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주 10일 차, 9/9(금요일), 추석 연휴 1일 차, 오늘 걸어야 할 코스는 9번째 코스이다. 카운트를 하지 않으면 제주도에 내려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오늘이 무슨 요일 인지, 평일인지 휴일인지 알 수가 없다. 날짜 개념이 점점 무감각 해지고 있다. 그래서 다녀온 코스들도 매일매일 정리하려고 한다. 코스를 마치고 나면 우선 개인 밴드에 마음에 드는 사진들과 함께 짧은 글을 써서 하루의 여정을 리뷰한다. 그러고 나서 '브런치(카카오 글쓰기 플렛포옴)'에 글을 쓴다. 1일 1코스 걷기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여정을 정리하지 않으면 기억도 안 나고 본 것도, 느낀 것도 뒤죽박죽 되기 때문에 피곤하고 늦더라도 잠들기 전에 초안이라도 작성한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수정하고 싶은 부분,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고쳐서 지인들에게 카톡과 밴드에 공유한다.
다녀온 코스들도 매일매일 정리하려고 한다.
전날 7코스의 종점은 '월평포구'였지만 버스정류장은 '월평 아왜낭목(아외 나무가 있는 길목이라는 뜻)'이었다. 종점도 중요하지만 해당 버스 정류장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음날 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다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 지명은 한번 보고 외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그냥 사진을 찍어서 보관한다. 아침 일찍 제주올레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이곳에서 내렸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19.6km로서 평균 거리인 15km 보다 다소 길어서 약간은 긴장상태로 출발했다. 시작점에서 5km 시점의 푯말을 보고 시간을 보았더니 1시간밖에 안 걸렸다. 물론 초반에 길을 잘 못 들어 몇 군데를 패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는 속도가 대략 5km/시간이라면 대략 4시간 정도면 오늘 목표 거리를 주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되었다. 오로지 걷기만 하면 말이다.
시작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람하게 생긴 약천사 건물을 지나고 5km 지점에서 대포동 주상절리 해안을 만난다. 주상절리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소공원으로 진입해야 한다. 책에서 만 보던 주상절리를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설명에 따르면 마그마가 서서히 식으면서 쪼개지면서 6 각형의 기둥모양을 형성했다고 하는데, 왜 하필이면 6 각형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각형이나 4 각형 또는 7 각형 8 각형이 아니고 왜 6 각형일까. 생각해보니 자연에서 주상절리 외에도 6각형인 것들이 있다. 수정의 결정 모양, 논바닥 갈라질 때도 육각형으로 갈라지고 거북의 등, 벌집도 육각형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표면장력 때문이란다. 그게 뭔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의 세계는 정말 신기할 뿐이다.
종점을 3.6km 정도 남겨두고 발바닥에 찌릿찌릿한 느낌이 계속 전달되었다. 오른쪽 발의 물집이 어느 정도 아물고 있는 와중에 왼쪽 발바닥에서도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뜨뜻한 물에 풍덩 들어가 반신욕으로 피로는 푸는 것이다. 며칠 전에 갔던 남원의 사우나가 생각이 나서 오늘도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사우나를 찾아볼 거라고 머릿속에서는 계속 '사우나, 사우나'를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데 논짓물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광명의 순간이 왔다. 저 멀리 간판에 '족욕카페'가 눈에 띈 것이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올레길의 족욕카페였다. 미친 듯이 뛰어들어가서 '제주 논짓물 노을 차 +해수 감귤 족욕' 세트를 주문했다. 한잔의 노을 차와 한통의 뜨꺼운 물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족욕을 끝나고 나오니 다시 1코스 정도는 더 걸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논짓물'은 용천수가 바닷가 바로 앞에서 솟아나 농업용수나 식수로 사용할 수 없어서 버리는 노는물이라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