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외식을 하러 나가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게 안 '어린이용 놀이터'의 여부였다. 흔히 감자탕 집이나 보쌈 집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푹신하고 미끄러운 매트와 작은 놀이기구들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외투를 벗어던지고 매트에 다이빙을 하곤 했다. 이미 놀고 있던 아이들과 "안녕, 이름이 뭐야?", "엄마 아빠는 어디 앉아 계셔?", "우리 엄마 아빠는 저-기 있는데." 라며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스몰토크를 하기도 했다. 놀이터가 없는 식당에는 오락기를 몇 대 두기도 했는데, 거기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해주는 기계가 있었고, 아이들은 이미 동전을 탑처럼 쌓아두고 조이스틱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락기는 문방구 앞에도 있었으므로 나는 종종 내 또래의 아이들이 널빤지를 덧댄 것 같은 의자에 앉아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가 오락기 앞에 앉건, 다른 친구가 하는 걸 지켜보건 상관은 없었다. 재미있으면 그대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문방구에 들어가 불량식품을 사 먹으면 그만이었으니까.
조금 더 지나서는 플래시게임에 빠졌다. 컴퓨터실에서의 수업은 첩보원의 생활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는 엑셀과 파워포인트 위로 창을 하나 더 띄워 선생님이 지나가는 순간에 서로를 향해 티나게 헛기침을 하곤 했다. 나는 언제든 창을 아래로 내릴 준비를 하면서 순간의 스릴을 즐겼다. 슈의 라면가게, 까끌래뽀끌래, 고향만두 만들기는 기본. 파워레인저가 나오는 게임, 불량배들을 혼내주는 게임, 함께 퍼즐을 맞추는 2인 게임까지 가리지 않았다. 게임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았고 나와 친구들은 새로운 게임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뻐했다. 어쩌다 5분이라도 자유 시간이 생기면 작은 머리통들은 작은 모니터 앞으로 모여 낄낄댔다.
꼭 플래시게임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큐플레이, 마법학교 아르피아, 야채부락리 쿵야같은 온라인 게임들이 떠올랐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 흐름에 올라탔다. 하교 후에, 피아노 학원이 끝난 후에 우리는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게임을 켜기 바빴다. 친구들과 아바타를 꾸미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닉네임을 고르다 '이미 존재하는 닉네임입니다'라는 창에 막혀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친구들은 놀이터에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미련없이 책상 앞을 떠나 아파트 앞 놀이터로 직행했다.
온라인게임과 플래시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온라인 게임 안에는 나같은 진짜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어쩌다 친구와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 게임을 켠 어느 날, 나는 NPC가 주는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하고 같은 곳을 빙빙 돌기만 했다. 맵을 둘러보던 나는 고수같아 보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능숙하게 어디로 가면 된다, 이걸 하면 된다며 친절히 알려줬다. '감사합니다'. 또박또박 친 채팅에는 'ㄱㅊ'라는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대로 그는 맵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간질였다. 그가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어쩐지 같은 동네 주민인 것 같은 친근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내 세상은 빠른 속도로 넓어져 갔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간간히 친구들과 피씨방에 가서 한두 시간 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어쩌다 한 번, 친구들과 함께 하기에는 딱인 놀이였다. 피씨방이 아니더라도 노래방, 아니면 맛집 찾기, 그것도 아니면 동네 놀이터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물고 시시콜콜한 얘기하기 등 취미는 수도 없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무언가를 조사한다며 내 취미와 장래 희망을 묻는 시멘트 색 종이를 나눠줄 때면, 나는 게임 대신 '독서'라고 적어 냈다. 진짜로 책을 꾸준히 읽기도 했지만 약간의 허세와 핑계도 섞여 있었다. 중고등학생의 취미란 뻔하기 마련이니까. 독서, 음악감상, 드물게는 운동. 취미라 정의되는 활동이 얼마나 많은지도 몰랐지만 거기에 관심도 없었고, 있대도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와중에 그럴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해 온,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취미를 골라 적어 낸 것이다.
그 ‘취미’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건 스무 살이 되어서였다. 깊은 고민 없이 적었던 장래희망을 따라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직감적으로 ‘이건 아니구나’ 싶었다. 낯선 장소나 사람들이 어색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잘못 앉은 자리처럼 묘한 불편감이 느껴졌다. 여기서 배우는 것들, 해야하는 것들, 졸업 후 되어야 할 것이 피부로 와닿자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진로에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십 대에 자신의 꿈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이야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방황하기도 한다는 걸 알지만, 그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내 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저 종이에 다들 괜찮다고 생각하는 직업 중 하나를 골라 적었을 뿐이라는 것. 그러나 여전히 뭘 하고 싶은 지는 몰랐다. 당장 자퇴나 편입을 할 정도로 관심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학교에 도착해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겠다고 다짐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었다.
어쩌다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아’ 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면, 여지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이런 생각을 부숴놨다. 예를 들면 한 살 차이로 자신을 ‘선배’로 칭하며 군기를 잡는 것. 1년 빨리 학교에 들어간 게 그들에게는 어떤 권력의 상징인 듯 했다. 더 한심한 것은 그 중엔 빠른년생, 즉 나와 동갑인 선배도 있었다는 점이다. 웃음기를 빼고 훈계하듯 소리를 칠 때면 코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그 밖에도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업을 하는 교수라든가, 재미도 감동도 없는 엠티 같은 것들이 주기적으로 나를 현실에 데려다 놓았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건 공강에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점심 시간에 맛집을 찾으러 갈 때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도 다음 강의까지 시간이 좀 남으면 카페나 노래방, 그것도 귀찮으면 빈 강의실에서 수다를 떨곤 했다. 어쩌다 한 번씩 “피씨방 갈래?” 라는 얘기를 들으면 “할 줄 아는 게임 별로 없어” 라고 말하면서도, 친구들과 나란히 피씨방 의자에 앉았다. 10여 년 전 플래시 게임이 대세였다면, 그 때는 FPS(First-Person Shooter. 예시로는 오버워치)나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 예시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이 흥하던 때였다. 친구를 따라 익숙하기도, 생소하기도 한 게임을 몇 개 해보면서 우리는 나란히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아이템을 쓰면 어떡하냐?’ 라는 비난이기도, ‘쟤 왜 저렇게 잘하냐?’ 라는 탄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항상 ‘다음 번엔 내가 이겨주겠다’로 끝나는, 시시하기 그지 없는 하루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끔 집에서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과제가 끝나고 한 시간 쯤, 어쩔 땐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친구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면 나 혼자서도.
하지만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 대학생이라면 꼭 해 봐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동기들은 주말을 활용해 알바를 했고, 모은 돈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복수전공을 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럴 만한 시간이 나질 않았다(사실 알바를 하기도 싫기도 했다). 젊을 때 여행을 가보라는 소리는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지만, 내 체력은 초기엔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쏟아부었으며 나중엔 양쪽 전공에서 내주는 과제를 쳐 내느라 바닥의 바닥까지 끌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아리 활동 또한 관심있는 분야는 여전히 없었으며, 설령 어디든 들어갔을 경우에 자칭 ‘선배’ 들이 득실거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CC가 된 친구들도 많았고, 과팅을 하자며 단톡에 메시지를 올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자만추라는 핑계를 대며 그런 메시지들을 피해갔고, 동성 친구들을 만나 가끔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내 주량을 살짝 넘겨 마신 어느 날, 나는 세수와 양치까지 완벽히 한 상태로 방에 들어섰다. 심장이 좀 빠르게 뛰는 것 말고는 괜찮았다. 과제는 대충 마무리 해 둔 상황이었고 시간은 침대에 눕기에도 꽤 늦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잠을 청하는 대신 컴퓨터를 켜고 종종 하던 게임을 클릭했다. 마침 접속 중이던 친구를 초대해 평소처럼 일반 게임을 하려다, 무슨 용기가 난 건지 경쟁전(승패에 따라 포인트를 얻거나 잃고, 그걸로 등급을 매기는 게임)을 하자고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그 전까지는 경쟁전을 한 번도 돌려보지 않은 ‘일겜 유저’ 였다. 승패에 무언가 걸렸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게 첫 번째였고, 다들 진지한 분위기에서는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친구는 내 말에 흔쾌히 알겠다며 매칭을 잡았다. 30초가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나는 긴장이 된다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친구는 별 거 아니라며 지금이라도 일겜을 돌리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럴까?" 나는 망설이며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대답했다. "빨리 말 해, 일겜 돌려?" 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칭이 잡혔다는 알림이 떴다. 그와 동시에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온 몸에 퍼졌다. 허리도 똑바로 펴고 앉았다. 마우스를 쥔 손에는 땀이 배어나 입고 있던 티셔츠에 손바닥을 문질러야 했다. 그렇게 뻣뻣이 굳은 채로 캐릭터를 골랐다.
그 때 이겼는지 졌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술기운을 빌리기엔 내가 너무 제정신이었다는 것. 술기운을 빙자한 용기를 내서 무언가에 도전했다는 것만 기억날 뿐.
그 이후로 나는 꽤 자주 경쟁전을 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 점수가 오를 땐 기뻤지만 떨어질 때 그렇게 까지 절망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승급전이나 강등전에서는 처음 게임을 할 때처럼 떨리곤 했지만 모니터 앞에서 이마를 짚고 멍을 때리다 보면 땀도 금세 식었다. 그렇게 경쟁전을 하는 어느 날, 같이 매칭된 사람 중 한 명이 채팅을 쳤다. "진짜 망겜". 아마 전 판에서 지고 온 듯 했다. 그러자 우리 팀의 누군가가 반박했다. "갓겜인데". "이게 뭔 갓겜임 OO가 갓겜이지", "그것도 망겜인데?". 사람들은 게임이 시작되고도 계속해서 다른 게임들과 이 게임을 비교하며 갓겜망겜 토론을 펼쳤다. 나는 게임 내내 채팅을 보고 웃기만 하다 문득 그 사람들이 말한 게임은 뭔가 궁금해졌다. 채팅이 전부 기억나진 않았지만 몇 개의 키워드만 넣어서 검색해 봤다.
그렇게 여러 게임들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어딘가 익숙한 RPG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동시에 '아직도 서비스를 한다고?' 싶은 의아함도 들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게임을 다운로드 했다. '게임 설치 중...' 내가 하고 있던 게임보다 다운로드가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옛날 게임이 뭐 이렇게 용량이 크지? 싶었지만 잠자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체감 상) 수십 분 만에 완료됐다는 창이 떴다. 나는 그 즉시 바탕화면에 생긴 아이콘을 더블 클릭했다. 앞으로 그 게임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지 모르는 채로.
알림. 게임을 플레이한 지 10시간이 지났습니다.(2) 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