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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아라베스크

< Arabesque No.1, 고양이, 자장가, 백남준 >

by 심재훈


나는 드뷔시를 사랑한다. 그 감미로운 목소리. 갓난 아기를 다루는 듯한 부드러운 엄마 손. 자장가처럼 들린다. 서정적이다. 묵상 음악과 같다. 달빛처럼 빛나고 있다.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의 들판처럼 광활하고 청량하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고요하며 평정하게 만든다. 달의 공기를 콩콩 걸어 다니는 피터팬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호수에 가랑비가 천천히 내려와 조그마한 파장을 만들어낸다. 처음 중심에 있던 파동은 점점 커져 소금쟁이처럼 물가로 번진다. 그 잔잔한 목소리. 팝페라 가수의 여린 반 가성 목소리처럼 아주 얕게 무대를 가득 채운다. 평등은 몰락하고 있다. 잠시만 고개를 들고 있으면 어두운 하늘 속 뭉게구름이 대답해준다. 샌드맨 Sandman은 어디에 갔느냐고 잠시 불평해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V 속 수많은 광고 영상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진심으로 말하지 않는다. 고故 백남준 선생님의 말씀처럼 TV는 바보상자이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술과 인간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서면 모든 신경과 조직들이 이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마음에 자신만의 버튼을 갖고 있다. 위험한 순간이 임박할 때면 우리도 모르게 그 마음의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두 가지 갈림길에 놓인다. 아예 포기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남들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나는 좋은 포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킬레스는 프리아모스의 왕의 부탁을 들어주어 헥토르의 시신을 포기한다. 처연하게 받아들인다. 마치 고양이가 날카로운 초승달 눈으로 째려보는 것 같다. 하지만 드뷔시의 곡들은 고양이보단 개를 닮았다. 아니, 강아지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 순천만의 향기는 잊을 수 없다. 왠지 경복궁 뒤편에서 달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청와대는 저기 있다. 북악산은 저기 있다. 수많은 대통령들이 저곳을 왔다 갔다 했지만 여전히 감상感想은 남아있다. 아마 또 다른 달이 남아 있다면 거기는 피 뿌린 선죽교善竹橋가 아니었을까. 그 날 달빛은 누군가의 죽음도 지켜보았을 것이다. 모기들은 여전히 돌아다닌다. 옛날에 유럽의 카페는 예술가들의 담화 장면과 같았다. 툴루즈 로트렉은 난쟁이 화가였다. 거트루드 지킬 선생은 정원 속 수많은 식물들을 보살피고 가꿔왔다. 본다는 건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그저 봐야 하고 계속 보아야 한다. 소설 쓰기를 마치면 기력이 쇠잔해진다. 그러나 시를 쓸 때면 따뜻한 것으로 충만해진다. 나태주 선생님의 글은 참 아름답고 정겹다. 나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글은 영혼을 닮는다. 이제 드뷔시의 스타가토에 다시 빠져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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