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같다고 생각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생명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죠.
안녕하세요, 후드티 버스커 영재입니다. 어느덧 해를 넘겨서 벌써 2월이 되었네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기쁨이 가득한 새해를 보내시기를 바라요 :) 어느덧 진저티플 8명의 절반을 지나 이제 5번째 주인공인데요! 이번 주인공은 작년 7월에 입사한 진저티의 Tea Taster(인턴) 윤수 님입니다!
영재: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윤수: 저는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김윤수라고 합니다. 저는 건축학을 배우다 왔어요. 건축학은 잡학 같은 걸 좋아해서 선택했어요. 그런 성향으로 진저티까지도 오게 된 것 같아요.
영재: 버스킹을 시작하게 되셨는데 어떠신가요?
윤수: 긴장되고요. 어젯밤까지 아파서 누워있었어요. 그러면서 혹시 오늘도 너무 아프지 않을까 기대했지만...ㅎㅎ 건강하네요. 인터뷰를 해본 적은 있지만 직접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과연 내가 쓸 말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걱정도 돼요.
영재: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잡학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좋아하셨었나요?
윤수: 음... 심리학만 배운다고 할 때, 이 심리학이라는 과목 하나만 배우면 세계가 깊어지지만 좁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교육학에 관심이 있어서 책이나 기사들을 읽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세상은 교육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이해관계나 가치가 엉켜 있는 거대한 세계구나.’ 교육 이야기만 하면 풀 수 없더라고요. 제 작은 세계 안에선 무언가의 발현의 시작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역사나 심리, 경제, 정치 등 다른 영역들도 다 얽혀있는 복잡한 세계라는 걸 받아들인 거죠.
잡학이라는 것의 핵심은 복합성인 것 같아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잖아요. 정말 많은 관점, 가치관, 이해관계가 있죠. 그래서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덤으로 다양하게 배울 수 있잖아요. 심리, 역사, 언어, 물리, 화학 등. 공식보단 맥락이, 단일성보단 복합성이 제게 더 진짜처럼 느껴지고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사실 잡학이라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진짜 같아요.
영재: 교육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이유도 더 들어보고 싶어요.
윤수: 음. 고등학교보다는 중학교가 더 생각나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한 변수는 어떤 반응을 촉진시킬까 하는 질문들이 많았어요. 학교 옆 작은 동네도서관에 자주 가서 겨우 2-3줄 남짓한 심리학 관련 서적을 다 한 번씩은 열어봤던 거 같아요.
고등학생 때는 교육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반에서 엎드려있는 친구들이 자꾸 눈에 보이더라고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스스로를 루저라는 식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볼 땐 그 친구는 춤을 정말 잘 추고 열심히 춘다든지, 또 한 친구는 추리 소설을 정말 많이 읽기도 하고, 줄거리 요약을 잘해준다든지. 입시 위주의 공부가 아닐 뿐이지 열심히 하는 영역도, 잘하는 영역도 있어 보였어요. 근데 다들 뭔가 필요 이상으로 위축되어 있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학교나 교육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마 그게 시작점이었을 거예요.
영재: 저도 대학교 다닐 때, 했던 프로젝트들이 생각나네요. 저도 주변에 친구들이 우울해하는 것을 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한 게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관련된 책이나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고 친구들에게 바로바로 써먹으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윤수 님은 그때 어떤 것들을 했어요?
윤수: 음 저는 행동을 했다기보다는, 책부터 팠던 거 같아요. 저는 하나 꽂히면 관련된 책부터 파거든요.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정리하고 글 쓰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곤 했어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가 자율형 공립고등학교였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약간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어요. 제가 교육학에 관심이 있다는 걸 선생님께서 아신 후로 선생님과 함께 교육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제가 쓴 글로 선생님과 이야기도 하고요. 그다음 해에 만난 선생님께서는 제가 교사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줄 아셨는지, 제게 수업을 시키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직접 면대면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저는 정책을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던 거죠.
영재: 교육에 대해 진심이셨군요. 그런데 지금은 왜 건축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윤수: 건축이라는 잡학으로 돌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회의감 때문이었어요. 교육이라는 큰 세계를 보고 회의감이 들었거든요. 교육이나 정책이라는 게, 결국 어느 순간에 가서는 가치 싸움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서로 각자의 가치를 상대에게 설득하는 게 좀 피곤해 보였어요.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야기하면 영영 해결될 거 같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쉽게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걸 보고 나서는 약간의 회의감이 찾아왔어요. 마침 제 주변의 관계도 무너지는 시기가 겹치면서, ‘나는 이 기나긴 설득의 싸움을 끝까지 못 마칠 거 같다.’ 생각해서 교육 쪽에 대한 관심에서 돌아서게 되었죠.
그렇게 반년 정도 명확한 방향 없이 있던 중 우연히 필리핀 태풍과 관련된 기사를 보았어요. 집들이 다 날아갔던 거예요. 그 시기에 필리핀에 여자 네 명이 살 수 있는 컨테이너 집을 후원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내겐 너무 당연하게 주어졌던 ‘집’에 대해 처음 생각해 봤던 것 같아요. ‘내가 손댈 수 없어 보이는 큰 문제 말고, 내 바로 앞에 있는 것부터 천천히 정리하고 싶다’ 그래서 건축을 선택하게 됐어요.
영재: 그렇군요. 저는 성적에 맞춰서 갔던 거 같은데, 방향을 확실히 정하고 입학한 게 멋지고 신기해요. 처음 들어간 건축학과에서의 1년은 어땠어요?
윤수: 슬펐어요. 저는 낙서조차 안 했던 사람이었어요. 주구장창 글만 썼지, 그림이나 도식으로 정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 미술 시간, 제 그림은 친구들이 창문에 세워뒀어요. 한 번은 다 함께 강아지를 그렸는데 선생님께서 왜 넌 혼자 젖소를 그렸냐고 하셨어요. 저도 배 잡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만큼 반에서도 잘 못 그리던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건축이 잡학이란 건 알아도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거 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거예요. 처음 들어가서 3차원 그림을 도무지 못 그리겠더라고요. 안 되는 게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해서 화장실에 가 울기도 했어요. 수업은 5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작업을 하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교수님께 크리틱을 받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이해가 되기 전에는 안 하는 선택을 많이 해서 투시도를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내 눈엔 이게 높이가 같은데 그림에선 왜 다르게 그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배우는데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영재: 가장 못한다고 생각했던 분야에, 납득이 가지 않은 작업을 해야 하는 마음까지... 참 힘드셨겠네요. 그래도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다거나,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나요?
윤수: 기억에 수업이 두 개 있는데요. 어쩌면 교수님에 대한 기억인 거 같아요. 먼저는 첫 학기 설계 스튜디오 교수님이셨어요. 그 교수님께서는 제게 매주 전화를 해주셨어요. 낙담한 저를 설득해주시기도 하고, 일단 시작하게끔 해주시고, 너무 기초적인 제 질문에도 대답해 주셨어요. 저는 저의 작업물이 이상하고, 내가 너무 정말 못하고 있다 생각하는데, 그 작업물을 좋아해 주셨어요. 그때의 저는 열등감이 너무 커서 그 칭찬을 못 받아들였지만요.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건, 저희 동기나 선배들 중에 그런 케어를 받은 학생이 없었다는 거였어요. 정말 특별한 애정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다음 학기에는 어쩌다 보니 첫 학기 교수님의 친구 교수님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도 제 작업물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말없이 수업을 안 나간 적이 있었어요. 교수님께서는 제가 아픈 줄 알고 카톡을 길게 보내주셨어요. 무어라 답장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제 작업물이 부끄러워서 못 나갔다고 답장을 드렸어요. 교수님께서는 ‘혼자 고민해 봐서 안된 거니까 제가 있는 거예요. 저랑 이야기하러 나와요.’ 라며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해주셨어요. 그 힘으로 다음 수업 시간엔 크리틱을 받으러 갔어요. 부끄러움을 안고 막상 작업물을 보여드렸을 때는 크리틱(작업물에 대한 비평)을 안 하셨어요. 그냥 한 마디하고 가셨어요. ‘윤수는 좋은 건축가가 될 거야’ 그때는 ‘날 위로하나?', '교수님 보시기에도 내가 금방이라도 포기할 거 같나?’라고 밖에 생각을 못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의 가능성을 봐주신 거 같아요.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을 때 자꾸 이 교수님의 한 마디가 저를 자꾸 한 발만 더 가게 한 힘이 되더라고요.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런 이야기는 안 하시는 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그 시절을 버티게 해주는 순간은 특별한 애정을 받은 순간인 것 같아요.
영재: 윤수 님 곁에는 좋은 어른들이 있었던 거 같네요. 가능성을 봐주는 어른이랄까요. 저도 곁에 좋은 어른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윤수: 맞아요. 돌아보니까 1학년때 만났던 교수님들은 철학적이셨던 것 같아요. 2학기 때 만난 교수님이 되게 재미있는 분이셨어요. 귀엽고 뭐랄까 약간은 아이 같은 교수님이었달까요. 되게 까다로우신데 뭔가 유치하시고, 지적하실 건 다 지적하시지만, 비유로 한마디를 던지면서 오래오래 생각나게끔 설명하시는 분이었어요. "늑대와 개, 낮도 밤도 아닌 노을 지는 그 순간 그 사이에 아름다움이 있어요.", “건축은 cut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말씀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이 건축이, 기둥은, 계단은 어떻고 저떻고 이런 이야기는 거의 안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에 오래 사셨기도 해서, 별명이 0개 국어셨어요. 반전매력이죠. 귀여우시고 현명하신 분으로 기억되네요.
영재: 건축과는 작품 가지고 크리틱 받는다는 게, 아프기도 한 경험인 거 같아요.
윤수: 그때는 상처였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 방향으로 더 해보라는 걸로 받아들이지만, 그때는 ‘내 작업이 재미없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언제는 크리틱을 해달라고 거의 사정 사정하며 부탁해서 받았었던 적이 있는데요. 한 번은 자기가 만든 모형을 가지고 학교 뒤에 있는 중랑천에서 야외 수업을 하셨어요. 빛이 모형에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그날은 제 것에 대해서만 크리틱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주택 프로젝트였는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저는 제가 방학에 보고 온 건물과 닮은 걸 만들어가더라고요. 크리틱 해달라고 세 번 부탁드리니 한 마디 해주셨어요. ‘이건 이미 있는 거 그대로 가져온 거잖아’ 그러더니 제 건물을 거꾸로 뒤집으셨어요. 별생각 없이 천장 쪽에 틈을 냈었는데, ‘이 빛이 재미있네.’ 하시며 이리저리 돌려보셨어요. 사실 그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여러 교수님들께서 제 작업물을 크리틱 하실 때 늘 하시는 말씀이 건축적으로 풀어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건축적’이라는 게 무엇인지 늘 물어봤어요. 저는 건축적인 시선으로 보라고 했을 때, ‘전문화’된 시선에 갇혀서 다른 걸 못 보게 될까 봐 무서웠어요. 일상적인 시선으로 캐치할 수 있는 걸, 전문화된 렌즈로 바라보면서 놓칠까 봐 불안한 거죠. 물론 배워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결국 그러지 못할까 봐 불안했던 거죠. 그래서 건축학에 제대로 들어가서 배우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할 수 없었어요. 배워야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다는 조언을, 나도 알고 있는 조언을 들을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영재: 그런 두려움이 있군요. 저는 오히려 가이드라인이나 툴을 빨리 알려달라고 말하는데 참 신기하네요. 그런 게 없으면 저는 오히려 불안하거든요. 방향을 잃고 던져진 느낌이랄까요.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진저티에 들어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진저티에 들어오게 된 스토리를 말해주세요!
윤수: 음 사실 진저티는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어요. 스토리가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사 전 해에 주 5일로 점심때마다 일을 하며 공부를 병행하는 게 꽤 힘들어했었던 거 같아요. 게다가 건축에 소질도 없는 것 같았고요. 건축으로 현업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렵고 불안했죠. 금전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가족들도 있어서 돈을 꽤 벌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거든요. 그러다가 대외활동을 같이 하던 한 선배가 ‘사회혁신공감실습’이라는 수업은 프로젝트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 하더라고요. 건축 외에 다른 걸 파놔야 한다는 마음과 함께 신청했어요.
거기서 현선님이라는 좋은 어른을 만났어요. 이 수업의 교수님이셨거든요. 첫 수업부터 ‘저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 싶었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궁금했어요. ‘40대처럼 보이는데, 내면의 순수한 무언가를 어떻게 지켰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수함을 지킬 수 있던 건 실질적인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돈이 오고 가는 진짜 사회에서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분명 그 긴 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추잡한 걸 나보다 더 많이 보았을 텐데, 마음을 지켜올 수 있게 만든 시선도 궁금했고요. 이런 점만 있었으면 수업만 듣고 혼자 생각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는데 더 따라다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저한테는 반영적인 수업 구조가 인상적이었어요. 뭐랄까 수업의 구조는 계속해서 일관적인데, 학생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걸 매번 다르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거든요. 일관된 구조 속에서도 자유롭게 배우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수업이 짜이고 흘러가는 결과만 보았을 때는 아주 간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게 뭘까?’ 싶었어요. 저 방식이 건축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거였나 봐요. ‘여러 사람들, 그러니까 꼭 건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건축을 할 수 있을까?’ 정말 같이 짓는 걸 말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근거 없이 준비되지 않은 채로 전하면 그냥 실없는 이야기로 들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경험도 했었고요.
영재: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경험을 나누어주실 수 있나요?
윤수: 22년도에 건축 관련 프로젝트를 했었거든요. 7명이 있었는데 저 혼자 건축학과였고, 다른 사람들은 각기 다른 전공을 배우던 사람들이었어요. 근데 협업하기 정말 어렵더라고요. 저도 제가 해오던 방식이 있고, 다른 사람들도 각 학과에서 과제를 할 때의 방식으로 접근을 하니까요. 그러니 의견도 잘 모이지 않더라고요. ‘함께 만들려면 혼자 다 그려버리지 않아야 하는데, 협업하기 어려운 이유는 각자가 자기 전공으로 다 그려버리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문제를 보자마자 자신의 전공으로 내리게 되는 해결책들은 대부분 이미 지나간 방법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다만 여전히 어떻게 비우면서 함께 채워갈 수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현선님 수업은 왜인지 그게 되더라고요. 저도 이런 비물리적인 방법, 어떤 관점이나 태도를 배워야 물리적으로 그런 공간 또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정말 그런 건축을 하고 싶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맥락이 들어간, 그래서 모두가 자신도 함께 지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건축이요. 그렇지 않으면 다 지어지자마자 그 건축이 죽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혹은 그렇게 많은 자재와 에너지가 들어갔는데 얼마 못 가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그런 곳이 될 것처럼 그렇게 느껴져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신 게 진저티였고, 그래서 현선님이 나가셔도 들어오고 싶었어요. 여기서 봐야 할 게, 배워야 할 게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영재: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처럼 들려요.
윤수: ‘조화’를 보고 싶어요. 한 사람에 대한 공간도 재밌겠지만, 저마다의 고유성이 마구 섞이며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재작년엔 수업에서 ‘저런 게 건축으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을 고정시키고 무엇을 비워두어야 할까’ 생각했어요. 제가 다 같이 뭔가 만들고 싶긴 한가 봐요.
영재: 윤수 님은 건축에서도 소통과 통합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건축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윤수: 듣지 않으면 그 건축은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방식으로는 건축이 완성되는 순간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고, 더 확장될 가능성이 닫혀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건축은 지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지어 나갈 곳이었으면 해요. 거대한 물성을 가진, 고정된 건축은 죽게 되면 너무 큰 risk가 되는 것 같아요. 숨 쉬지 못하는 건축이 되는 것 같아요.
영재: 건축에서도 건물이 끝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어떤 여지를 만들어 놓고 싶다는 것처럼 들려요.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네요.
이번엔 저와 같이 하고 있는 GenZ(Z세대와 조직문화) 연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거 같아요. 함께 이 연구를 하면서 좋았던 순간도 어려웠던 순간도 많았잖아요. 제 이야기는 평소에 많이 했지만, 윤수 님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들어보는 건 처음인 거 같아요. 특별히 윤수 님이 이번 연구를 하면서 좋았던 점이 있었나요? 인상 깊었던 장면도 소개해주세요!
윤수: 당사자로 연구해 보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거리를 좁혔다 멀어졌다 하면서 연구하는 거. 사실 다른 연구들은 제 필터로 돌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젠지 연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작년 가을에 ‘일하고 있는 Z세대’를 대상으로 FGI를 했을 때였어요. 참석자 분 중 한 분은 겉으로 보기에 무뚝뚝하고 대답도 간결하신 분이었어요. 기존의 조직문화나 사고를 그냥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한 사람인 거 같았는데, 그분이 끝날 때쯤 ‘저도 이제 새로운 조직이나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라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저는 그분이 새로운 마음의 길을 한 발자국 가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보이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에 새로운 세상으로 가길 결심하셨다는 게 인상 깊었어요. 새로운 생각의 길로 가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뭐, 고민은 계속해서 있으셨던 거겠죠? 하지만 FGI 초반만 해도 자신의 일터에 그냥저냥 만족하신다고 하셨었는데, 그래도 새로운 길로 한 발 가신 거 아니겠어요? 또 다른 분도 기억나요. 처음에는 엄청 긴장해서 말이 안 나오셨던 분이었거든요.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에는 편해지셨는지 편히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는데, 그냥 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게 저 사람의 진짜 얼굴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에 그분이 참 예뻐 보이더라고요. 긴장이 풀리고 자기 모습이 나오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말이에요. 그 장면이 가끔씩 생각날 때가 있어요.
영재: 윤수 님의 인상 깊은 점들은 사람의 변화와 맞닿아있군요! 누군가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윤수 님께 큰 동기인 것처럼 들려요. 젠지 연구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작업은 뭐였나요! 저는 기획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FGI를 구상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이야기 나누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윤수 님은 어떤 파트였나요?
윤수: 가장 몰입했던 업무는 전사였어요. 특히 재미있는 대화를 한 후에 하는 전사 작업은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하는 것 같아요. 대화를 할 때는 바로바로 반응하거나 하느라 신경 쓸 게 많은데, 전사 작업을 하면서는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우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마음껏 편하게 눈으로 볼 수 있잖아요. 편하게 곱씹어보고, 놓쳤던 단어들이나 화자가 이 단어를 어디에서 다시 썼는지, 이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나온 마음의 단어들도 관찰할 수 있고요.
영재: 제가 제일 힘들어하는 전사작업을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다시 돌아와서 혹시 아쉬웠던 순간이 있나요?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이 점이 좀 안되었었구나 하는 부분이 있나요?
윤수: 음 마음을 다하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누군가를 끝끝내 설득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과 좌절이 있어요. 뭐랄까 우리가 하는 연구, 이 질적 연구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한켠에 있었어요. 그래서 줌인하기보다 줌아웃해서 참여했죠. 몰입해서 내 의견과 이야기를 담아내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열심히 하는 팀원들을 보며 간 거죠. 지혜님과 영재님(팀원)을 따라간 거죠. ‘이 연구가 정말 타당하다는 건지, 이런 방식이 연구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초반에 많이 했는데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연구는 진행되어야 하고, 계속 물어보기에도 좀 그렇고 해서. 진심으로 연구에 몰입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질적 연구라는 연구 방법뿐 아니라 그 무언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그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 건축에 대한 저의 막힌 부분도 풀리지 않을까 싶어요.
영재: 윤수 님이 젠지연구를 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윤수: 우리가 하고 있는 질적연구에 대해, 설득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을 내려놓고 몰입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벗어나 진저티라는 새로운 지형에 왔으면, 새로운 태도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자주 생각해요.
영재: 지금까지는 업무와 윤수 님의 관계를 말씀해 주신 거 같아요. 그렇다면 관계적으로 배운 것은 뭐예요? GenZ 팀이 서로 이야기하고, 세대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간,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윤수: ‘팀’에 대해서 생각해 본 거 같아요. 초반에는 팀으로 일할 때의 진행 전, 중, 후 커뮤니케이션이라든지, 생각과 다르지만 같이 가보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에 주의를 많이 기울였어요., 나중에는 저마다의 재능과 강점을 발휘하면서 같이 가는 거구나라는 걸 비교적 편히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물론 비교적이라는 거지 아직도 배워가야 할 것이 많죠.
제가 요즘 어떤 계기로 ‘하이큐’라는 배구 만화를 보고 있어요. 주인공 팀 중 한 명이 탁월한 세터예요. 그런데 팀원들이 그 공을 받지를 못해요. 자기중심적인 세터라며 팀원들이 힘들어했죠. 세터도 동료들을 답답해하고요. 그래서 유망주로 주목받다가, 결국엔 좋은 고등학교에 가지 못해요. 배구라는 게임은 팀게임이고, 아무리 잘한다 해도 한 번 밖에 터치를 못하고, 팀 내에서도 토스는 최대 세 번만 터치할 수 있어요.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하냐 하면서 좋은 고등학교에서 이 친구를 받아주지 않은 거예요. 또 한 명은 시골에서 온 친구인데, 배구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 친구예요. 우연히 동네에 티브이 속 배구 경기를 보면서 꿈을 키우고, 혼자 동네 공터에 서서 연습만 한 친구였어요. 균형 없고 잠재력이 큰 둘이 고등학교 배구팀에서 만나 티격태격하며 팀으로의 역량을 높여가요. 팀의 주장도 가장 배구를 잘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팀 전체를 읽어주고 개개인의 잠재력을 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가 맡아요. 이 만화가 참 재밌는 게 다양하면서도 개성 있는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어떻게 협력하고 맞물려가는지 나오거든요. 더 현실감 있는 점은 주인공 한 명이 큰 도약을 이루어 팀을 이끌지 않아요. 다 같이 끊임없이 맞춰나가며, 신뢰하며 조금씩 자라난다는 거예요.
젠지 팀은 인턴이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두어서인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은 못해봤어요. 자꾸 저도 모르게 ‘난 결국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이큐 덕분인지 아니면 이제야 언어로 정리된 건지 몰라도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에게도 팀이 필요하다’ 오히려 나의 약한 점들, 부족한 역량들을 보면서 좌절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걸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저 혼자 모든 과정을 해내야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고등학교 때 그런 경험을 이미 해봤던 거 같아요. 굳이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늘 신뢰하며 제 생각을 말과 행동으로 지지해 주던 친구들이 기억나요. 지금 생각했을 때는, 제 생각에 동의해서 따라와 주거나 관계적으로 저와 친해서 바로 붙어준다 고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팀이라는 걸 몰랐던 거죠. 그저 나를 믿어주고 따라오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거예요.
고마웠지만 이제는 한 발 더 가보고 싶어요. 하이큐처럼 저마다 다른 역량의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며 맡기고 이끄는, 그런 팀을 만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런 걸 계속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든든한 팀이 제게 필요해요.
영재: 저도 그런 팀이 필요해요. 서로 의지합시다! 작년부터 이어서 올해도 진저티와 함께하게 되었잖아요. 윤수 님이 올해 경험해보고 싶은 건 뭐예요?
윤수: 음 앞에서 팀이 필요하다 했지만, 팀을 생각할 때 멀리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진저티를 생각했을 때 자꾸 금세 떠나야 하는 팀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물론 모든 만남엔 기간이 있는 건데도 말이에요. 지금은 ‘나는 결국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하거든요. 결국엔 혼자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있다는 생각도 막연하게 들고요.
진저티에 정착하는 느낌이 아니라서 팀이라고 깊이 생각을 못해봤어요. 적응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이 편안함에 적응하면면 학교에서의 강도 높은 시간을 해내지 못할까 봐, 여기에 안주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인 거죠. 그래도 지금 주어진 팀에 마음을 정하고 함께 팀으로의 세계로 한 걸음 더 가고 싶어요.
영재: 벌써 윤수 님이 들어오신 지 6개월이 되었는데요. 윤수 님에게 진저티는 어떤 의미였던 것 같아요?
윤수: 들어오기 전, 가장 큰 불안과 걱정은, ‘내가 이것마저도 다 포기하고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였어요. 소위 잠수라는 걸 타본 적은 없지만, 이것마저 버티지 못한다면 내가 뭘 해낼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건축보다 피로의 정도가 낮고, 하는 일도 내가 재밌어하는 분야들인데,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도 내가 견디지 못하면 그땐 정말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 때문에 많이 무서웠던 것 같아요.
최근 들어서 진저티플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윤수 님 지금은 윤수 님이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하는 때예요.’ 처음 몇 번 들을 때는 대답을 안 했거든요. 어떤 부분에서는 뭔가 이미 많이 받은 듯한 부채의식이 있어서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더 신경 써주셨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애정과 기회를 받은 느낌을 늘 가지고 있어요. 편애를 많이 받은 거죠. 그래서 내가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못해봤어요. 사실 부끄럽다기보단 생소해요. 진저티에서 내가 성실하게 보고 배우고 해내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받은 만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추구하시는 방향을 저도 원하고, 그리고 그 과정까지도 진심인 어른’들’도 처음이거든요. 그전에는 어른을 만나도 온전히 의지하기보단, 내가 내 것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놓이는 면이 있어요.
영재: 마지막 질문입니다! 진저티의 시그니처 질문인데요. 오늘 이렇게 인터뷰해 보니 어떠셨나요?
윤수: 긴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은 대화에서 몰입해서 아직 모르지만, 이불킥을 할 것 같아서 후회할까 걱정도 되고 그러네요. 고운님이 함께 와주셨던 거도 한수였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읽어주신 부분들에 파워풀한 인사이트가 있었어요. 특히 정리되지 않았던 내면의 맥락이 세밀한 언어로 꿰어질 때 내면에서 탄성이 나왔어요. 젠지 팀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네요. 제가 생각한 것처럼 나쁘지 않았어요. 영재님이 제가 인터뷰 버스킹을 제안받고 고민하다가 하겠다고 말했을 때 해준 반응이 기억나요.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야~~~ 잘 선택했다!!” 제가 자꾸 미뤄서 기운 빠졌을 수도 있는데도 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셨거든요. 그 장면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윤수 님은 ‘호수’ 같다고 생각해요.
겉으로만 보면 잘 안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깊은 내면에는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고, 그 생명들은 어떠한 제한 없이 자유롭게 그 안에서 뛰놀고 있죠. 호수가 주는 물을 들이마시면서 커가는 생물들도 곁에 있고요. 아 물론 더 깊은 곳엔 또 어떤 가능성이 있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해서요!
그런 윤수 님을 위해 이번 버스킹 곡은 특별히, 가사가 없는 곡으로 준비해 봤어요. 윤수 님이 용기 내어 여백을 채워준 만큼, 저도 용기 내어 한번 가사가 없는 곡으로 채운 것을 덜어냄으로써 윤수 님께 답해보고 싶어요.
이번 곡은 데파페페의 ‘좋은 날이었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dZPDDbPHNo
혹시 여러분도 바쁘고 꽉 차있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치고 있진 않으신가요? 아니 어쩌면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사실 저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답니다. 무엇을 경험하지 않으면, 경험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한 편의 몰려오는 공허함과 허무감을 애써 외면하면서요. 그래도 윤수 님과 팀을 이루고 윤수 님을 알아가면서 그 여백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여백을 내보려고 하고 있답니다. 이 곡을 통해서 오늘 바쁜 하루에도 여러분의 삶에 조금의 여백을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