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반에 깨는 게 적응이 될 만 함과 동시에 실습은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날, 나는 여느때처럼 비좁은 버스 안과 차로 꽉 찬 도로를 보며 작은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이런 풍경은 오늘이 끝이다'. 나는 길고도 짧은 시간을 버틴 내게 상이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집 근처 빵집에 들렀다. 신메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빵 몇 개와 익숙한 빵들도 몇 개 골라서 계산했다.
낯설고 익숙한 맛이 입 안을 감도는 동안 메모장을 켰다. 뜨문뜨문 적어뒀던 아이디어들을 눈으로 훑었다. 한밤중 가로등을 보고 적은 것, 민트 음료를 바닥에 쏟고 적은 것, 시간표를 짜다 갑자기 적은 것들이 죽 나열 돼 있었다.
그땐 이러려고 쓴 게 아니었다. 답답해서였다. 내가? 글을 쓴다고? 헛웃음을 지었지만 가끔 드는 뜬금 없는 생각들까지 버리긴 아까웠다. 다음에, 언젠간 쓰지 뭐, 로 굳어진 생각들은 차곡차곡 굴러 마음의 벽을 무너뜨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무너뜨린 건 아니고, 살짝 생채기가 생긴 정도였다.
어쨌건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 문장들을 좀 더 이어나가 보자고 생각해야 (스스로에게)덜 어색할 것 같았다. 용기를 얻기 위해 빵을 한 입 더 베어물었다. 달큰한 크림이 내 선택에 박수라도 치는 듯 했다. 맥락 없이 떨어져 있는 문장들 뒤에 커서를 가져갔다. '그리고...'와 '그래서...'로 문장을 몇 개 더 적어나갔다. 꽤 그럴듯 했다. 생각 외로 이 일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까지 들었다.
변화를 결심한 사람은 마음이 이렇게나 가벼워지는구나. 별 게 아니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 남은 빵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