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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May 05. 2022

똥바람 맞고, 소백산

충북 단양 소백산

개인 남성의 성향을 빵종류로 비유하자면 나는 어떤 빵에 속할까?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대하는 카스테라 같은 남자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달콤하게 대해주는 단팥빵 같은 남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소 담백한 바케트빵 같은 남자인가. 나는 바케트빵 사이에 치즈크림이 들어있는 소박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남자이고 싶다. 성탄절 새벽에 사당역 10번 출구 근처에서 산악대장의 차를 탔다. 차에는 생크림이 들어가 있는 맘보스 빵과 누네띠네 과자 처럼 생긴 달콤한 소보로 베이스에 살짝 밤맛 앙꼬가 박혀있는 빵이 있었다.


전날 관악산을 가기로 하고 베낭까지 다 챙겨놨는데 저녁에 갑자기 친구의 부산 조문으로 인해서 산행이 취소되었다. 서둘러 갈만한 산을 찾던중에 네이버 산밴드의 '소백산' 산행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밴드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몇가지 준비물을 확인하는 순간, '영하20도'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허걱'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찰라를 고민했지만 '소백산의 눈산행을 기대하며 베낭의 짐을 다시 꾸렸다. 방한을 대비해서 털모자,겨울용 장갑, 핫팩 에 비닐 쉘터까지 그리고 두꺼운 오리털 외투도 챙겨 넣었다. 45리터 짜리 베낭이 빵빵해 졌다.


사당에서 2시간 반을 달려 소백산 천동탐방안내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들머리인 탐방안내소까지 걸어 올라가서 미리 주문한 따끈 따끈한 보온 도시락을 받았다. '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한시적으로 '내 도시락을 부탁해' 라는 제목으로 친환경 도시락주간(2021.11.29~2021.12.26)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단돈 8,000원에 말이다. 등산객들에게 항상 고민거리인 정상에서의 도시락 문제를 국립공원에서 해결해준 것이다. 완전 감동이었다. 하산길에 우린 ' 내 차를 부탁해' 라는 차량이동 서비스을 통해 또 한번 감동했다. 들머리에 주차한 차량을 날머리로 대리운전 해주는 서비스 였다.


오늘의 코스는 천동탐방안내소~주목군란지~비로봉~어의곡 탐방지원센타 이다.

작년에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을 위해 소백산을 등반한지 1년만에 다시 방문했다. 그때는 어의곡 탐방지원센타에 차를 세워두고 비로봉에서 인증하고 다시 원점회기를 했었다. 오늘은 새로운 코스로 들머리를 잡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악대장님의 정보에 의하면 전날 소백산 정산의 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눈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500고지를 넘어서 부터 땅바닥에 어렴풋이 얼음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1,000고지를 넘어서니 온통 주위에 상고대가 우리를 환하게 맞아 주었다. 아마도 밤사이에 소복히 쌓인 듯 하였다.


나뭇가지 위에서 활짝 핀 상고대는 방긋방긋 수줍은 새색시 같은 미소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상고대는 눈이 오지 않더라도 습기를 머금은 구름과 안개가 급격한 추위로 나무에 엉겨붙어 꽃처럼 피어난다. 주로 해발 1,000고지(1천미터)이상 고지대 에서 특별한 환경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산꾼들에게는 산행의 또다는 기쁨이다. 상고대는 나뭇가지에 얹힌 눈인 눈꽃과는 모양부터 다르다. 국내에서는 소백산, 덕유산의 상고대가 유명하다. 눈을 밟으면 '뽀도독 , 뽀도독' 소리가 난다. 그리고 산꾼들의 눈산행에는 또다른 소리가 난다. 바로 '키이익,키이익' 하는 스틱이 눈을 누르면서 나는 소리이다. 소리가 깊어질수록 우린 정상에 가까와 지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처음에는 콧구멍을 통해서 폐를 한바퀴 돌고 다시 콧구멍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콧무멍을 통해 들어온 공기는 다시 폐를 거치고 이번에 입으로 나온다. 마지막 더 힘이 부치면 찬 공기는 입으로 들어와서 폐를 거처 다시 입으로 나온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그 유명한 소백산 똥바람(칼바람이라고도 함)이 부는 능선의 바로 밑까지 도착했다. 전쟁을 치르기 전의 병사들 처럼 비닐 쉘터로 베이스 캠프를 만들고 체력보강을 위해 아직까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소고기 무국에 쌀밥을 말아 먹으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을 앞두고 능선의 계단에는 예상대로 매서운 똥바람이 온몸이 차가워지고 눈물, 콧물도 굳어 버렸다. 온몸의 체온이 떨어짐에 따라 왼쪽 장단지와 오른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났다. 보폭을 줄이고 중간에 쉼을 반복하며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그나마 거친 바람의 방향이 등쪽에서 불어와 약간 몸이 공중에 뜨는 듯한 느낌으로 정상탈환을 도와주었다. 정상에서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으로 인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작동하기 힘들정도 였다. 하지만 정상인증 사진을 찍고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 어플에 올려서 정상 높이인 1,439m 만큼의 포인트를 얻었다.


보통은 중년의 몸은 노년으로 달려가지만 마음만은 늙지 않으려고 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마음 뿐만 아니라 몸도 늙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평소에 나는 '하루산행은 1주일 생명연장 프로젝트'라는 말을 믿어 왔다. 특히 오늘산행은 특별하다. 새벽부터 잠을 설치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소백산 찬공기를 마시며 2021년 몸 속에 쌓여 있던 모든 나쁜 기운들을 날려 버리고 2022년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인생이 전래동화가 아닌 명작동화로 오랫동안 남을 수 있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행을 지속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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