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부터 종로에 있는 한의원을 다니면서 코 치료를 받아왔다. 만성 코막힘이 그 원인이다. 특히 환절기에는 알레르기까지 겹쳐서 더 심각하다. 더군다나 코골이가 심해서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초기 치료때는 코 안쪽에 부기를 빼기 위해 매주 침을 받다가 이제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침을 맞는다. 희한하게도 침 치료 이후에 코안의 부기가 빠지고 숨쉬기가 너무 편해졌다. 뇌로 공급되는 공기의 양이 전보다 훨씬 많아져서 그런지 머리도 맑아지고 코골이도 과거 50% 수준에서 20% 수준(전체 잠자는 시간 중에 코를 고는 시간)으로 훨씬 줄어들었다. 평소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이 중요한 것인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 일 줄 은 몰랐다. 그런데 오늘 제주올레 14-1 코스의 '저지 곶자왓' 구간을 통과하면서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저지 곶자왓' 구간을 통과하면서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곶자왈'이라는 말은, '깊은 숲'을 뜻하는 '곶' 과 '마구 엉클어진 덤불'을 뜻하는 '자왈'의 제주 합성어이다. 제주 중간산지역(한라산과 해안지대의 중간지역)에 형성된 원시림을 일컫는 말이다. 제주도에 있는 곶자왈 지역은 제주 전체면적의 6% 정도이지만 사람 몸의 허파처럼 섬의 생명유지 기능을 맡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크게 차지하지는 않지만 곶자왈을 포함한 전체 녹색지대는 체감상으로는 제주도 전체 면적의 90% 수준이 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곶자왈이라고 명명된 올레코스는 총 4군데이다. 며칠 전에 다녀온 11코스(모슬포~무릉마을)와 오늘 진행한 14-1코스(저지마을~오설록 녹차밭), 그리고 15-A코스(한림항~고내포구), 19코스(조천 만세동산~김녕 해변)이다.
며칠전 11코스를 지날 때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우의를 입었는데도 속옷까지 젖고, 신발은 물 웅덩이가 있는 올레길을 걷는다고 발목까지 첨벙거리고 지나다 보니 등산화에서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기까지 했다. 점심시간을 이미 넘기고 오후 1시 즈음에 신평사거리에서 신평 곶자왓에 대한 안내판과 식당 간판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안내판에는 오후 2시 이후에는 직진하지 말고 도로를 따라서 우회하라는 것이었고, 식당 간판은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200미터 지나서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비를 비하고 점심식사 해결도 할 겸 코스를 이탈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벌써 올레길 시작하고 물에 빠진 생쥐꼴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태풍 전날 문어라면 먹던 날, 그리고 가정식 백반 먹었던 이날이다.
친절한 식당 아주머니는 1년에 서너 번씩 곶자왈을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곶자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조언을 해주신다. 고맙게도 나에게 우회할 수 있는 명분을 준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두 번째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곶자왈까지 와서 안 가면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요." 아니 이게 뭔 말인가. 가라는 말인지, 가지 말라는 말인지 헷갈렸다. 갑자기 몇 달 전에 다녀온 '한동일 신부'의 북 토크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살면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말 중에 '후회'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다시 떠오른 것이다. 결국 식사 후에 비옷을 다시 입고 비를 맞으며 우울한 첫 번째 곶자왈을 경험한 것이다. 솔직히 그날은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곶자왈까지 와서 안 가면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요
오늘 14-1코스의 곶자왓은 그날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특히, 문도지 오름에 올라 360도 사방으로 뚫린 푸른 초원과 저멀리 오름들, 더 멀리는 서쪽 바다까지 보이는 풍광과 더불어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말들을 지척에서 보면서 평온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오름을 내려와 다시 진입한 ' 저지 곶자왈'은 더없이 푸르고 짙은 원시림의 냄새가 코 속을 지나 폐를 관통했다. 도시생활에서 쌓여온 몸속의 미세먼지들과 스트레스 덩어리들이 코를 통해 내 뱉어지고, 다시 신선한 자연의 원시림 내음이 코를 통해 폐 속으로 흡입된다. 순간 내 코는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한 시간 가냥을 이곳에서 내 몸속을 정화시켰다. 오실록 녹차밭을 통해서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나의 몸은 이미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푸르고 짙은 원시림의 냄새가 코 속을 지나 폐를 관통했다.
오늘의 전체 코스는 '저지 예술 정보화 마을'에서 시작해서 '오실록 녹차밭'에서 끝나는 비교적 짧은 9.3km 구간이다. 총 제주 올레코스 중에 중산간지대를 경험할 수 있는 알파코스(7-1코스, 11-1코스) 중 한 곳으로 거의 3시간 반 만에 완주를 해서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다. 종점 스탬프를 찍고 바로 버스를 타고 한림항 쪽으로 이동을 했다. 다음날 걸을 14코스의 종점이 한림항이기 때문에 미리 가서 역방향으로 숙소가 있는 협재 해수욕장 방면으로 역주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아침에 코스를 출발하기 전에 지도상으로 봐 두었던 사우나가 한림항에 있었기 때문에 식사도 하고, 탕에 몸도 담그고, 역주행도 하기 위한 '1타 3피'를 위한 나름 잔머리였다. 사우나에 간 김에 제주도 토박이 세신사에게 몸을 맡겼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우나를 나서는 내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