니다.
"이 분 첫인상은 정말 무서웠는데요. 얘기 나눠보니, 참 사람이 괜찮더라고요.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랬더니 지인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아, 센터장님 사실 예전에 좀... 조직에 몸 담았던 친구예요. 지금은 손 씻고 정말 착실하게 살고 있고요. 사람은 진짜 괜찮습니다. 믿고 써보세요”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이 현실이 되자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래, 누구든 두 번째 삶을 시작할 자격은 있지'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처음 며칠은 직원들도 어색해했고, 어르신들도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그는 기타를 참 잘 쳤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의 경계심도 풀겸 노래교실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타 반주를 하게 했습니다.
70~80대 어르신들이 마이크를 잡고 트로트를 부르고, 그는 뒤에서 반주를 맞춰주며 박수를 보냈죠.
"어머니, 오늘은 날씨가 참 좋죠?"
"아버지, 점심 많이 드셨어요?"
인상이 험악한 그가 누구보다도 어르신께 먼저 다가가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은 묘한 울림을 줬습니다.
하루는 저와 함께 어르신을 병원에 모셔다 드리던 길이었습니다.
길이 좁은데다가 어르신을 태워 천천히 가다보니 뒷차가 계속 경적을 울렸습니다.
꽤나 신경이 쓰였지만 무시하고 마침내 큰 길에 들어서는데 기다렸다는듯이 거칠게 앞을 막더군요.
운전석에서 내린 젊은 남자가 우리 차 문을 툭툭 두드렸고, 선생님이 창문을 내리자 씩씩대던 그 젊은 남자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아.. 죄, 죄송합니다."
그 남자는 황급히 돌아가 차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조용히 뒤에 타고 있던 어르신이 웃으며 말하셨죠.
"이 선생님 있으니까 든든하네"
사실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이나 마실길에 나설 때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뒷차입니다.
어르신들께선 거동이 불편하시다보니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러다보니 뒷 차가 빵빵거리거나, 창문을 내리고 화를 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상황이 되면 운전석에 앉은 저희도, 어르신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는 그럴때마다 항상 조용히 차에서 내려서 뒷 차로 다가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타고 내리는 것이 느립니다. 조금만 양해부탁드립니다"
그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운전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오히려 사과를 하곤 했습니다.
센터 안에서도 그의 험한 인상이 빛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센터 이용자 중에 가끔 기분 따라 소리를 지르고 선생님들께 손이 먼저 나가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어느날 한 어르신이 다른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손찌검을 하는 모습을 보더니 그는 어르신 앞에서 조용히 자세를 낮추고 말했습니다.
"아버님, 선생님들이 마음에 안드시거든 다음부턴 저를 때려주세요. 그다음엔 같이 웃자구요"
희한하게도 어르신은 그의 말에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센터 안에서 모두가 믿고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 일을 하며 센터에 녹아들었던 그가 하루는 저에게 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센터장님... 췌장암 판정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아야해서 일을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편찮으시다는 말보다 더 깊은 충격이었달까요.
그만큼 그는 어느새 우리 센터의 중심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언제 진단 받았어요?"
"얼마 전에요. 일단 수술 날짜는 나왔습니다"
"그럼, 왜 이제 얘기했어요?"
"걱정하실까 봐요. 최대한 끝까지 하고 싶었는데.."
그가 담담하게 말하는데, 목 끝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렇게 참고 있었구나, 아팠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기타 치고, 어르신 손 잡아주고 있었구나.
며칠 뒤, 직원 회의에서 그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거짓말이시죠... 선생님 안 계시면 어떡해요..."
그 말을 들은 요양보호사 선생님 몇 분은 눈물을 훔쳤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정이란 게 참 이상하죠. 어느새 우리는 그에게 마음을 많이도 주고 있었더군요.
어르신들께는 차마 제대로 이야기를 드리지 못하고 그저 사정이 생겨 시골로 내려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직접 손편지를 써주는 어르신도 있으셨고 울면서 가지말라고 손을 꼭 잡아주는 분도 있으셨습니다.
마지막 근무날, 그는 기타와 마이크를 들고 마지막 노래교실을 열었습니다.
어르신 중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꼭 다시 돌아오셔야 돼요. 나랑 찔레꽃 부르기로 했잖아요"
그날, 평소 눈물 한 방울 없던 그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수술은 다행히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현재는 통원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안부 전화도 주시고, 센터에 가끔 봉사하러 오시기도 합니다.
근육과 살도 많이 빠져 우락부락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지만, 웃으며 어르신들을 대하는 모습은 예전과 똑같습니다.
그분을 보며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우리 센터 직원은 전직 조폭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따뜻한 요양보호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