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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n 10. 2024

난 무엇을 가르쳤는가

교수생활 4개월 차 (아우스빌둥 특별반)

지난주 수업시간에 한 학기 동안 수업시간에 제일 기억 남는 키워드(Key word) 3개씩을 보드지에 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30년 동안 산업현장에서 근무한 경험과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를 만들고, 강의안을 만들고, 수업시간마다 온 말초신경을 동원하면서 참여형 수업에 온 힘을 쏟았다.


이쯤 되면 4개월 동안의 고생 끝에 '보람'이라는 단어로 약간의 보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는 순간, 최소한의 기대는 창밖에 불어오는 캠퍼스의 산들바람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기억이 없단다.' 무엇을 배웠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배웠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아무리 요즘 MZ세대가 돌려서 얘기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내심 섭섭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교실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곤 영영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상상이 전광석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몇몇 학생이 머리를 쥐어짜 내 수업시간에 배운 중요 용어들을 용케도 써내려 간다.


'고객만족, 작업효율, 경제활동인구' 등등.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전혀 기억을 못 하던 학생들도 옆 학생의 보드지를 흘낏흘낏 쳐다보면서 보드지를 메꿔간다. 우울해진 기분과 학생들의 기억력 회생을 위해 신나는 음악으로 BGM(back ground music 배경음악)을 틀어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경쾌한 음악에 맞춰 몇몇 학생이 춤을 춘다. 마음은 우울한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마음은 우울한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처음 찾아왔을 때의 낯섦은 어느새 한 학기가 지나면서 친숙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학교 시설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도 편안해지고 있다. 캠퍼스와 학교 주변에는 온갖 푸르름이 있고 멀리 산자락들도 지척에 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익숙하지 않은 보령이라는 도시는 이제는 푸근한 느낌이 드는 곳이 돼버렸다.


정비공장에서 늦은 오후에 고객들의 고함치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서 좋다. 월말마다 매출목표에 쪼여서 마음 졸이지 않아서 좋다. 현장 정비사들이 혹시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나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어깨에 뽕장착하고 갑질하는 인간들 보지 않아서 좋다. 비록 한 학기를 마치는 과정에서 가슴에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기는 했지만 다음 학기는 좀 더 좋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


다음 학기는
좀 더 좋아질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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