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럼에도 사회복지가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by young

하루 종일 내린 비로 밤 공기가 유난히 차갑던 날이었습니다.


노인주간보호센터에 항상 어르신을 모시러 오던 보호자가 회사에 일이 생겨 늦어질거 같다고 하여, 덩달아 저도 아무도 없는 노인주간보호센터에 어르신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환기도 시킬겸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사람의 삶을 가만히 붙잡아주는 일이구나'


누군가의 삶이 기울어가는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그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애쓰는 일.


때로는 가족조차 포기하며 손을 놓아버린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내미는 손 하나가 되는 일.


제가 몸담은 이 곳은 그 손이 되어본 사람만이 아는 무력감과 이상할 만큼 따뜻한 책임감이 공존합니다.


저는 그 무력감 때문에 몇 번이나 이 길을 그만두려 했습니다.

어떤 날은 사회복지가 세상이 만들어놓은 제도와 현실의 간극에 끝없이 부딪히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오히려 누군가의 상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건 아닐까 자책했습니다.
어떤 날은 새벽에야 퇴근하며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떤 날은 욕설과 오해를 그대로 받아내며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참 이상합니다.

나는 이 일을 멈추지 못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할머니께서 제 손을 꼭 쥐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네 얼굴이라도 봐야 살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날, 내 안의 모든 질문이 잠시 멈췄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는지, 왜 나여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이유가 명료해졌습니다.


어쩌면 사회복지는 그런 일인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면서도 그래도 단 한 사람이라도 조금 더 견디게 하고 싶은 마음.


조건이 아무리 열악해도,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희망으로 버티는 마음.


'그래도 괜찮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끝내 잃지 못하는 마음.


저는 그 마음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이 일을 하며 자주 상처받고, 자주 좌절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주 작은 순간마다 다시 버텨볼 용기를 얻습니다.
어떤 어르신의 미소 한 번이, 어떤 보호자의 '고맙습니다' 한 마디가, 어떤 동료의 짧은 위로가 매번 저를 붙잡아 줍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적으며 생각합니다.
이 모든 기록은 결국 저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도 될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아직도 그 대답을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복지가 하고 싶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저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글을 적다보니 어느새 이렇게 21편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센터 운영과 강의로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브런치 스토리는 저에게 안식처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습니다.


부족한 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2달 남짓한 기간동안 700명의 독자가 생겼고, 다음 메인에 올라가며 하루에 6천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해보기도 했습니다.

한분한분의 댓글이 너무나도 소중해, 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하루종일 썼다 지웠다하며 고민하다 적기도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한 편씩 꺼내어 놓을 때마다, 이 길을 걸어온 제 마음도 함께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후회스러운 기록이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사회복지라는 말이, 누군가를 돕는다는 말이, 너무 평범하고 식상해 보여도 그 평범함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삶을 조금이라도 붙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내일도 이 길을 걷겠습니다.

이 긴 이야기를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돌보는 사람으로 오래 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의 글에 많은 공감과 응원을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주간 시간을 가진 이후에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30대 젊은 나이의 제가 가장 밑바닥부터 센터장까지 올라갔던 험난한 여정을 여러분들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삶의 동력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인류애라는 것을 상실하기도 했으며 포기할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버텨냈고 배웠으며 성장해서 결국 이 자리에 다다를수 있었습니다.


치열했던 저의 시간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아보려 합니다.




멤버십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장기요양기관을 차리려고 하지만, 어떻게 설립해야 하는지 또 운영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저에게 많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는 젊다보니 인맥이 없어 제가 직접 발로 뛰어 알아보고 준비하고 운영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설립부터 운영까지 아주 자세한 내용을 멤버십에 담을까 합니다.


멤버십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keyword
이전 20화쓰레기와 함께 사는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