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동네에는 쓰레기집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집 안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쓰레기 집에 사시는 어르신은 매일 새벽마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십니다.
그리고 누군가 버린 물건을 보면 꼭 필요한 것처럼 집에 가져오십니다.
낡은 화분, 쓰러진 행거, 심지어 고장난 전기밥솥 같은 것들까지도요.
어르신의 집을 보고 있자면 마치 작은 고물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받습니다.
최근 참석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의에서 마침 이 쓰레기집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뜩이나 여름이 다가오는데 악취가 진동을 하고 벌레도 많이 생겨 이웃들이 매우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어르신을 설득해서 쓰레기를 치우고 깨끗하게 살게 해드리면 되는거 아닐까요?
하지만 이것을 해결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먼저 가장 애가 탈 집주인은 이 어르신을 내보내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월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쫓아낼 수가 없었고 쓰레기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면 결국 법적 절차를 거쳐 퇴거를 시켜야 하지만 그동안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집주인도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주민센터 직원들도 어르신께 쓰레기를 치워드리겠다고 이야기를 여러번 해봤지만 어르신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웃들의 피해도 있고 하니 강제로라도 치워야 되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사실상 그것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선 쓰레기라도 본인이 그것을 쓰레기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함부로 버리다가 절도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어르신의 물건을 치우던 요양보호사가 손해배상청구를 당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지자체에서 강제 처리 할 수 있지만 단순히 쓰레기를 쌓아놓는다고 강제 처리를 할 수 없고 명백히 공중위생·안전에 위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심지어 이런 위해가 있더라도 바로 강제 처리를 할 수는 없고 시정명령 후 자진 처리를 하지 않으면 계고장을 보내고 집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에 이런 쓰레기집을 구청에서 강제 처리한 사례들이 몇개가 있지만 인권침해라든가 강제집행비용을 임차인에게 받는 문제라든가 역으로 법적분쟁을 당할 수도 있는 등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이왕이면 지자체에서도 좋게좋게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쓰레기집에 대한 사례관리에 참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어르신은 흔쾌히 쓰레기를 버리는 것에 동의하여 지자체에서 절반, 보호자가 절반 비용을 부담하여 쓰레기를 싹 치운적이 있습니다.
어르신도 집이 깨끗하고 넓어졌다면서 매우 좋아하셨고, 우리들도 해결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한달 뒤 모니터링을 위해 방문한 그 집은 다시 원래의 '쓰레기집'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넓어져서 좋다던 어르신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날부터 쓰레기를 다시 주워 모으셨던겁니다.
저희 동네의 쓰레기집도 강제로 쓰레기를 치워봤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동장님에게 다른 방법을 건의해봤습니다.
"차라리 그럼 노인주간보호센터를 가보시게 하는건 어떨까요?"
마침 어르신은 장기요양등급이 있으셨고, 방문요양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사실상 그 쓰레기집에 들어가서 일을 할만한 요양보호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나가시면 거기에 있는 동안은 쓰레기를 안 모을테고, 또 노인주간보호센터에 취미를 붙이다보면 쓰레기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어르신을 설득해 7월부터 노인주간보호센터를 나가보시게 했습니다.
어르신의 집은 여전히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그분에게는 그것이 삶을 버텨내는 방식이고,
우리가 아무리 정리해도, 다른 취미를 만들어 드려도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줄 무언가가 없다면 어르신에게는 부질없는 일이라는걸 알고 있습니다.
돌봄이란 늘 해답이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방법을 찾아 애쓰지만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근본적인 문제에 닿지 못한 채,
그저 표면만 닦아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을 설득하고 집에서 나오던 그 순간에도 내가 한 일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저 작은 변화라도 믿고 싶었습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어도 그분이 쌓아올린 것들 사이에서 조금은 숨쉴 수 있도록 돕는 일.
아마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불완전한 돌봄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