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하던 일을 하고,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가던 곳을 가려고 한다. 잘 아는 것들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책에서는 변화하고 싶다면 그런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불편함이야 따라오겠지만 그건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공포가 합쳐진 것일 뿐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책의 문장은 뻔하고 단순했지만, 동시에 나는 왜 이런 책들이 욕을 먹으면서도 늘 베스트 셀러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한 장 한 장 읽을 수록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차올랐다. 어쩌면 나도 내 스스로 숨겨왔던(혹은 나도 모르는) 것들을 안전지대 밖에서 꺼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책을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조용한 카페에서 내 심장만이 시끄럽게 두근댔다.
반 쯤 읽었을 때, 이럴게 아니라 뭐라도 해봐야 겠다는 생각에 책을 덮었다. 뭐가 있지. 아, 나 휴학했잖아. 알바도 시작했지. 안 보던 이런 책을 보는 것도 어쩌면 안전지대 밖으로 한 발 내딛은 셈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닿자 기분이 더더욱 들떴다. 타이밍 좋게 돈을 더 많이 주는 알바를 구하기도 했다. 시간은 좀 길었지만 그래서인지 어지간한 직장인과 월급이 비슷하게 나왔다. 시간은 없고 돈은 넉넉했던 나는 비슷한 자기계발서를 계속해서 주문했다. 이미 안전지대 밖에 나왔다고 생각하니 가속도가 붙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알바는 하필이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고 나는 거기서 자주 열이 뻗쳤다. 약간 포장하자면 덕분에 나는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겠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니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비슷한 자기계발서를 여러 권 사고 빌려서 읽었지만 더 해낸 거라곤 책장에 소설 대신 자기계발서를 채워 넣은 것 뿐이었다. 책을 읽고 나면 나른하게 몰려오는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은 '다 읽었으니 내일부터 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마무리됐다.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간간히 책에 나온 대로 약간의 시도를 했고 몇 번은 성공했다. 중구난방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다이어리를 사고 매일 뭘 했는지 기록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뭐라도 흥미있는 일이 있으면 완수하는 날까지 일을 쪼개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알바가 힘든 날에는 다이어리를 빼먹기 일쑤였으며 체크리스트를 하루 이틀 빼먹고 나면 실패했다는 생각에 다시 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다시 하면 돼'라는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고 무뎌졌다.
1년이 지난 후 내게 남은 건 자기계발서 여러 권과 인간에 대한 혐오감, 아마 나는 뭔가 꾸준히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더 늘어져 있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게 뻔했다. 도망치듯 휴학했지만, 이제는 더 휴학할 이유도 없다며 다시 학교로 도망치듯 복학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