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요양 일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일정표는 늘 깔끔하게 짜여 있는데, 이상하게도 일은 일정표대로 잘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문제가 터지거나 급한 전화는 일정이 없는 날에 생깁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근무가 없는 날이었는데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선생님... 지금 잠깐만 올 수 있을까요."
급한 건지, 그냥 심심한 건지 목소리만 듣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건지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여쭤보았지만 제대로 대답을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일정이 없는 날은 가지 않는 게 맞지만, 평소에 한 번도 그런 부탁을 하신 분이 아니시다 보니
선생님은 신경이 쓰이셨는지 그렇게 어르신댁으로 가셨습니다.
어르신 댁에 가보니 어르신은 걱정과 달리 반갑게 선생님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거실로 선생님을 데리고 온 어르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딸이 떡을 해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같이 먹고 싶어서 불렀어요. 쉬는 날인데 미안해요."
어르신은 평소에 선생님이 본인을 많이 도와주는데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런 거라도 대접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어르신의 마음이 감사해서, 일정은 없었지만 떡을 같이 먹으며 어르신댁에서 한참을 있다가 가셨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쉬는 날에 오는 전화들이 늘 긴급한 건 아닙니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는 어르신도 계시고, 치매가 있어 새벽에 "올 시간이 다 됐는데 왜 안 오느냐"라고 묻는 전화도 옵니다.
그래서 근무가 없는 날에 울리는 전화는 괜히 먼저 마음부터 가라앉게 됩니다.
'이번에도 그런 전화겠지.'
'아마 괜찮을 거야.'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쉬는 날에 전화를 하신 어르신의 목소리가 좀 이상했습니다.
숨이 차 있었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선생님은 이번에도 바로 어르신댁으로 가셨습니다.
어르신댁에 가보니 어르신은 화장실 바닥에 넘어져 계셨습니다.
어르신이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지셨는데 다행히 휴대전화를 가지고 계셨던 터라, 선생님께 바로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바로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다행히 빨리 발견되었던 어르신은 치료를 받고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어르신의 병문안 때 제가 어르신께 여쭤봤습니다.
"어르신, 왜 넘어지셨을 때 119에 바로 전화를 안 하시고 선생님한테 전화하셨어요?"
어르신은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그때 119가 생각이 안 나고 선생님밖에 안 떠오르더라고."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위급한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의사도, 가족도 아니라 요양보호사였다는 사실이요.
방문요양을 하다 보면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정해진 업무만 하면 되는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을 겪고 나면 이 일이 단순히 시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급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요.
계약서에는 없고 수가표에도 없는 일들인데, 막상 돌아보면 그게 제일 중요한 순간일 때가 있습니다.
그날의 떡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