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만 겨우 내며 버티던 중, 드디어 첫 상담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방문요양을 좀 이용하고 싶은데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저는 최대한 상냥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네, 물론 가능하십니다. 그런데 저희가 어르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야 좋은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연결해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 한번 찾아봬도 괜찮을까요?"
어르신은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고, 날짜를 잡아 어르신댁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한 어르신은 조심스러웠던 전화상의 목소리와는 달리 매우 까칠한 성격이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여러 센터를 전전하셨던 분이셨고, 전화상으로도 막말을 하다가 방문요양 거부를 여러 차례 당하다 보니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센터장이 직접 방문한 이상,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하셨는지 제 앞에서도 욕과 함께 이전 센터들과 요양보호사를 헐뜯기 시작하며 본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도 '저희가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월세를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여러 센터에서 계약 해지를 당했던 덕분이었는지, 실제 케어를 할 때는 폭언이 다소 줄었지만 문제는 생각 외의 곳에서 터졌습니다.
어르신께는 함께 지내는 작은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어르신을 닮아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만지는 것은 고사하고, 강아지 근처로 손만 가도 물어버리는 '입질'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르신댁에 들어가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마다 물리거나 물릴뻔한 경험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저 또한 어르신댁에 모니터링을 갔을 때 한번 물려 피가 나서 병원에 간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선생님들과 저뿐만 아니라 어르신도 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어르신께 강아지 훈련에 대해 슬쩍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전혀 들을 생각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최대한 강아지 근처에 가지 말고 조심하시라는 말 밖엔 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센터장님, 강아지가 저를 물었는데 너무 심하게 물려서 피가 많이 나서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얼른 선생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달려갔고, 거기엔 손에 붕대를 감은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저 오후에도 어르신댁에 가야 하는데, 이래 가지고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저 산재 좀 신청해 주세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산재'라는 단어가 이렇게 또렷하게 들릴 줄은 몰랐습니다.
“아... 네. 일단 치료부터 잘 받으세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비, 휴업급여, 산재 처리 절차...
그동안 책이나 강의로만 접했던 단어들이 갑자기 제 현실 한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우선 저는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문의를 했습니다.
담당자는 잠시 제 말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어르신을 케어하러 가신 거지 강아지를 케어하러 가신 건 아니잖아요. 말하자면 제삼자인 강아지에게 상해를 입은 경우라 업무상 재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산재가 안 된다는 말인가 싶어 숨을 삼키는데, 담당자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산재 처리는 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제삼자에게 구상권 청구가 들어가게 됩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산재는 산재대로 처리되지만, 그 비용은 결국 어르신에게 청구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뒤,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르신은 근로복지공단의 연락을 받았는지 저에게 전화로 퍼붓기 시작하셨습니다.
"아니, 요양보호사가 그거 좀 물렸다고 신고를 해?"
"어르신... 신고가 아니라요, 산재 신청한 거예요."
"그게 그거지! 대체 센터에서 어떻게 관리를 하길래 나보고 돈을 물어내라 마라 이러는 거야?"
결국 어르신은 센터 책임이니 센터에서 다 물어내라고 이야기를 하시며, 본인에게 책임을 돌리면 센터를 옮기는 것은 물론이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구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돈만 해결해 주면 강아지는 다른 집에 보내서 이런 일이 더 이상 없게 하겠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습니다.
제가 비용을 떠안는 것.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포함해 대략 200만 원이 나왔습니다.
그 시절의 저에게 그 200만 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월세와 생활비, 그리고 센터를 운영할 소중한 금액이었습니다.
며칠 뒤, 어르신은 약속대로 강아지를 다른 집에 보냈습니다.
집 안은 조용해졌지만, 어르신의 말투나 표정까지 함께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치료가 끝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셨습니다.
달라진 것은 사라진 강아지와 제 통장 잔고 뿐이었습니다.
며칠은 솔직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이 센터를 버틸 수 있을지 자꾸만 같은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그래도 월세 날짜는 기다려주지 않았고, 결국 저는 다시 가방을 챙겼습니다.
전단지를 붙이고, 인사할 곳을 찾아다니고, 소개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보니 어느새 이용자는 초기 목표치인 열다섯 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센터는 그렇게 넘어질 듯하다가도,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