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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07. 2022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제주올레길 7-1코스(서귀포 버스터미널~제주 올레여행자센터)

제주 올레길 7-1코스에 있는 '엉또폭포'에서 발견한 멋진 글귀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무인카페 엉또 산장지기께서 팻말을 세워놓은 곳에 쓰여 있던 문구이다. " 엉또에 오셨다 가시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Thank you for visiting here, God bless you!)" 친절하게도 영어로도 표기가 되어있다. 얼마나 긍정적인 마인드인가.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결과도 긍정적으로 된다. 생각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미래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원리인 것이다. 내가 등산을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조오타~"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서 좋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좋고, 땀을 흘려서 좋고, 모든 것이 다 좋다. 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나의 뇌에게 세뇌를 시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암시는 결국은 좋은 일을 만들어 준다.  

Thank you for visiting here, God bless you!


제주 올레길은 21개가 정규코스이지만 추가적으로 '-1'을 붙인 곳이 5곳 있다. 섬이 3곳(우도, 가파도, 추자도)이고 내륙 중산간 코스가 2곳(7-1, 14-1)이다. 이렇게 해서 제주 올레길의 인증은 26개 코스를 마쳐야 한다.  오늘 코스는 섬 내륙 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으로 약 15.7km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TV 프로인 '1박 2일'을 통해 유명해진 '엉또 폭포'를 지나고 올레코스 중 최고 해발인 고근산 정상(396m)까지 오른다. 거기다가 제주도의 지질학적 의미가 큰 '하논 분화구'까지 만나게 된다. 서귀포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한 코스는 초반기에 산 쪽으로 꾸준히 올라간다. 그렇게 오르다가 뒤를 보면 서귀포 시내와 함께 드넗은 제주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출발점에서 4km 정도 지점에 '엉또 폭포' 안내판이 있었고 그 앞에 귤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 한분과 눈이 마주쳤다. 현지 아주머니는 능숙하게 내게 말을 건넸다. " 드셔 보세요." 판매대 옆에는 이미 껍질이 벗겨져 있는 귤들이 봉지에 담겨 있었다. 어찌 여행자가 공짜를 마다할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귤 반쪽을 입에 넣었다. 톡, 터지는 귤의 과즙이 달짝지근하고 시원했다. 갑자기 '비타민 C'가 내 몸에 활기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저히 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오천 원에 열개 정도 사서 그 자리에서 3개나 까먹었다. '혼자 올레길을 하는 중이냐'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그렇다' 고 말하고 나도 제주도민들도 올레길을 걷느냐고 물어보았다. 귤농사하면 바빠서 못한다고 한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에 있는데 정작 도민들은 즐기지를 못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했다.

정작 도민들은 즐기지를 못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이러니했다.



제주도에는 총 368개의 제주 오름 있다.(1998년 발표 기준) 그중에 제일 높은 곳이 바로 '고근산(孤近山)'이다.  정상을 오르는 길이 서울 인근의 산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1,000미터 이상의 산을 오르는 것처럼 숲이 무성이고 등산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처녀림 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도 제주도의 천연 산림들이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바다가 바라보이는 정상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후방으로 70미터 가면 정상이 있다는 표지판을 따라갔지만 정상석이나 정상이라고 표시된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올라와 있는 등산객에게 산의 정상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 " 한쿡말 몰라요~"라고 더듬거리며 말한다.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물어보니 싱가포르에서 왔고 여행 중이라고 한다. 생김새는 한국 여대생처럼 생겼는데 이 멀리까지  와서 트래킹을 하고 있다는 게 씩씩하고 대견하게 보였다.    

하논 분화구의 '하논'은 '논이 많다'는 제주어 지명이다. 제주도 토질이 워낙 척박하고 물이 고이질 않아서 논농사를 짓기가 어려우나 이곳 평야는 제주 섬에선 유일무이한 천수답 논농사 지역이다. 현재는 사라져 버린 역사 속의 하논 마을은 제주 역사상 가장 무참하고 아팠던 두 사건을 겪었다. 바로 '이재수의 난(1901년)'과 '4.3 사건(1948년)'이다. 이재수의 난 때에는 천주교인들과 민간의 갈등 속에서 거센 민란이 발생했고 많은 신도들이 죽거나 떠났고, 하논 성당도 파괴되었다. 지금은 성당터만 보존되고 있다. 4.3 사건 때는 토벌대에 의해 마을 전체가 소각되어 없어지는 비운까지 겹쳤다. 관광객의 시선에서 보면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시설들과 과거가 올레길을 통해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제주도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제주도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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