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엄마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났다.
한참을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떠든다.
학창 시절 이야기엔 공부 보단 몰래 숨어 먹던 간식이나 연애 이야기가 맛이다.
10년도 넘은 일을 가지고 떠들다 보니 문득 그리움이 고개를 든다.
내 의지로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가진 것이 없어 어깨가 무겁지 않았던 그때.
행동 하나하나가 한없이 가볍고 팔랑거렸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삶은 온전한 느낌.
결핍보단 채움이 많은 삶이지만
그만큼 어디로 한번 발걸음을 옮기려면 달린 게 많아 묵직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 걸음을 뗄 수 있을까 말까 한 지금.
학생 시절을 함께한 그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우니
지금의 삶이 갑작스레 묵직을 넘어서 무겁게 느껴진다.
아직은 혼자의 삶을 살고 있는
나와는 너무도 다른 친구의 삶에 대한 동경을 안고 짧은 만남을 마쳤다.
그 시절의 가벼움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 채
아이들과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약간의 술기운을 곁들인 귀갓길이 붕붕 뜨는 것 같이 현실감이 없다.
아, 내가 엄마였던가.
팔랑이며 날아갈 것 같던 한 고등학생 소녀에서 의젓해야 할 엄마로 돌아온다.
몇 시간 만에 남편을 만나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며
그 시절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을 정신없이 챙기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은 일 끝나고 영화 한 편 여유롭게 볼 수 있고 누군가 만날래? 하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부럽지만,'
'매일 했을 땐 그저 그렇고 그랬던 허한 일상이었지.'
'지금처럼 꽉 찬 느낌은 혼자일 땐 전혀 느낄 수 없었네.'
"나, 지금이 행복하네."
어쩌면 돌아간 집에 반겨줄 가족이 있는 내가
그 친구는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삶이란,
이제껏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삶의 이유가 가득한 삶.
우리가 한때 꼰대라고 부르던 어른들이 말하곤 했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결혼이라면서도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그리고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이해가 안 됐다.
저토록 불행하다고 하면서 어찌 그것이 필수라고 하는 걸까.
이제는 이해를 한다.
내가 젊은 시절 내내 찾아 헤매던 삶의 이유, 그리고 목적.
아직도 누군가 내게 삶의 이유가 뭐냐고 물어온다면 확실히 답할 순 없지만
이제는 논리적인 삶의 이유나 목적 같은 건 필요 없다.
삶 그 자체로 행복하기 때문에.
난 삶의 행복을 찾지 못해 숨을 이어가야 할 이유를 찾았던 듯하다.
이제는 말한다.
행복하려고!
난 행복하다.
난 엄마다.
난 가끔은 버거운 이 이름으로 사는 것이 꽤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