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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책이 없으면 내가 쓰... 이것만 먹고 (2)

by 리온

설탕이 뇌를 자극하는 시간은 단 0.6초. 내가 지금 먹는 아이스크림은 혀에 닿자마자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고, 다른 아이스크림을 또 먹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 상관 없었다. 지금의 아이스크림은 그간 내가 했던 고민의 보상이고, 앞으로 이야기를 쓰기 위한 연료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빵이나 아이스크림, 초콜릿, 젤리를 입에 물고 아무 생각 없이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나갔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스럽게 전개가 되는 건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진작 할 걸! 작은 후회도 하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그러나 단순히 '뒷 내용을 이어 적는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거리가 있었다. 내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들은 대개 이야기의 한 조각이었을 뿐, 완전한 이야기를 만드려면 그런 조각이 수도 없이 많아야 했다. 나는 몇 개의 조각만 이어붙이다 금방 싫증이 났지만 그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해서 그런 것이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다음 아이디어로 넘어갔다.


아이디어 조각들이 점점 미완의 이야기로 쌓이기 시작하자 뭔가 잘못됨을 깨달았다. 시작은 흥미로웠지만 결말이 없는 얘기도 있었고 전후사정을 모른 채 중반부의 얘기만 적혀있는 것도 있었다. 단 하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져 있는 게 없었다. 이건 이야기라고 할 수 없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흥미가 떨어진 이야기를 꾸역꾸역 적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뭐 때문이지. 어떻게 해야하지. 이마에 손을 얹고 고민해 봤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앉아서 고민만 한다고 답이 나오나. 대충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밤바람을 맞으며 냅다 걸었다. 목적지를 정해 두지 않는 것도 내 집필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들자 실소가 터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생각하다 우선 왜 글을 쓰고 싶었는지부터 떠올렸다. 터무니 없고 막연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미 나와 있는 이야기들은 내겐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니까. 정확히는 나를 만족시킬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지금 쓰는 이야기는 나를 만족시키는 이야기인가? 애초에 내가 만족할 만한 이야기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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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해결됐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다시 고민이 생기다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아이디어 목록을 펼쳐 가장 끌리는 걸 골라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고른 게 정말 끌리는 이야기인지 그냥 이 상황이 답답해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에 고른 건지 헷갈렸다. 냉장고로 가 아이스크림 한 개와 옆에 있던 과자 몇 봉지를 집어 왔다. 으적으적 입에 욱여넣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배가 불렀지만 더이상 쓸데 없는 고민이 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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