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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색 - 회색 점박이의 꿈, 카투사

< every color; 동두천, 1-15FA, 채플린 어시스턴트 >

by 심재훈


한국에 파견 온 미국 군인들은 회색 점박이 군복을 입은 채 채플린 오피스로 걸어 들어온다.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낯설게 느낀다. 군종병으로써 – 카투사 보직 정식 명칭은 ‘채플린 어시스턴트 Chaplain Assistant’. - 오피스에서 나의 임무는 그들을 미 군목에게 소개해주며 낯선 한국문화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옆 인사과(S-1) 사무실 흑인 중사는 오피스에 놀러 와 사탕과 초콜릿과 같은 간식거리들을 가져간다. 어떤 미군은 나에게 맑은 눈을 가졌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군목들은 모두 가톨릭 신부님들이었다. - 나는 21살 때부터 2년 동안 동두천 미 2사단에서 근무했었는데 내가 섬겼던 신부님들이 전체 사단 중 유일한 가톨릭계 신부님들이었다. -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 분은 남미계 므뇨즈 신부님이었고 그 이후엔 인도계 가브리엘 신부님이었다. 나와 그들의 케미스트리는 썩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나는 조용하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가끔씩 신부들이 무리한 부탁을 해도 웬만하면 들어주는 편이었다. - 그들이 나의 상관이었기에 나는 그들의 명령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런데 ‘카투사’라는 보직은 아주 미묘한 명령체계 아래에 있어서 미군 소속이면서도 한국군 소속이기도 하다. 이런 이중적인 체계로 인해 우리는 마땅히 미군 상관에게 복종해야 했으나 꼭 그들과 그렇게 불편한 상하관계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카투사는 엄연히 미군의 작전 활동을 돕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미군과 트러블이 있더라도 한국군 지역반장에게 등을 비비면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최소한 거기엔 정당한 이유 같은 게 반드시 있어야 했지만 - 오랫동안 신부님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면 생각보다 그들이 꿈속의 성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어쩔 때는 남들보다 더 틱틱대고 조그만 자극에 화를 내기도 한다. 첫 번째로 만난 므뇨즈 신부님은 상상 이상으로 거칠고 난폭했었다. 나는 남미 억양이 다분히 섞인 그의 영어 화법에 적응하느라 꽤 고생했다. 므뇨즈 신부는 화가 나면 자주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업무성과가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징벌을 내리겠다는 둥, 다양한 방식으로 나와 미국 군종병에게 겁을 주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협박에 가까운 그의 그런 언행들이 자주 일회성에 그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나는 므뇨즈의 그런 발작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었다. - 군종 사무실에는 미 군목, 미군 군종병, 그리고 카투사 군종병, 이렇게 3명이 함께 붙어있다. 나는 마텔 스키(미군 군종병)와 동맹을 맺고 므뇨즈에 성공적으로 대항했다. - 듣기로는 므뇨즈 신부님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 가 있을 때 폭발사고가 일어나면서 큰 정신적 충격을 겪었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어느 정도 그의 기이한 성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나는 동두천에서 용산으로 또는 평택 기지로 가끔씩 출장을 갔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지역은 동두천 기지였기에 용산이나 평택 기지의 좋은 점들을 많이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용산 기지는 이태원 근처에 있었기에 도심지역을 가기에 아주 용이했고 내부 문화시설도 잘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 드래건 힐 라지 호텔 내 그린 스트리트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는 예전부터 현지 맛을 잘 낸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 애석하게 나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용산 기지 철수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지도 모르겠다. - 평택 기지의 식당 뷔페를 맛볼 때면 영원히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지 내 슈퍼 짐 Super Gym을 볼 때에도 경이로웠다. 나는 대대 축구팀 대표로 나가 평택기지에서 미군들과 함께 전국대회를 우승하기도 했다. 그때의 추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나는 신부님을 보필하는 군종병 Chaplain Assistant이었다 보니 정기적으로 채플린 세미나에 함께 참석해야만 했다. 각 대대의 미 군목들과 카투사 군종병들이 함께 모여 군 내의 여러 가지 행정과 행사 일정을 위해 논의한다. 그런데 그 정기적인 세미나에서 교회음악을 듣거나 찬송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교회 행정에 집중한다. 교회의 교리보다는 군인들을 위한 행정 일을 우선시하는 이러한 경향은 군대 내 사역이라는 특이한 환경과 미국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서인 것 같았다. 주일 예배나 미사에서만 이들의 교회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신부를 모셔야만 했던 나는 미사 준비를 위한 스텝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처음엔 거북했다. 왜냐하면 나는 미사를 한 번도 드려보지 않았을뿐더러 천주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기에 한 번은 미사를 준비하는 게 조금 꺼려진다고 므뇨즈 신부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다혈질 성격의 므뇨즈 신부가 그런 나의 요청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므뇨즈 신부는 이 얘기를 연대 군목에게 일러바쳤고 나는 연대 사무실에 들어가 미사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오히려 험악한 잔소리만 듣고 나왔다.


그 당시 나는 군종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은 교회음악이 아닌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나는 미사 준비에 큰 역할을 부여받지 않고 자잘한 일만 할 수 있었다. 예배당 정리와 마이크 점검 등의 준비를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일요일에 정기적으로 일을 하며 역사 속에서 신교와 구교가 왜 그렇게 싸워왔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미사 예배 방식은 기독교의 그것과는 모든 면에서 매우 달랐다. 미사는 유동적인 것들이 굉장히 많다. 앉아서 미사를 드리다가도 신부의 말에 갑자기 무릎을 꿇기도 했다. 신부는 설교는 하지만 굉장히 짧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의식이나 제사의 과정으로 드린다. 신부는 연기 나는 성체를 구슬의 진자 활동처럼 움직인다. 신부는 강단 앞으로 나와서 줄 서서 차례대로 나오는 신도들의 이마에 성수를 찍으며 죄가 사해졌음을 선포한다. 느낌상 그들은 대체로 의식과 제사의 과정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면 미사의 찬송은 교회 찬송보다 훨씬 고귀하고 고풍스럽다. 더 귀티가 난다고 해야 할까. 신부는 설교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찬송 대원들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미사를 주도해나간다. 신부는 음악가였다. 중저음의 보이스가 아니라 여성 소프라노를 모방한 고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낸다. 사실 여기에 비하면 교회 찬송은 억척스러운 중년의 아줌마 신세이다. 교회 찬송은 차라리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남루함과 진실함이 더 묻어난다. 불신자들도 교회를 가보면 알겠지만 교회 예배당은 완전히 난장판이다. 여기저기서 노년 신도들이 샤우팅을 하지 않나 불신자가 그렇게 무섭다고 말하는 마지막 카드, 방언기도(다른 나라의 언어로 하는 기도)가 이쪽저쪽서 횡행하지 않은가. 교회음악은 현실이고 전쟁 통이다. 교회가 찬송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신도들은 전쟁을 준비하는 전사이며 강단에 서 있는 목사는 순교자이다.


그래서 구교 미사의 장점은 하느님의 성聖스러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반면 신교 예배의 좋은 점이란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을 얻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라 …, 참 웃기지 않은가? - 나는 이 두 형제가 빨리 화해하여 종교의 평화를 이룩했으면 한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



전쟁 통의 교회음악을 체험하고 싶다면 <반드시>라는 옛날 찬송을 틀어보라. 그걸 예배당 안에서 전 신도가 부르면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해보라. 지나가던 유령도 그곳에서 멀리 떠나갈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매사추세츠 세일럼의 재판관 댄포스 - 아서 밀러의 희곡,『시련』에 등장하는 재판관으로 마녀가 보인다고 가짜 연기를 펼치는 아비가일을 심문한다. 선한 사람 프록터는 아비가일의 꾀로 인해 죽게 된다 - 의 결단처럼 차갑고 무섭다. 아비가일의 발작은 청교도적 가치에 공포와 광기를 주입시킨다. 몇 천 년 동안 수많은 종교로부터 박해당했던 원한들을 음악으로 해갈하려고 하는 듯이. 자신이 살아남은 자라고, 자신이 <레버넌트> - 19세기 아메리카의 서부 시대를 묘사하는 영화이다. 주인공인 휴 글래스가 마주하는 자연의 위협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생사를 오가는 순간을 계속해서 마주한다 -라고 외치고 있다. 웃옷을 들어 올리며 곰의 발톱에 할퀸 자국들을 보여주면서. 깊은 오리엔탈리즘 - 유럽 서구세력이 동양국가들을 식민지화하면서 유럽에서 본 동양의 세계를 일컬어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 의 수렁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 나라고. 아메리칸 갓들『American Gods』 - 닐 게이먼의 소설,『American Gods』는 이민자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전 세계의 신들과 현대에 새롭게 태어난 신들이 벌이는 전쟁을 그리고 있다 - : 신들의 전쟁은 지성소에서 쫓겨나 이제는 오랜 전통이 된 것이 나라고 스스로를 변호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다가 이제 신도들의 눈에 재림하기 시작하면서 교회음악을 선동한다. 그리고 이제 곧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차라리 교회음악이 성당의 오르간 소리와 같았으면 어땠을까. 좀 더 성스럽고 기품 있게 등장한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성당 미사의 음악은 매우 이론적이라는 점이다. 잘못하면 그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추상세계의 음악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자는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와이키키 해변 앞 버거 가게에서 버거를 시켜놓고 서로 대화 한 마디 할 수 없는. 저 먼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외국인과 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나는 그저 파도에 따라 움직이는 서퍼를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서퍼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나에게 즐거운 눈요기를 선사하지만 나는 서핑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서퍼는 서퍼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즐거움을 누릴 뿐이다. 성당 미사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모습과 같다. 그림은 나에게 심미적인 체험을 가능케 하지만 무엇인가 2% 부족한 느낌이다. 미사의 음악이 공감의 능력이 부족한 탓일까. 나는 내셔널 갤러리를 감상하지만 또한 그것의 엠파이어에 금세 증오를 느낀다. - 나는 영국 여행을 통해 내셔널 갤러리를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의 예술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방대한 예술품들이 그곳에 있었지만 이 모든 예술품들은 모두 탈취한 것이었다는 점을 살펴보면 영국의 제국주의의 폐해를 느낄 수 있다.


주일에 교회에서 일하는 군종병은 예배나 미사가 끝나면 예배당 sanctuary을 청소하고 각종 물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동두천 기지 안에 교회는 딱 그거 하나뿐이었다. 교회는 그렇게 크지 않다. 예배당 옆에는 커뮤니티 룸이 있어서 예배 이후에 신도들이 점심을 먹으며 교제를 나눈다. 뒤 쪽으로는 미 군목 사무실과 물품을 놓는 창고들이 있다. 나는 쓰레기통을 모두 수거하고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헌금 offering을 카운트하는 것이 그렇다. 예배 이후에 예배를 참석한 인원 중 2명과 함께 그 날 모은 헌금을 모두 세서 회계문서를 작성한다. 기지 내에는 현지 가족들이 미군들과 함께 한국에 머무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여기서부터 문제다. 만약 여기서 헌금을 잘못 세거나 카운트한 총금액을 문서에 잘못 기입하면 나중에 은행에 입금할 때 큰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일병 Private First Class 초기에 한두 번 실수를 하여 연대 사무실에 불려 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오퍼링(헌금)이라는 단어가 참 싫었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헌금과 헌법. 많이 닮지 않았는가? 여기서 왜 갑자기 헌법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드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회음악은 헌법 Constitution을 많이 닮아있다. 헌법이란 헌법주의 또는 헌법 세계를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 머릿속에 선험적으로 그려져 있는 한 심상 image이나 사상 philosophy과 같다. 그러나 헌법이 우리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법제화 legalization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 헌법체계 constitutional law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언제나 헌법과 헌법체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한다. 추상의 하늘과 실질적인 계약 사이에서처럼 말이다. 선험적인 추상 진리를 쫓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 앞에 주어진 실제 이익을 놓치고 말 때가 많다. 반대로 이윤추구를 위해 목숨을 걸다 보면 어느새 나의 걸음이 처음 좇으려 했던 진리의 행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험적인 진리에 좀 더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역시 현실세계의 만족에 좀 더 취해 있어야 하는 것일까? 헌법과 헌법체계 사이의 관계가 이와 같다. 그리고 종교와 현실의 관계가 또한 이와 같다. 믿음과 현실도 그렇다.




헌법 / 헌법체계

Constitution / constitutional law

종교 / 현실

믿음 / 현실

추상 / 실제

하늘 / 지상




그렇다면 우리는 헌법을 더 사랑해야 할까? 아니면 헌법에서 만들어진 구체적인 법을 더 사랑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미국 대공황이 닥쳤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Franklin Roosevelt 대통령(1882-1945)은 이 헌법과 헌법체계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루스벨트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뉴딜정책 New Deal을 폈고 이는 미국 사법부와 큰 마찰을 빚게 된다. 헌법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사법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법부는 헌법 자체를 사랑했고 이를 고수하려고 했던 반면 루스벨트 행정부는 대공황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헌법 일부를 파괴하여 새로운 헌법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다. 이러한 충돌로 인해 처음 뉴딜 정책을 선포했을 때 미국 사법부는 이 정책이 위헌이라고 판결 내린다. 그런데 여기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위대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야당과 사법부를 설득하여 수정헌법을 입법하고자 노력한다. 말 그대로 그는 기존의 헌법이 추상의 세계를 떠도는, 현실세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기존 헌법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일부 조항들을 수정함으로써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자 했다. 수정헌법은 성공적으로 승인되었고 이를 통해 뉴딜정책은 시민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프랭클린의 수정헌법. 나는 이 업적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음악은 어떠한가? 하늘의 광대함과 위엄을 선포하면서도 그것이 진정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는가? 교회음악이 하늘의 진실을 차용하여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성당 미사 음악은 너무 진리에 경도되어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교회음악은 그저 우리의 진정제로만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 나는 성당 미사와 교회 예배를 적당히 섞고 싶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사랑과 공의, 세상에서 두 가지 형태의 지배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성육신 incarnation 사건이지 않을까. 하늘의 법이 육신을 입고 왔던 것처럼. 우리는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의 정체를 발견한다. 헌법이 헌법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기를. 루스벨트 씨를 바라보면 사랑의 법제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느끼게 된다. 하늘의 언어가 어떻게 그리 쉽게 세상의 언어로 치환될 수 있을까. 존 러스킨 John Ruskin의 이론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의도에 공감한다. 인도주의적 경제학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확신 아래에 그도 이런 법제화의 수고에 동참했으리라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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