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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도둑이 삽니다.

by young

치매 어르신들의 흔한 문제 행동 중 하나는 ‘도둑 망상’입니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면, 곧잘 누군가가 훔쳐갔다고 여기시는 거죠.

이러한 망상은 단순한 착각의 차원을 넘어서, 관계와 신뢰를 무너뜨리는 큰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저희 센터의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시는 어르신들 중에도 이런 도둑 망상을 겪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한 분은 요양보호사가 장롱에 넣어둔 영양제를 훔쳐 먹었다며 보호사 교체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요양보호사들도 일주일을 못 넘기고 전부 도둑으로 몰리며 쫓겨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 해도 통하지 않아서, 결국 저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해당 어르신 댁에 들어가는 요양보호사에게는 가방을 들고 가지 말라고 하고 가능하면 주머니가 없는 바지를 입고 가도록 당부했습니다.


아예 ‘도둑질을 할 환경 자체’를 없애버리는 방법을 쓴 겁니다.


신기하게도 그 뒤로 어르신의 의심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요양보호사분들이 퇴사하지 않고 일주일 이상 버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지요.


하지만 모든 어르신이 똑깉은 방법으로 개선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가 자기 지갑에 넣어둔 10만 원을 훔쳐갔다고 격하게 화를 내셨습니다.
가방도 없고, 주머니도 없는 복장을 한 요양보호사에게 '집 안 어디에 몰래 숨겨놨다"고 소리치시며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셨습니다.


하필이면 그날은 어르신이 병원을 가야하는 날이라 요양보호사가 겨우겨우 설득해 우선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그렇게 병원 진료가 끝나고 집에 오시더니 갑자기 서류를 급하게 뽑아야 한다며 요양보호사에게 주민센터까지 함께 가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요양보호사의 근무 시간이 다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저는 어르신의 기분을 달래는 게 우선이라 판단하여 추가 수당을 드릴 테니 잠깐만 더 함께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더 큰 화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민센터에 도착하자 어르신은 갑자기 요양보호사를 붙잡더니 주민센터직원에게 큰 소리로 말하셨습니다.


"이 년이 내돈 훔쳐갔으니 어서 경찰에 신고해!!"


직원은 당황한 끝에 경찰까지 부를 수밖에 없었고, 이내 도착한 경찰은 요양보호사의 설명을 듣고 어르신께 요양보호사가 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어르신은 끝내 믿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어르신은 화를 내며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셨고, 다음날부터 요양보호사에게 문도 열어주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서비스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종료되었지요.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이 어르신은 베트남전에 참전하신 후유증으로 PTSD가 있으셨는데, 다른 센터에서 서비스를 받다가 저희 센터로 옮기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어르신댁을 방문했을 때, 어르신은 서랍 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서 보여 주셨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 종이는 이전 센터에서 어르신께 보낸 본인담금 명세서였습니다.


어르신은 낮은 목소리로 저에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거, 나 속이고 돈 더 받아가는 거 아니야?"


확인해본 결과, 금액은 전혀 문제없었습니다.
어르신께 이 금액이 맞다고 설명드리자, 갑자기 어르신께서 화를 벌컥 내셨습니다.


"너도 그 센터랑 한패지?!"


저는 당황한 채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그 다음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르신이 두 센터가 짜고 본인 돈을 빼돌렸다고 민원을 넣으셨던 겁니다.

공단 직원은 제게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분, 저희 공단에도 자주 민원 넣으시는 분이에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공단 측에서도 명세서가 정확하다고 설명했지만, 어르신은 공단도 한패냐며 욕설을 퍼부으셨다고 합니다.


결국 저희 센터에서도 오래 함께하지 못했고, 이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소식이 끊겨버렸습니다.


치매 어르신의 도둑 망상은, 단순한 ‘의심’이 아닙니다.
그들의 세계 안에서는 정말로 누군가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죠.
그 확신 앞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우리의 설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문제에 ‘정답’이 없다는 점입니다.
같은 증상이라도 어떤 어르신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다른 어르신에게는 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우리는 언제나 ‘실험중’입니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가방을 빼보고, 주머니를 없애보고, 말을 바꿔보고, 상황을 바꿔보기도 하죠.
해결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봅니다.


돌봄 현장은 그런 곳입니다.
하나하나의 문제를 정답이 아닌 ‘가능성’으로 풀어가는 곳.
매일같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게 쉽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모든 시도는 아마도 헛된 일이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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