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코스 중에서 가장 긴 19.8km이다. 일단 코스가 길면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욕을 한다. "에이 XX "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코스 순번도 '십팔'이다. 이번 코스는 구제주에 있는 관덕정 분식점에서 시작해서 낙조가 유명한 사라봉, 사라진 마을 곤을동 터, 검은 모래 삼양해수욕장을 거쳐서 닭모루처럼 생긴 정자 앞 바위, 그리고 연북정을 지나 조천 만세동산에서 끝난다. 며칠 전 '아카자봉(올레센타 아카데미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18코스도 미리 참가신청을 해두어서 시작점인 관덕정 분식점에서 9:30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숙소에서 좀 일찍 출발해서 한 시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전날 그 앞을 지나가기는 했지만 '관덕정' 안을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덕정(보물 제 322호)은 '제주목 관아'의 건물 중에 하나이다. '제주목' 은 조선시대 지방관청이자 행정구역의 명칭이고, '제주목 관아'는 제주목에 파견된 지방관인 제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 건물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제주목'은 '제주도'로 보면되고 '제주목사'는 '제주도지사', '제주목 관아'는 '제주도청'으로 보면 된다. 이곳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이지만 무형 문화재 대전 행사(9/22~9/24) 기간 중이라서 무료로 입장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옛 관청을 구경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제주목 관아 안에는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탐라순력도(1702년 제작) 체험관이 있는 망경루에서 286명 목사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형상(1653~1733)이 재직 당시 제작한 제주의 지도, 풍습, 문화를 기록한 탐라순력도를 구경하고 입구 쪽의 제주목 역사관을 둘러보았다.
'제주목 관아'는 제주목에 파견된 제주목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 건물이다.
내가 만약 조선시대의 선비로서 한양이라는 중앙무대에서 관직을 맡다가 제주목사를 발령을 받아서 이곳 제주도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성정을 베풀어서 제주도민들이 배불리 먹고 아무 걱정 근심 없이 살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했을까. 아님 매일 연북정에 올라 한양을 그리워하며 중앙에 있는 집권 세력들에게 상납을 하기 위해 제주도민들을 갈취하고 부정부패한 재물을 축적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자신이 없다. 제주목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올레 18코스를 지나는 화북 비석거리 와 조천 비석거리에 있다.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공덕이 있어서 비석을 세운 건지 아니면 스스로 세운 건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일부 비석의 이름이 뭉개져 있는 것을 보면 혹시라도 민중의 분노가 표출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든다.
코스가 시작되고 한 시간쯤 지나서 헉헉 거리는 숨을 몰아쉬면서 오른 사라봉에서 잔디 위의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사라봉을 내려와 다시 별도봉을 지나는 길에 '곤을동 터'가 있다. 안내판에는 '제주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마을'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하게 전에 시청했던 영화 '지슬(2012, 오멸 감독)'에서 동광리 마을 사람들이 토벌대를 피해 큰 넓궤 동굴에서 숨어 살던 여러 장면들이 오버 렙(overlap) 되어 지난 간다.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 3.1절 행사 때 기마경찰에 어린아이가 쓰러지고 방치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그날 6명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봉기한 것이 제주도 역사의 비극의 시절, 무참한 7년 7개월의 시작이었다.
'제주 4.3 당시 초토화되어 터만 남아 있는 마을'
제주도 북쪽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고 긴 올레 18코스는 조천읍의 '조천만세동산'에 도착해서야 끝난다. 조천읍에는 용천수 탐방길이 있어서 여기저기 용천수들이 많이 나온다. 올레꾼들도 잠시 지친발을 담궈본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남지역은 용천수가 중간산 지점부터 터져서 폭포나 하천들이 많고 산북지역은 해안가 쪽에 용천수들이 터져서 하천에는 물이 마르고 해안가에 마을이 많이 모여 있다는 올레 가이드 봉사자의 설명이다. 특히나 조천읍은 아주 오래전부터 용천수가 풍부하고 육지로 가는 제일 가까운 포구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본토 육지나 일본을 오가는 배들이 많아서 일본으로도 유학이 쉬워 현재까지도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도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4.3 사건의 두번째 총사령관이었던 일본 유학파 출신의 '이덕구 가족 무덤'도 조천읍 해안가에서 좀 떨어진 중산간지역에 있다.
인디언 속담에 '혼자가면 빨리가고 함께가면 멀리간다.' 라는 말이 있다. 오늘은 9명의 '아카자봉' 올레꾼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한사람의 낙오도 없이 완주를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거의 오후 4시가 다 되었다. 거의 6시간 30분만에 종점에 도착한 것이다. 함께 해준 올레꾼들에게 감사하며 다시 올레길 어디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함께 걸은 올레꾼중에 이태리에 5년동안 유학다녀온 분이 멋진 이태리어로 인사를 알려주었다.
"Ciao! Arrivederci (차오! 아리베데르치, 안녕! 다시뵈어요.)"
"Ciao! Arrivederci (차오, 아리베데르치, 안녕! 다시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