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가 30명을 넘어서고 나서는 탄력이 붙어 빠르게 이용자가 늘어났습니다.
예전처럼 열심히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지 않아도 저희 기관에서 일하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직접 소개를 해주시기도 하고, 회사 블로그도 꾸준하게 운영하다 보니 블로그를 보고 상담전화가 오는 경우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40명이 넘어갈 즈음, 예상치도 못한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카톡으로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습니다.
무심코 카톡을 열어보는데,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oo아, 우리 센터 어르신들을 부탁해. 그리고 폐업까지 좀 도와줘. 그동안 고마웠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카톡을 보낸 사람은 예전에 같은 직장을 다니며 친해진 팀장님이었습니다.
제가 여러 회사를 전전하고 창업을 할 때까지도 가끔 만나며 인연을 이어나갔는데, 마침 팀장님도 저와 같은 재가복지센터를 창업하게 되어 제가 다니던 센터장 모임에도 같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센터 운영문제나 가정의 문제를 간혹 듣기는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카톡을 받고 나니 갑자기 그동안 팀장님이 했던 말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이불속을 빠져나와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벨만 공허하게 울리고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저는 예전에 다 같이 만나며 저장해 둔 팀장님의 남편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행히 남편분은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그 혹시 oo팀장님 옆에 계시나요? 저한테 이상한 카톡이 와서요."
잠시 말을 하지 않던 남편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로 이야기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 더는 없다니.
제가 받았던 카톡은 예약전송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뜬 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제가 센터 사후 처리에 대한 부탁을 받은 이상,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센터의 사회복지사를 만나기 위해 아침이 되자마자 팀장님의 센터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센터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사회복지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멀리서 다급히 뛰어 오는 사회복지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얼굴은 슬픔과 당혹으로 엉망이었습니다.
센터로 들어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젯밤에 부고 문자가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이용자와 보호자에게까지 간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밤새 이용자와 보호자의 문의 전화에 시달리느라 매우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입사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던 사회복지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일단은 여기서 손을 놔버리면 현재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급여를 받을 수 없기에 일단은 일정대로 방문을 가시라고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남편분을 만난 저는 팀장님이 보낸 카톡을 보여드렸고, 남편분도 저에게 문자를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내용들과 함께 이용자와 폐업관련된 내용은 저에게 맡기면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남편분은 장기요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어서 재가복지센터가 어떤 회사인지, 어떻게 운영되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셨고, 센터를 정리하는 문제를 도와달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저는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다음 날부터, 구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연락을 했습니다.
불안한 이용자와 보호자가 연락을 한 것인지 구청과 공단에서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장기요양기관은 평가를 피하기 위해 평가 직전 폐업을 하고 다시 개업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악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폐업을 할 때는 필요한 서류가 굉장히 많고 복잡합니다.
구청에서는 저희가 어떻게든 폐업을 위한 절차와 서류준비 등을 도와주겠다고 하자, 매우 기뻐했습니다.
안 그래도 대표가 갑자기 없어져버려서 붕 떠버린 기관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마침 저희가 그걸 해결해 주겠다고 하니, 서류만 다 준비되면 구청에서 빠르게 폐업처리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단이었습니다.
요지는 가족도 아닌 외부인이 폐업처리를 해주는 등 관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공단의 뉘앙스는 마치 제삼자인 저희 센터가 20명이나 되는 이용자를 가져가기 위해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도 있었습니다.
저와 팀장님이 들어가 있던 모임에서도 말이 나온 것입니다.
다 같이 애도를 하면서도 결국 화두는 20명의 이용자는 어떻게 되느냐였습니다.
심지어 제가 폐업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하니, 공단과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왜 갑자기 네가 나서서 폐업을 도와준다고 하냐, 이용자 데려가려고 그런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이야기했습니다.
카톡을 보여주면 해결이 되는 내용이었지만, 차마 카톡을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분이 사고사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이 카톡 내용을 보여주는 순간 사고사가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니까요.
결국 공단에서도, 모임에서도 오해를 받기 싫었던 저는 이용자를 한 명도 받지 않을 테니 폐업만 도와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용자들은 같은 모임에 있던 한 센터장이 거액의 돈을 보호자에게 주고 데려갔습니다
마음이 홀가분해진 저는 그렇게 그 센터의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함께 서류를 준비해 직원들에게 마지막 급여를 나눠주고 팀장님의 센터를 폐업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사람 숫자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는데, 막상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는 숫자가 하나도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이요.
그냥, 같이 일하던 사람이 남긴 부탁이었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게 정리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이용자를 한 명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솔직히 조금은 손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센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랬습니다.
주변에서도 저에게 줘도 못 먹는 바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 밤에 휴대폰을 보다가 문득 지우지 않은 그 카톡 내용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그 내용들은 아직도 제게 이 일이 단순히 운영이나 확장이 아니라 사람의 마지막 책임까지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조용히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도 저는 센터 숫자가 늘어나는 순간보다, 그 숫자 하나하나가 무사히 하루를 넘기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