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6코스도 14코스와 마찬가지로 내륙과 해안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코스이다. 해안길인 고내포구에서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아 다락쉼터 공원을 마주한 게 된다. 그곳에는 2명의 장군 석상이 있다. 얼굴 모습을 보면 매우 흡사해서 구분이 가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옷차림이 약간 다르고 석상 앞에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워낙 바람이 세고 오래돼서 그런지 이름의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다만 오른쪽의 석상 옆에 '항파두리'이라고 쓰인 바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몽 연합군에 대항한 삼별초 항쟁(1273년)의 김통정 장군의 석상으로 추정되고 왼쪽 석상의 옆에 '새별오름'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봐서 '묵호의 난(1374년)'을 평정한 최영 장군의 석상으로 추정된다.
내륙과 해안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는 코스이다.
김통정 장군이건, 최영 장군이건 제주도민의 입장에서는 외지인이었다. 명분은 두 사람 모두 항몽이라는 큰 타이틀에 묶여서 나라를 빛낸 위인일지라도 당시 제주도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였던 것이다.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 때의 특수부대를 말한다. 고려가 원나라에 가까워 짐에 따라 '삼별초'는 몽고에 대항하고자 강화도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거점을 옮기면서 3년 동안 항쟁을 계속했지만 결국 여몽 연합군(고려, 몽고 연합군)에 의해 김통정 장군은 제주도에서 전사하고 항쟁은 끝이 난다. 당시 제주도 해안가의 성벽(환해장성)이나 항파두리 토성 등은 모두 징집된 도민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되고 당시 섬사람들은 삼별초에 의해 머슴이나 노예로 전락되었다.
제주도에서 삼별초가 토벌되고 나서 몽고는 탐라 총관부를 두고 원나라 직할령으로 삼고 그들의 전투마를 공급하기 위한 말 목장의 하나로 만든다. 그 이후로 100년간 제주도는 실직적으로 몽고의 지배를 받고 몽고에서 이동한 몽고인들은 제주인들과의 혼인을 통해서 제주도는 급속도로 몽고화 되었다. 그중에서 몽고로 보내질 말을 관리하는 요직인 '묵호'인 들만 1,700여 명에 달했고 원나라가 쇠하고 명나라가 흥함에 따라 제주도의 묵호인들이 고려 정부에 대항해서 '난'을 일으킨다.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최영' 장군이 제주도 인구에 맞먹은 25,6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제주도민의 반을 몰살시킨다. 몽고인의 피가 섞인 가족들은 물론이고 몽골인을 도왔거나 연루된 자들은 모두 찾아내서 학살을 한 것이다.
'이렇게 피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섬에는, 100년 동안 주인 행세를 해 온 원나라 몽골인 대신에 고려인들이 새 지배자로 들어왔다. 그리고 20년 후 부터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 이름만 바뀐 조정 관료들이 파견되어 섬의 주인 행세를 했다. 결국 제주도를 수탈한 고려인이건 몽골인이건 나중에 조선인이건 모두 제주 섬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육지 것들' 이었던 셈이다. (제주올레 인문여행, 284쪽)'.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보면 항몽의 위인으로 '김통정 장군'과 '최영 장군'의 석상이 애월 해안도로의 언덕에 서 있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들었다. 그래도 외부세력에 대항하는 '자주 독립' 에 대한 의식은 분명히 중요하다. '주민자치 위원회'에서 건립한 두 장군의 석상 사이에 있는 커다란 비석에는 ' 애월읍경은 항몽멸호 의 땅'이라는 글자가 써있다.
제주 섬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육지 것들' 이었던 셈이다.
해안길을 마치고 바다 염전을 일궜던 구암마을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륙 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무인카페에서 쉬고 있는 중에 약 10여며의 올레꾼 그룹을 만났다. 자세히 보니 올레센터에서 운영하는 '아카자봉(올레센타 아카데미 자원봉사자)'으로 올레 봉사자들이 일반인들과 함께 올레코스를 함께 걸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올레길을 20여 일 걷는 동안 이렇게 많은 올레꾼들을 보기는 처음이다. 신기하기도 하고 봉사자께서 설명하는 것들을 귀동냥이나 해볼 거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인 항파두리 코스모스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봉사자께서 삼별초의 역사와 항파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너무 재미있었다. 눈치는 보였지만 꼽사리 끼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동 중에 제주도 무덤에 에워싸여 있는 돌들과 돌 사이의 통로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제주도 산소의 특징은 산소 주위에 돌이 싸여져 있다는 것과 밭 중간에도 산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바람 때문에 돌을 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또다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가축과 짐승으로 부터 보호를 하고 가축의 진드기나 병충해들을 없애기 위해 밭을 태울때 불이 번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덤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인이 여자면 무덤의 오른쪽에 통로를 두고 남자면 무덤의 왼쪽에 통로를 둔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제는 제주도 무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종점 마을에 도착해서 제주전통가옥에 차려진 멋진 북카페에서 하루일정을 마무리 했다.숙소에 가면 내일도 '아카자봉' 프로그램이 있는지 '올레 센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