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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26. 2022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제주올레 21코스(제주 해녀박물관 ~ 종달 바당)

제주도에 온 지 27일 차, 오늘은 9월 26일 월요일, 제주올레 21코스인 마지막 코스를 가는 날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며칠 되었는지, 며칠 인지, 무슨 요일인지 가물가물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을 기억하면서 어제 저녁,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기분은 약간 업(Up) 돼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식사로 가볍게 바나나 와 오렌지 주스 한잔을 마시고 숙소를 나섰다. 전날 20코스의 종점인 제주해녀 박물관에서 제주시 외곽에 있는 숙소까지 멀기도 멀지만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거의 2시간이 걸렸다. 아침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버스에 올라 그동안 썼던 올레길 에세이를 1회 때부터 리뷰를 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고치고 수정을 했는데도 오타와 문맥의 흐름이 맞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그러다가 결국 꾸벅꾸벅 졸면서 오늘의 시작점에 10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면수동 마을회관을 지나서 저 멀리 여자 두 명으로 보이는 올레꾼들이 보인다. 혹시나 지난번에 19코스에서 만난 그녀가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다가 가는데 구성진 트로트 멜로디가 들려온다. 그녀들이 어깨춤도 살짝살짝 추는 것이 아닌가.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걸음을 좀 빨리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 살짝 돌아보는데 엊그네 그녀는 아니었다. 연배는 나보다는 한참 연상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명 중에 언니로 보이는 분이 70세 기념으로 올레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역시 대한민국 여성들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칠순 기념으로 400km 올레길을 걷고 있다니 말이다. 과연 나도 칠순에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도 칠순에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는 다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왜냐하면 오늘 코스는 11.3km로 평균보다는 훨씬 짧은 거리이지만 코스를 마치고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올레센터'에 가서 인증서를 받고 다시 숙소가 있는 제주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오늘 하루만 제주도의 우측 반 바퀴를 돌게 된다. 중간 스탬프를 찍는 '석다원'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으로 '성게 칼국수'를 먹었다. 어제저녁 해녀 축제장에서 먹은 '성게 국수'에 이은 성게 시리즈 2탄이다. 칼칼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에 칼국수 면발이 탱탱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배를 채웠다. 성게는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강릉바다에 놀러 가면 '돌고래 횟집'에 가서 성게 비빔밥을 꼭 먹고 온다. 성게의 쌉싸름한 향이 자꾸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제주도 종달리의 '성게 칼국수'가 생각날 듯 하다.


코스 후반부에 있는 지미봉은 올레길 첫 번째 베이스캠프였던 게스트 하우스 바로 옆에 있던 오름이다. 오름에서 보니 내가 첫번째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가 보인다. 한 달 전에 제주도에서 첫날을 보낸 설렘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제주도에 대한 설렘보다는 편안하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한달살이'에 내가 제주도 사람이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종달항을 지나 종점 스탬프가 있는 종달 바당에 거의 다 가서  올레 19코스의 그녀를 드디어 다시 만났다. 나의 완주를 축하할 겸 함께 갓 말린 반건조 오징어에 시원한 캔 맥주 한잔을 하고 다시 헤어졌다. 올레길에서는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졌다가를 반복한다. 종달리에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 올레센터로 이동해서 센타 1층 홀에서 주위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완주증과 메달을 받았다. 뿌듯한 느낌과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이렇게 나의 '제주 한 달 살면서 올레길 걷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이렇게 나의 '제주 한 달 살면서 올레길 걷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에필로그]

20여 년을 성장하고 30여 년을 직장생활을 했다. 평생직장생활을 하면 좋으련만 그게 본인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다.  오랜 직장생활 끝에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제주 올레길 한 달 걷기를 마음먹고 바로 비행기 예약하고 걷기를 시작했다.


무슨 해답을 얻거나 해탈을 하기 위해 걸은 것은 아니다. 단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 들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잠시 인생의 쉼표를 찍기 위해 올레길을 걸은 것이다. 걷는 동안 나쁜 기억들은 모두 길거리에 버리고 '사는 게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이라는 쉼표가 내 인생에 새로운 시작점이 되리라고 믿는다.


내일 다시 서울에 올라가면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삶에 지치면 다시 제주 올레길을 찾을 것이다. 남은 인생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쉬고 싶을 때 쉬어 가면서 살고 싶다.  무사히 제주 올레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고, 함께 걸어주고, 격려해주고, 열심히 내 글을 읽고 호응 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La via comincia quando camminando, la via appartiene che chi cammina,

라 비아 꼬민치아 꽌도 깜미난도, 라 비아 아빠르띠에네 께 끼 깜미나,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박노해 독서산책 중에서)"


                                                                                                      - 제주도에서 2022.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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