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자봉'은 올레센터에서 운영하는 '올레 아카데미 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날 16코스를 걷던 중에 올레꾼들이 알려줘서 올레센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매일 모든 코스가 오픈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날짜에 따라 코스가 일정표에 게시되어 있었다. 다행히 오늘 날짜(9/20)에 17코스가 오픈되어 있었고 나의 추자도 일정도 강풍으로 인해 취소되어 급하게 인터넷으로 참여 신청을 했다. 그런데 참여 신청자들을 보니 거의 20여 명에 육박했다. 제주도 올레길 코스를 스무 차례 걸으면서 1번을 제외하고는 혼자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20여 명과의 동행이라니,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용기 내서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올레 아카데미 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출발시간과 출발장소에서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서 출석을 부르고 기념사진을 찍고 바로 출발한다. 올레 17코스의 출발장소는 내가 묵고 있는 4번째 숙소인 해안동 입구에서 걸어서 1.5km 거리에 있는 광령1리 사무소이다. 출발시간이 9:30으로 되어 있어서 한 시간 정도 일찍 숙소에서 간단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골 곰탕면과 잡곡 햇반으로 조식을 해결하고 나왔다. 평소에는 아침을 안 먹고 1일 2식의 간헐적 단식을 하는데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식사 패턴이 달라졌다. 주위에서 다들 걷기도 힘든데 아침식사를 꼭 챙겨 먹으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숙소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기 시작한 지가 20일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아침을 안 먹으면 허기를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부담스럽지만 챙겨 먹고 길을 나선 것이다.
출발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스무 명이다. 남자 5명, 여자 15명으로 여자가 남자의 3배이다. 갑자기 며칠 전에 읽었던 '삼다(돌, 바람, 여자)의 섬' 제주도에 관한 내용이 떠오른다. <제주기행 (주강현, 2021년,웅진 지식하우스)>이라는 책에서 16세기 조선의 문신인 임제의 '남명소승'에서 발췌한 인용문이다. "바닷길이 험하여 자주 표류를 당하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딸 낳기를 중히 여기며 여자 수가 남자의 세 곱이나 되어 거지라 할 지라도 다 처첩을 가지게 된다." 뭐 그렇게 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하튼 여성 참가자들이 남성 참가자보다는 월등히 많이 참가한 것은 사실이다. 원래 여성의 인원수가 많은 곳에 가면 왠지 남성들은 기가 눌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도 왠지 그런 느낌이다.
오늘 코스는 총 18km 정도로 9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3시경에 마쳤다. 확실히 가이드 봉사자와 함께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다. 혼자 걸어가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표식이 있어도 길을 잃어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아카자봉'은 그럴 일이 없다. 왜냐하면 전문 가이드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 여행 중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쳐 버리는 사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여행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셋째, 밥시간 놓칠 일이 없다. 혼자 다니다 보면 식당, 편의점에 대한 정보가 없어 쫄쫄 굶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현지 전문 가이드가 찜해둔 가성비 좋은 맛집에서 제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다.
가이드 봉사자와 함께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물론 혼자 다닐 때 비해 불편한 것도 있다. 마을마다 유례나 장소 설명을 하는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단체로 이동을 하다 보니 충분한 시간 확보가 안돼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리고 가끔 카페에 들러 멋진 바다 풍광을 보면서 우아하게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편의점에 들러 '쭈쭈바'를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함께 하다 보니 그게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 참가자는 '아카자봉'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안전' 측면에서 함께 하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오늘 여성 참가자들이 월등히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인듯하다. 함께 걷다 보니 벌써 종점인 과거 제주 행정의 중심지이자 4.3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던 '관덕정'에 도착해서 돌하루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올레 17코스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