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이용자들이 모여서 드디어 스물아홉 명이 되었습니다.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스물아홉과 서른은 꽤 다른 숫자입니다.
이용자가 서른 명이 되면 사회복지사를 한 명 더 채용할 수 있고, 공단에서 주는 가산금이 추가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가 서른 명쯤 된다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든 기관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때는 정말 딱 한 명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대하던 상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는 방문요양을 이용하고 싶다는 어르신의 목소리에 매우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분만 잘 이어지면 서른 명이다.'
그런데 의외의 난관이 발생했습니다.
정확한 상담을 하려면 방문이 필수이기 때문에 주소를 여쭤보았더니 돌아온 대답은 바로 욕지도였습니다.
욕지도.
경남 통영에 위치한 낚시꾼들의 성지로 1박 2일에서 소개되면서 인기가 높아진 섬입니다.
하지만 저는 낚시꾼이 아닌 자영업자였기 때문에 욕지도라는 단어에 엄청난 부담이 밀려왔습니다.
일단 욕지도가 얼마나 먼 곳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경로를 검색해 봤습니다.
사무실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또 한 시간.
심지어 배가 하루에 4대뿐이라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졸지에 욕지도에 갇혀 외박을 해야 하는 대참사까지도 발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저는 평소에도 차멀미, 뱃멀미가 매우 심한 편이라 배를 1시간 타야 한다는 것에 더욱 망설였습니다.
히지만 그때의 저는 이성보다 서른 명이라는 절실함이 조금 더 컸습니다.
'일단 한번 가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무작정 욕지도에 가보기로 하고 통영의 항구로 향했습니다.
배를 타본지는 15년도 더 전이어서 괜스레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배가 출발했습니다.
출발한 지 20분가량 지나자 역시나 걱정했던 멀미가 시작되었습니다.
배가 커서 멀미는 안 할 거라던 어르신의 말과는 달리 배는 생각보다 성실하게 흔들렸고, 속은 유도선수에 빙의해서 열심히 뒤집혔습니다.
그렇게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드디어 욕지도에 도착했습니다.
땅을 밟는다는 것에 감격한 건 헬기추락사고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욕지도 안에 있는 어르신댁만 잘 찾아가면 됩니다.
욕지도의 대중교통은 마을버스가 유일했습니다.
마을버스도 하루에 6대밖에 없어서 자칫 잘못하면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될 수도 있었지만, 배 시간과 버스시간이 얼추 맞추어져 있는지, 배에서 내리자마자 금방 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시간 가까이 걸려 어르신 댁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제가 온다고 동네 이웃 분들이 다 모여 계셨던 겁니다.
"아이고, 멀리서 오셨다면서요."
"배 타고 오느라 고생 많으셨겠네."
마당에 펼쳐진 상 위에는 음식이 가득했고, 처음 보는 고등어회가 접시째 놓여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상담은 뒤로하고 식사부터 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고등어회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아까까지 뒤집히던 속도 이상하리만큼 얌전해졌습니다.
옆에 앉아 계시던 이웃 어르신이 어디선가 술을 가져와 한 잔 권하셨습니다.
업무 중에 술을 마셔도 되는 건지 고민했지만 그 분위기에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어르신!"
대낮부터 술을 마시니 순식간에 취기가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취중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둘로 보였다 하나로 보였다 하는 어르신의 섬으로 시집온 이야기도 듣고, 통영 내의 방문요양센터들이 여럿 거절해서 부산까지 연락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욕지도 안에 방문요양을 해주실 수 있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셔서 계약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그렇게 계약을 잘 마치고 돌아가는데 욕지도의 명물이라고 하시며 고구마를 한가득 싸주셨습니다.
취한 와중에 꼬불거리면서 놀리는 길을 잡아가며 겨우 배를 탔는데, 돌아갈 때는 전혀 멀미를 하지 않았습니다.
배에 올라타자마자 술기운에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거든요.
그렇게 새로운 한 분이 등록되었고, 이용자는 서른 명을 넘겼습니다.
마음씨 좋으신 새로운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채용했고, 센터도 이제 나름 안정적이게 되었습니다.
방문요양의 정기방문은 사회복지사가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한 달에 한 번씩 배를 타고 욕지도로 들어가고 저는 더 이상 가지 않지만, 가끔 그날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멀미로 거의 죽어가며 탔던 배, 대낮에 마셨던 술 한 잔, 그리고 유난히 맛있었던 그 고등어회.
숫자 하나를 채우러 떠난 길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섬사람들이 제게 건네준 환대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아직도 가끔 그 고등어회가 생각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