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설치해 본 게임은 어릴 때와 바뀐 게 없었다. 평평한 화면에서 오른쪽, 왼쪽, 위 아래로 점프를 하며 몬스터를 죽이고 경험치를 올리면 됐다. 마침 방학맞이 경험치 이벤트를 하고 있던 지라 내 레벨은 1초에 한 번 꼴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30분이 채 되지 않아 나는 온갖 화려한 스킬들을 쓰며 사냥터를 휩쓸었다. 나는 단숨에 50레벨을 찍었고, 사냥을 하며 주운 아이템들을 팔아 레벨에 맞는 옷도 샀다. 어째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을 때보다 더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임 속 세상은 예측 가능한 위협과 익히기 쉬운 생존방법들로 가득했다. 레벨을 올리는 법: 몬스터를 잡아서 경험치를 올린다. 몬스터가 잡히지 않으면: 스킬을 강화하거나 더 높은 스탯이 달린 장비를 구매한다. 장비를 살 돈이 부족하면: 사냥을 해서 떨어지는 돈을 모으거나 몬스터에게서 떨어진 아이템을 판다. 그것도 안 되면, 현실 돈으로 게임 재화를 산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지니 편안함이 찾아왔다. 나는 내친 김에 길드까지 가입했다. 소개 문구대로 길드원들은 뉴비인 나를 반겨줬다. 간간히 나를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팁들을 알려주기도 했다. 경험치가 잘 오르는 사냥터의 위치, 좋은 아이템을 싸게 건질 수 있는 방법, 보스의 스킬을 쉽게 피하는 방법... 옛날 생각이 나 '네', '오오' 라며 꼬박꼬박 채팅을 쳤다. 동시에 게임 밖 사람들도 떠올랐다. 교수님들의 생신 파티를 해야한다며 무조건적으로 돈을 걷겠다고 하던, 오티를 위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장기자랑을 준비해오라던, 과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동기에게 받을 때까지 수십 통의 전화를 걸던 사람들이.
그때 쯤 친구들은 여러 대외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무엇에 급해져야 하는 지도 몰랐다. 나도 뭔갈 해야하나? 그러면 뭘 해야하나. 일단 전공 쪽으로 알아봐야 하나? 하지만 난 이쪽으로 나가지도 않을 건데. 초조한 밤은 모두 게임으로 채워졌다. 오늘은 몇 레벨까지 키워볼까, 내일 새로운 이벤트를 한다던데 과연 어떨까. 나는 답이 없는 물음보다 확실한 답을 선택했다. 그게 비록 현실이 아닐 지라도.
그렇게 3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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