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올레18코스를 무리해서 걷기도 했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밀려오면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글 제목만 달랑 작성하고 잠깐 침대에 누워서 쉰다는 게 새벽녘이 돼서야 눈이 떠졌다. 제주올레길을 시작한 지 24일 차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여행 에세이를 썼다. 아마도 하루라도 빼먹었다면 그날로 중단을 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새벽에 전날 일정을 되새기면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혼자 다닐 때보다는 여러 명이서 다니면 더 글감이 풍부할 거라 생각했던데, 실제는 그 반대였다. 그래도 전날 아침 일찍 다녀온 '제주목 관아'에 대한 내용을 제목으로 잡고 어느 정도 줄거리가 잡히고 살을 붙여서 아침 9시나 돼서야 탈고가 되어 브런치(카카오 글쓰기 플렛포옴)에 올리고 지인들과 밴드에도 공유했다.
새벽녘이 돼서야 눈이 떠졌다.
올레길 19코스도 총거리가 19.3km이다. 이틀 연속으로 19km 이상 되는 거리를 걷는다는 게 무리다 싶어서 일부 구간은 버스 찬스를 쓰고 대신 '너븐숭이 4.3 기념관'에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제주어로 '너븐'은 '넓은'이고, '숭이'는 '자갈과 돌이 많은 거친 땅'을 말한다. 기념관 1층 전시실 입구에 붙어있는 죽은 어미젖을 물고 있는 갓난아기의 그림이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되고, 전시관 출구 쪽에 마련된 분향소 벽에 붙은 당시 학살당한 수많은 실명들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했다. 전시관을 나와 전시실 옆 영상실에서 10분짜리 당시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시청했다. 그당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 정부의 관심으로 4.3 사건 규명과 기념관등의 예산지원이 이루어져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기념관을 나와 해안도로를 한동안 걷다가 중산간 방향으로 들어서기 전에 기가 막힌 홍보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 올레길 19코스 마지막 편의점 (CU)'라고 적혀 있었다. 도저히 그냥 통과 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편의점 밖에 비치된 나무의자에 앉아서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야외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올레꾼들이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금 걸으니 숲길인 ' 벌어진 동산(두 마을로 갈라지는 곳이라는 뜻)'이 나타났다. 동산 중간에는 거대한 풍력 바람개비도 여러 개 설치되어 돌아가고 있었고 그곳을 통과하는 동안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 2021년, 느린 걸음 출판사>의 멋진 문구들이 올레길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서둘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마라 위대한 것은 다 자신만의 때가 있으니"
"일을 위한 삶인가, 삶을 위한 일인가"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은 없다. 좋은 삶이 곧 길이다"
"단순하게, 단단하게,단아하게"
"여행은 편견과의 대결이다"
"키 큰 나무 숲을 지나니 내 키가 커졌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을 걷는 자의 것이니"
"일을 위한 삶인가, 삶을 위한 일인가"
숲길을 나와 김녕 서포구를 3km 정도 남겨두고 저 멀리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작고 단아한 뒷모습의 올레꾼이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도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굴에 서로 머프를 쓰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정확한 나이가 짐작은 되지 않았지만 느낌적으로 나보다는 연상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들이 사십대 중반 이라는 것을 보니 거의 칠순이 넘으신거 같다. 그녀는 이미 코로나 시대 이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고 제주 올레길도 작년에 완주하고 이번이 두 번째 시도라고 했다. 트래킹은 나보다 한참 '고수'였다. 목적지인 김녕 서포구에 도착해서 스탬프를 찍고 그녀는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로 가고 나는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은 20코스, 그리고 모레는 21코스를 걷는다고 했는데 내 일정과 겹친다. 과연 다시 만날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