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된장국(명동밥집)
감자들이 물 받은 싱크대 속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투명한 물은 금세 황톳빛으로 물들고 여러 명의 봉사자들이 달려들어 손질을 시작한다. 어디선가 나타난 감자 깎기용 필러는 물에 젖어있는 감자의 껍질을 훌러덩훌러덩 거침없이 벗겨버린다.
감자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보통의 감자는 껍질을 벗기는데 잔뜩 힘이 들어가지만, 오늘 감자는 왠지 약간 물컹한 느낌마저 들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껍데기를 벗고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 아기 주먹만 한 조그만 감자부터 성인 주먹만 한 커다란 감자까지 크기가 제멋대로이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잠시 물기를 빼고 바로 도마에서 컷팅을 시작한다. 반을 가르고 다시 국거리용으로 세로로 한번, 가로로 슥슥슥 한입크기로 자른다. 잘린 감자는 3개의 바트(용기)에 물을 받고 가득 채워진 채로 대형 냉장고 선반에 보관된다.
급식소에서 사용하는 감자는 대용량의 조리를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손질된 감자를 사용한다. 껍질을 씻을 필요도 없도, 깎거나 자를 필요도 없다. 이미 식품가공회사에서 손질이 끝난 상태로 진공포장되어 배송된다. 보통은 손질된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후원자들이 직접 밭에서 재배한 식재료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물론 손질된 식재료를 사용하면 조리가 수월하기는 해도, 가끔씩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농산물을 접하다 보면 왠지 숙연해지기도 한다. 농산물을 직접 보내주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매월 일정금액을 후원금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급식소에 나와서 몸과 시간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고마운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그나마 최소한의 희망의 빛이 보인다.
희망의 빛이 보인다.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선 3kg짜리 된장 한 통 반, 간 마늘 1kg짜리 두 봉지 그리고 해물육수가루 500g짜리 3 봉지를 양동이에 넣고 물에 개어서 국양념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오늘은 식품회사에서 배송된 샘표 재래식 옛 된장을 대신해서 후원자가 두고 간 시골 된장을 900cc 국자로 세 덩어리 퍼서 조심스럽게 물에 갠다.
물을 끓이고 국양념과 건새우를 넣고 다시 끓이다가 며칠 전에 물에 재워놓았던 강원도 감자를 국통에 미끄러지듯이 빠뜨려 넣는다. 이어서 조리실에서 배송된 주키니 호박을 넣고 딱딱한 감자가 물컹해질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느타리버섯, 양파를 넣고 한 소 뜸 지나서 대파도 마지막으로 넣는다. 감자된장국이 마무리될 무렵에, 봉사자들이 화구 주위를 지나면서 무슨 국이냐고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