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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선택하면 (1)

by 리온


갑자기 늘어난 여유시간에 뭘 할지 고민하다, 컴퓨터를 켰다. 과제 때문에 앞 부분만 살짝 봤던 드라마를 재생했다. 그때는 OTT의 등장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급격하게 늘어났던 때였다. '아, 이런게 있었지' 싶었던 영화들이 추천목록에 우르르 떴고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대면 예고편이 자동재생 됐다. 갓 나온 것들도 많았다. 그 덕에 5년에 한두 개 있을까 말까 한 '인생작' 이 계속해서 갱신됐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창 밖이 밝아지든 말든 영화를 보기에 바빴다.


그 새 알바도 구했다. 놀면 뭐하냐, 돈 벌지. 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별 생각없이 공고를 보다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해 놓을 걸 정해두지도 않았는데 어떡하지, 하는 고민이 무색하게 내 시간은 빈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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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가끔 시간이 나면 서점에 들렀다. 지하로 내려가면 목재 책꽂이에 가짜 풀 장식들이 나를 반겼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스테디셀러들과 바로 뒤의 베스트 셀러 코너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시간을 때웠다. 어쩌다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면 열어봤고 첫문장까지 마음에 들면 계산대로 갔다. 평대에 있는 소설을 눈으로 다 훑은 날에는 슬쩍 다른 코너로 향했다. 요리, 경제, 역사. 그러나 그 날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익숙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선택하라' 라는 문구였다. 평소라면 뻔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나쳤겠지만 그때는 무슨 호기심인지 바로 책을 열어봤다.


책의 첫 부분에는 '안전지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루고 싶어 하는 것들은 모두 그 안전지대 밖에 있다고. 안전지대고 나발이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데 이런 걸 읽어도 되나 싶었다. 애초에 하고 싶은 게 있긴 한건가?


책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읽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책을 쓰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운동에 관심이 생기던 차였지만 이 관심이 얼마나 갈 지도 몰랐다. 돈을 벌어보니 꽤 보람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왕이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내린 결론이 맞는 건지 바뀔 건지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완벽주의는 허상' 이라느니, '나를 가로막는 건 나 밖에 없다' 는 둥 상투적이고 진부한 얘기가 이어졌지만 나는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왠지 이대로 가버리면 지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쩔수 없이 계산을 했다. 집에 도착한 후로도 표지만 몇 번 노려보다가 책을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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