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심사라는 큰 산을 넘고 나면, 제 앞에는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만 알았습니다.
어르신들을 정성껏 모시겠다는 순수한 열정만 있다면 금세 센터가 북적일 거라 믿었지요.
하지만 현실의 문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고, 야속하게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시작하기 전에 이용자가 2명 확보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외할머니, 그리고 제 친구의 장모님.
덕분에 월세 정도는 메꿀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인들이 보내준 축하 화환의 꽃잎이 하나둘 말라갈 때쯤,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전화를 기다리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요.
핑크빛 미래는커녕,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차가운 현실이 제 발등을 찍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련되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발로 뛰느냐며, 노트북을 열고 블로그와 당근 등의 온라인 매체를 통해 홍보를 시작했습니다.
클릭 수는 올라가고 하트도 찍혔지만, 정작 "우리 어머니 좀 돌봐주실 수 있나요?"라는 간절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화면 너머의 사람들은 정보만 훑고 지나갈 뿐, 이름도 생소한 신생 센터에 소중한 부모님을 맡길 만큼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전단지를 제작해 직접 발로 뛰며 홍보하기로 했습니다.
전문 홍보 업체에 맡기면 편하겠지만, 한 푼이 아쉬운 초보 센터장에게 그것은 사치였습니다.
가방 속에 든 전단지는 마치 제 어깨를 짓누르는 생존의 무게처럼 묵직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길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드리는 것은 못했고, 아파트에 들어가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아파트 입구마다 붙어 있는 '외부인 출입 금지'와 '전단지 부착 시 법적 조치'라는 경고문은 당장이라도 경찰이 출동해 저를 잡아갈 것 같은 위압감을 줬습니다.
전단지를 한참 붙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경비 아저씨였습니다.
손에는 아직 붙이지 못한 전단지가 들려 있었습니다.
"여기 전단지 붙이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아.. 죄송합니다 바로 떼겠습니다."
저는 얼굴이 벌게져서 전단지를 들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 후로도 전단지를 붙이다 경비 아저씨나 청소하시는 분께 걸려 혼쭐이 나거나 줄행랑을 치기도 하고 문을 나서는 주민과 마주쳐 도둑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것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최대한 조심하면서 전단지를 붙이고 있는데, 하루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설마 상담전화인가 싶어 재빨리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재가복지센터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구청입니다. 전단지 부착으로 민원이 들어와서 연락드려요."
"네??"
알고 보니 제가 전단지를 붙인 아파트의 입주민 한 분께서 구청에 민원을 넣은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손끝이 덜덜 떨렸습니다.
상담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순식간에 수치심과 공포로 변했습니다.
법을 지키며 어르신들을 돕겠다고 세운 센터인데, 시작부터 '범법자'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습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붙였던 전단지들을 하나하나 떼며 내려오는데 다리가 풀려 비상계단 층계참에 주저앉았습니다.
가방 안에 구겨진 전단지 뭉치들을 보니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부모님께는 멋진 센터장이 되겠다고 호언장담 했는데, 현실은 아파트 복도에서 쫓겨나고 구청에 신고당해 벌벌 떠는 초라한 신세였습니다.
낯가림이 심해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하던 제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받으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해 버린 이상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다시 가방을 챙겼습니다.
구청에서 경고를 받았으니 아파트 무단 침입은 더 이상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합법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아파트를 수소문하고, 상가 점주분들을 일일이 찾아가 음료수라도 건네며 전단지 한 장만 비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 저희도 바빠서요."
"그런 거 안 놔요."
구청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누군가 목소리만 조금 높여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 관절염이라도 온 것처럼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고, 음료수 박스를 들었던 팔꿈치가 시큰거릴 때쯤에야 깨달았습니다.
센터장이란 직함은 화려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요.
허락을 받아 아파트 게시판과 가게들에 전단지를 붙이고, 지정게시대에 현수막을 걸면서 한 달이 흘렀습니다.
이용자는 처음과 똑같은 2명이었고, 저는 아직도 한참 남은 전단지들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말 이게 맞는 길일까? 내가 너무 무모했던 건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습니다.
모르는 번호였습니다.
또 구청일까, 아니면 대출 광고일까.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재가복지센터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수화기 너머로 아주 조심스럽고도 고단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보세요... 방문요양을 좀 이용하고 싶은데요."
그토록 기다렸던 상담 전화였습니다.
지인이 아닌, 제 발로 뛰어 뿌린 전단지를 보고 직접 연락을 주신 첫 번째 고객.
하지만 그날 저는 몰랐습니다.
그 전화 한 통이 제 센터의 첫 희망이자, 앞으로 제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시험의 시작이 될 줄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