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센터에도 활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이용자가 늘어나는 만큼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분들도 덩달아 늘어났습니다.
한 여자 어르신께서는 요양보호사와의 면접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속옷은 비싼 실크 속옷이라서 손빨래를 해야 돼."
요양보호사는 살짝 당황했지만, 속옷이 몇 벌 안 된다는 말씀에 그러겠노라고 하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저에게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센터장님, 속옷을 손빨래하는 건 좋은데요. 보일러를 틀어주지 않아서 찬물로 손빨래를 해야 돼요."
선생님께서는 한겨울이어서 매우 추운 날씨임에도 찬물로 손빨래를 시키셔서 도저히 할 수 없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어르신들 중에 가스비나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거나, 겨울에 보일러를 켜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요양보호사가 차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병원 등 외출 시에 대중교통이나 택시대신 선생님의 차를 사용하려는 어르신들도 더러 계십니다.
원칙상 요양보호사의 차를 이용할 수가 없지만, 이용자가 갑인 장기요양세계에선 안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심지어 유류비도 주지 않아, 제가 대신 선생님께 유류비를 따로 챙겨드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겨울이 되면 요양보호사에게 김장을 담아 달라고 하시는 분도 속출하기 시작합니다.
김장 요구가 하도 많다 보니 그냥 센터차원에서 겨울마다 김장김치를 구매해 어르신들께 나눠드렸지만, 간혹 어르신들 중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다른 센터에선 한 트럭 갖다 주던데 꼴랑 이거 갖다 주는 거야?"
그럼 그 한 트럭씩 가져다주는 센터로 가시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사무실 월세를 생각하며 침과 함께 삼킵니다.
"어르신, 다음에는 좀 더 많이 가져다 드릴게요."
또, 가족이 동거하는 경우에는 가족의 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상황들도 자주 벌어집니다.
예를 들면, 가족 옷을 같이 빨래해야 한다거나 가족의 식사까지 차려드려야 하는 상황말입니다.
어르신들께 가족의 일은 요양보호사가 원칙상 해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려도 어르신들은 막무가내입니다.
"아니, 어차피 내 빨래할 때 같이 세탁기 돌리는 건데 뭐가 어때서?"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야?"
장기요양기관이 요양보호사나 이용자에게 불합리한 행동을 하게 되면 공단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만 이용자들은 아무리 갑질을 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대로 무리한 일을 시킨다거나 2~3일에 한 번씩 요양보호사를 교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언젠가 공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저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적이 있습니다.
"요양보호사를 채용하면, 정말 특별한 사유 말고는 최소 한 달 정도는 이용하도록 기준을 둘 수는 없을까요?"
잠깐 정적이 흘렀고, 곧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건 조금 어렵습니다."
"그럼 연간 요양보호사 교체 횟수라도 어느 정도 제한을 두는 건요?"
공단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표정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용자분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이 어려운 분들이시잖아요. 서비스가 제한되면 건강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자리를 나오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의 건강권이 소중한 만큼, 한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않은 집에서 얼음장 같은 물로 실크 속옷을 비벼 빠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손마디도 같이 소중한 건 아닐까요.
하지만 그 말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한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센터장님, 아드님 방 청소까지 해달라고 하시는데... 저 진짜 오늘까지만 하고 못 하겠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 어르신댁에 들어간 요양보호사 수만 해도 10명이 넘는데, 또 어디서 요양보호사를 구해야 할지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어르신, 원래 가족들의 방은 요양보호사가 청소하면 안 돼요..."
"아니, 다른 데는 다 해주던데 왜 여기만 못해준다 그래?"
그렇게 오늘도 전국에서 서비스가 가장 안 좋은 센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