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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17. 2022

혼자 걷다가, 둘이 걷는다

제주올레길 14코스(저지 예술정보화 마을~한림항)

‘유붕이 자원 방래 하니 불역 낙호아라(有朋이自遠方來하니 不亦說乎아라)'

어제저녁 늦은 시간에 서울에서 친구가 배낭 하나 가득 먹거리를 싸들고 제주도로 날아왔다. 한 달 동안 제주올레길을 걷고 있는 나를 응원도 할 겸 올레길도 같이 걸으려고 합류한 것이다. 월컴 드링킹(Welcome dringking) 용으로 편의점에서 한라산 소주와 제주 에일 맥주 그리고 컵 얼음을 준비했다. 비양도가 보이는 숙소 2층 테라스에서 밤바다의 정취를 느끼며 맥주잔에 얼음을 두덩이 넣고, 소주를 졸졸졸 따르고 이어서 맥주를 거품 가득 채웠다. "월컴투 제주 & 마이 프렌드" 하고 한잔 쭈욱 들이켰다. 어디선가 날아온 바다 짠내와 멀리 보이는 협재 해수욕장의 네온사인이 여기가 바닷가임을 느끼게 해 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었다. 혼자 있을 땐 혼자 있어서 좋고, 함께 있을 땐 함께 있어서 좋다.

‘유붕이 자원 방래 하니 불역 낙호아라(有朋이自遠方來하니 不亦說乎아라)'


아침식사로 친구가 가져온 베이글을 전자레인지에 덥히고 양송이 수프 분말에 뜨거운 물을 부어 전망 좋은 2층 숙소 카페에서 느낌 있는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남은 인생 매일 이런 느낌으로 이런 분위기에서 아침식사를 하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에 후다닥 짐 정리를 했다. 왜냐하면 마지막 베이스 캠프(숙소)로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올레 14코스의 끝자락에 있는 숙소(협재리, 하티 게스트 하우스)에 배낭을 맡겨두고 코스를 끝내고 배낭을 찾아  새로운 숙소로 이동을 하려는 계획이었다.  친구와 함께 짐을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출발점인 저지마을로 이동했다. 출발 전에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비상식량(에너지바)과 친구가 마실 물을 구입하고 출발 스탬프를 찍었다.

올레 14코스는  중산간 마을과 해변도로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코스이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제주도 올레길 경험을 위해 내려온 친구를 위해 나름 여러 코스 중에 고르고 고른 것이다. 전날 올랐던 저지오름을 왼쪽으로 두고 코스가 시작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소냥 숲길'을 지날 때 울타리 너머 여유롭게 무리 지어 있는 누런 황소들을 발견했다. 저렇게 여유 있게 자연에서 방목하고 있는 소들을 보니 왠지, 다시 육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읽은 <음식혁명, 존 로빈스 지음, 2011년>이라는 책에서 가축들의 비참한 공장식 사육현장에 충격을 받고 육식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울타리 바깥쪽의 들깨 줄기를 뽑아서 황소들에게 주니 너무 맛있게 먹었다. 건강한 황소는 우리를 건강하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곳을 지나쳤다.

중산간 마을과 해변도로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코스이다.



'오시록헌 농로' 길의 오시록헌은 아늑하다는 의미의 제주어이다. 밭 길을 걷는 느낌이 아늑하다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나는 여행자의 한 사람으로 무심코 이곳을 지나고 있지만 밭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9월의 땡볕 아래에서 비닐도 깔고, 삽질도 하며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과연 저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등산복에 얼굴이 탈까 봐  모자를 눌러쓰고 머프를 눈 밑까지 올려 쓰고 선글라스를 쓴 내 모습이 혹시나 그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몰라 서둘러 그 길을 빠져나와 '굴렁진 숲길'로 들어갔다. 움푹 파인 지형을 제주어로 굴렁 지다고 하며 제주올레에서 새롭게 개척한 길이라고 한다. 이곳을 어느 정도 지나자  백년초 선인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안가의 선인장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월령 해안가에서 마주친 '무명천 할머니 길'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1949년 4.3 사건이 일어난 지 10개월이 지난 즈음에 신생 정부에 의해서 행해진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무차별적 학살이 발생했다. 이때 토벌대의 총격에 당시 35살이었던 진아영 할머니는 얼굴에 총상을 입고 평생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평생 트라우마를 겪으며 2004년 9월에 비로소 세상과 이별했다. 그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았던 그 할머니가 평생 사셨던 생가가 그곳에 있었다. 잠시 묵념을 하고 그곳을 지나쳤다. 그녀가 생계를 위해 평생을 길렀다는 선인장이 그녀의 소박한 집 안뜰에 자라고 있었고, 마을 전체에 선인장들이 자생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선인장 마을이라고 부른다. 선인장이 이곳에 자생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멕시코에서 해류를 타고 밀려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해안가의 선인장 마을, 금능해수욕장과 협재 해수욕장을 지나 협재리 숙소에 도착에 배낭을 찾아  코스를 마무리하고 카카오 택시를 불러 새로운 숙소로 이동했다. 새로운 숙소는 제주 공항에서 멀지 않은 애월읍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로서 지인이 제주도 살기를 위해 1년 동안 렌트한 곳이다. 제주도 한 달 걷기를 준비하면서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 마침 그 기간 동안 비어 있으니 부담 없이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내가 평소에 인덕을 많이 쌓기는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식사는 네이버에서 핫플레이스 소문난 애월읍 해안가에 있는 '원조 고등어 쌈밥' 집에서 바닷가에 떨어지는 낙조를 보면서 서울 촌놈이 제주도를 맛보았다. 식당이동 중에 제주 도민 택시기사의 얘기가 머리에 맴돌아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 제주도 사람은 고등어 쳐다도 안 봅니다."

" 제주도 사람은 고등어 쳐다도 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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