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채 May 28. 2022

쓰레기 집게와 클린산행

자연을 사랑하자

등산배낭 옆에는 항상 작대기가 꽂혀있다. 눈에 띄는 오렌지색 손잡이가 달린 쓰레기 집게이다. 몇 해 전에 함께 다니는 등산 동호회에서 중년의 부부와 함께 산행을 했다. 키가 185cm 가 넘는 키에 약간은 거친 삶을 살아온 듯한 인상의 남편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산행 내내 아내와 알콩달콩 했다. 산에 부부가 함께 다니는 경우는 드물어서 속으로 진짜 부부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정상에서 동행한 사람들끼리 도시락을 먹고 그 친구는 배낭에서 주섬주섬 쓰레기 집게를 꺼냈다. 그러고는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고 하산길 내내 쓰레기를 주우며 내려갔다. 산행만 해도 힘든데 무슨 쓰레기까지 줍고 그러나 싶었다.


며칠 뒤에 동네 다이소에 가서 오렌지색 쓰레기 집게를 7,500원 주고 샀다. 며칠 동안 산행에서 쓰레기 줍던 그 친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선한 영향력이었다. 선한 영향력은 그렇게 내게로 다가왔다. 그 이후로 나의 배낭 옆에는 항상 오렌지색 작대기가 꽂혀있다. 처음에는 스틱과 봉지, 작대기가 서로 엉켜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요령도 터득했다. 등산길에는 평소처럼 스틱을 사용해서 정상까지 올라간다. 보통 쓰레기는 정상 주위에 많다.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듯이 정상에서는 작대기를 꺼내서 쓰레기를 봉지에 담근다. 하산길에는 스틱 한 개는 접고 왼손에 스틱과 봉지와 함께 들고 오른손에 작대기를 잡는다.


등산객 본인이 산에 가져간 것만 다시 가지고 내려가면 좋겠다. 별의별 쓰레기가 다 있다. 정상 부근에는 식사 후에 남긴 비닐봉지들과 젓가락, 페트병들이 주를 이룬다. 탐방로 주변에는 초콜릿 포장지나 사탕 포장지, 마스크들이 떨어져 있다. 가끔은 탐방로에서 일정 거리를 떨어진 은폐된 구석에는 하얀색 휴지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심지어는 땅에 반쯤 묻혀있는 은밀한 여성용 소모품도 있다. 하산하면 비닐봉지가 거의 꽉 차서 빵빵해지고 무게도 은근 무겁다. 아쉽지만 대부분 날머리에 쓰레기 봉지를 버릴 곳이 없다. 인근 산인 경우에는 지하철 쓰레기통을 이용하고 원정 산행인 경우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통을 활용한다.


'클린 산행'과 '플로깅(plogging)'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클린 산행은 산행 중에 사용한 쓰레기는 각자 가지고 내려오자는 취지이다. 백패킹의 용어인 LNT(Leave No Trace 흔적을 남기지 않은다)의 취지와 일맥상통한다. 현재는 국내 등산 용품 회사들이 중심이 되어서 활동하고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플로깅은 스웨덴어의 합성어로 plocha upp(플로카업, 줍다) 와 Jogga(조가, 조깅하다)가 합쳐져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조깅하다'라는 뜻이다. 2016년 스웨덴의 알스트롬이 제안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좀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였으면 좋겠다


이전 12화 냉골 릿지 트레킹, 도봉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