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위한 마지막 관문, 지정 심사

by young

지정심의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실사는 이미 통과했고, 사업계획서와 운영규정도 수정 요구 없이 접수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정심사는 제출한 자료들을 얼마나 잘 숙지하고 이해하고 있나를 평가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심사 당일,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긴 테이블 너머로 심사위원 다섯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형식적인 인사 후 곧바로 PT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기관이 왜 꼭 이 지역에 설립이 되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준비한 내용을 자신 있게 설명했습니다.


PT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되자,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이용자 모집은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지역 내 홍보와 네트워크를 통해 안정적으로 이용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관을 운영할 계획입니까?”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상한 질문도 있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도 있었지만 강의를 했던 경험으로 최대한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답변을 모두 했습니다.


심사가 끝나고, 일단 막힘 없이 대답을 한 것에 만족을 하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홈페이지에 심사결과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0.5점 차이.


그 숫자보다 더 충격이었던 건 다음 심사까지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3개월은 생각보다 훨씬 길었습니다.


사무실은 이미 계약을 해둔 상태였고, 지정이 나지 않으면 어떤 업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도, 상담도, 물론 수익도 없었습니다.

그저 매달 40만 원이 넘는 월세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무실에서 빠져나갔습니다.


불이 꺼진 사무실에서 저는 왜 불합격을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한 답변들은 모두 추상적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방안보다는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그저 두리뭉실한 답변들만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대기 기간인 3개월 동안 모든 기관 운영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들을 차분히 세웠고, 길게 느껴졌던 3개월은 금세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시작된 2번째 심사에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방안들로 채워진 PT를 진행했습니다.

질문답변 시간에서도 두리뭉실한 내용보다는 사례와 수치들을 들며 구체적으로 답변을 했습니다.


"이용자 모집은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초기에는 인맥을 통한 모집으로 시작하고, 차후 전단지와 현수막 같은 오프라인 홍보 및 당근마켓 같은 지역 온라인 플랫폼도 활용할 예정입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관을 운영할 계획입니까?”


"현재 이미 이용자를 소수 확보해 놓아서 당장 최소한의 운영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 놓았고, 추가로 초기 3개월은 센터장의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도록 하여 고정비를 최대한 낮춘 구조로 계획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 나왔습니다.


"첫 심사에서 떨어진 경험이 차후 운영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습니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첫 심사 때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떨어지고 나서 보니 그 말들이 얼마나 추상적인지 알게 됐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사무실은 비어 있었고 월세만 나갔습니다. 그 시간 동안 계획이 틀어졌을 때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잘하겠다는 말보다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질문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면서도 이번에는 붙을지, 떨어질지 짐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이번에는 해야 할 말만 하고 나왔다는 것.


며칠 뒤, 구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합격이라는 말을 듣고도 바로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3개월 동안 불 꺼진 사무실에 월세만 내던 시간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문을 다시 열고 전등을 켰을 때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이제는 설명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영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그리고 저는 그렇게 36살에 재가복지센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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