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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게임을 플레이한 지 10시간이 지났습니다.(완)

by 리온

[알림. 게임을 플레이한 지 10시간이 지났습니다]


호기심에 시작했던 게임은 내 대학 생활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학기 중에도 간간히, 방학 때는 한 번에 10시간이 넘도록 하기도 했다. '[알림] 게임을 플레이한 지 10시간이 지났습니다. 과도한 게임 이용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화면에 뜬 경고 문구에 흠칫하기도 했지만, 곧 게임 친구들이 자기들은 12시간, 20시간이 뜬 적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너는 이제서야 ‘튜토리얼’이 끝난 거라며 웃어댔다. 축하한다, 이제 진짜 게임 시작이네. 그렇게 마을에 모여서 채팅을 치던 우리 옆으로 같은 길드원이 한 명 지나갔다.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뉴비였다. 내 옆에 잠깐 멈춰선 캐릭터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올랐다. 좋은 사냥터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잠깐 아이템을 팔러 마을에 왔는데 빨리 레벨업을 더 해야겠다며 웃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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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핸드폰에 알림이 왔다. 동기 중 하나가 다들 장소는 정했냐고 묻는 톡이었다. 우리는 4학년 1학기에 실습이 잡혀 있었다. 실습을 할 곳은 각자 컨택하거나 학교의 랜덤 배정에 맡길 수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전자를 택한 동기들은 여러 부차적인 절차를 밟아야 했다. 몇몇 동기들은 '이미 인원이 마감됐다더라', 혹은 '다행히 나는 성공했다' 등의 답장을 보냈다. 톡을 내리면서 나는 학교가 아닌 곳에서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대학 튜토리얼'이 끝나고 현장에 던져진 나. 실전에서 고군분투하는 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울상인 나. 그래도 버티는 나. 어쩌면 꽤 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 그러기 무섭게 다시 좌절하는 나.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멍하니 창밖을 보는 나. 나, 나, 나...



나는 길드원들과 게임 친구들에게 그만 가봐야겠다며 접속을 종료했다. 모니터 속의 사람들을 돕고, 뚜렷한 목표 레벨을 향해 아무리 몬스터를 잡아도 현실에선 여전히 '이거다'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였다. 20살의 데자뷰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휴학을 신청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핑계로 다시 현실에서 도망쳤다. 주변에는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었다'고 둘러댔다. 무섭게도 동기들 중 아무도 휴학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네가 없으면 우리끼리 실습을 가란 말이냐고 울상을 짓던 친구들도 결국 차근차근 졸업을 향해 걸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건지 여전히 확신은 없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할 수도 없었다.







익숙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선택하면 (1)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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