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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대 Jun 21. 2021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1950년 6·25 전쟁의 기념 풍경Ⅱ: 학도병

우리 민족의 비극, 6·25 전쟁.


중·고등학생 신분으로 참전한 병사는 1951년 4월 현재 275,000여 명이 넘는다. 그리고 수많은 사상자들….


그들 학도병을 기리는 기념지도 여럿이다. 

추모하고 위령하는 기념 풍경은 어떠할지? 순례하듯 두드러진 몇 곳을 조성된 순서대로 찾는다.



1. 전몰 학병 추념비와 전몰 학도병 추념비

경주고등학교 캠퍼스, 본관 가는 길 우측 끝에 전몰 학도병 추념비가 섰다.

높이 3m는 되는 석벽이다. 제단 형식도 갖추었다. 전면 오석판에 전사 학도병 명단, 모두 48위. 그리고 확장 건립문이 새겨졌다. 

단단하고 듬직하게 보인다. 어떠한 풍파도 견딜만하다. 그런데 헌화대가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돌이지만 다르다.


전몰 학도병 추념비 확장건립문:

"… 선후배 학도 320명이 출정하여 애처롭게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이가 139명이라 그 가운데 39명은 전사한 것으로 확인되고 100명은 행방이 묘연하다. … 새 추념비를 건립하고 옛 비석은 보존하다."

경주고등학교, 전몰 학도병 추념비 정면과 배면(오른쪽 구석에 전몰 학병 추념비가 보인다.)

그런데, 이 추념비의 벽체를 살피며 뒤로 돌아가니, 구석에 작은 비석 하나가 있다. 

"보존한다"는 옛 비석인 전몰 학병 추념비 아닌가! 

왜 이렇게 감추듯 구석에 둔 것인지? 마치 퇴물 취급하여 무대 뒤편에 방치한 셈이다. 

경주고등학교, 전몰 학병 추념비

옛 비석은 온갖 풍파를 거치고 이제야 홀로 남겨진 처지. 아스라하다. 

그런데 아름답다. 비례감이 훌륭하고, 운치가 있다. 세월의 이끼가 생긴 듯,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더 진솔하게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비석 앞에서 자식, 친구를 기리며 통곡을 했었을지 ….


기념물 그 자체가 크고 대단해야 하는가? 낡아서 또는 형태가 진부해서 다시 제작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설령 다시 만들더라도 공존방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아니다.



2. 서울 학도병 참전 기념비서울 학도 포병 참전자 명비, 순국 학도 탑

용산고등학교 정문 내 오른편 자그마한 호국동산에 비와 탑이 나란히 섰다. 


서울 학도병 참전 기념비는 두 손을 모아 책 모양의 비문을 감싼 형태이다. 돌을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금석문: 

"… 학생복을 입고 교모를 쓴 채 북으로 출정 …"


서울 학도 포병 참전자 명비는 입간판 형식인데, 포병으로 참전한 서울 지역 학도의용군 341명의 이름을 새겼다. 그 앞에 대포와 포병들의 모습을 새긴 동판의 작은 원형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명비 안내문

"…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341명이 선발되어 … 112명은 안타깝게도 전사·실종되었다."


순국 학도 탑은 용산고등학교 학생 80명의 넋을 기리고자 세웠다. 


순국 학도 탑 금석문: "六二五사변에조국을 위하여목숨을 바친 학우들임께서 세우신배달 혼 길이 빛나리단기 四二八九.九 개교주년 기념일 용산중고등학교 동창생 일동 세움"

서울 용산고등학교 내, 서울학도병참전 기념비, 서울 학도포병 참전자 명비, 순국학도탑

기념물이 제각각. 서로 어울리지 않고 그저 나열되어 있다. 방치는 아닐 텐데, 먼지만 가득하다. 일시적이려니 싶다.

뭔가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는다.



3. 전몰학도 충혼탑

저 멀리 포항 시가지와 앞바다가 보이는 이곳 용흥 공원 언덕 위에 우뚝 섰다. 


지면에 둥근 지대석을 깔고 그 위에 높이 8.8m의 ‘亞(아)’자 형 평면의 탑을 올렸다. 단단하고 결집된 조형성을 갖춘 기단에 "천마"가 부조된 청동판을 부착하였다. 신라 고분벽화에 나오는 모습이다. 


탑신에 탑명을 한 자씩 새긴 석판을 끼웠다.

포항시 용흥 공원, 전몰학도 충혼탑

비문: 

"동해 물결 굽이쳐 반만년 푸르니, 여기 파도처럼 청청한 호국의 넋들이 출렁댄다. 마흔여덟 분을 위시한 1,394위 그 이름은 학도의용군이니 삼천리 금수강산 기슭마다 보듬어 이 겨레를 지키고 있다.…"


제막식 기념사:

… 학도들은 학도의 신분으로 자진해서 입대하여 공산군을 전멸시키고 나라를 지키는데 공산 침략이 위기를 죽음으로써 막아냈던 것이니 그 학도들의 거룩한 충성과 위훈은 영원히 우리 역사에 빛나게 되는 것이다… 의용 학도가 제일 많이 희생된 포항에 충혼탑을 세워서 … 전몰한 영령의 거룩한 충성과 위훈을 다시 추모하는 바이다"


제막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정도였으니, 국가적 차원에서 전몰 학도병을 위해 최초로 충혼탑을 건립한 사례가 된다.


충혼탑은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고, 담담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의미와 상징도 갖추었다. 무엇보다도 친밀하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 그리하여 넋을 기리는 데 주저함이 없고, 스스로 승화시킬 기회를 주는 듯하다.


한국 전통 석탑의 창조적 계승이 아니겠는가!



4. 포항여중 전투 학도의용군 명비

포항여고 정문 앞, 학도의용군 명비 마당은 테두리 하나 없이 열려있다. 주변은 일상적이라 조금 어수선하다.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를 가져와 중앙에 높이 받들고 그 주변에 여러 조형물로 구성하였다. 붉은 문양이 깔린 중앙의 바닥이 과하지만, 명비는 눈높이인지라 친근하다. 

우측 등신대 학도병 동상은 오른손은 묵직한 소총을 세워 쥔 채 왼손을 뻗어 비둘기에 닿고 있다. 평화를 염원하는가. 

포항시 포항여자고등학교 앞,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와 포항여중 전투 학도의용군 명비

이곳은 화사하게 꾸민 무대 같은데, 전몰자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좌측 크게 세워진 편지 조형물.

가슴이 먹먹해진다.


학도병 이우근의 편지(전문):

"8월 10일 목요일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가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덧붙인 설명:

이 편지는 포항여중 전투 참전 학도의용군 이우근(경기 출신, 동성중학교)의 유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피 묻은 편지만 남긴 채, 그는 끝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였습니다.

포항시 포항여자고등학교 앞, 포항여중 전투 학도의용군 명비 부분

이곳은 과거 기념을 존중하여 함께 하고 또 눈높이를 맞춘 듯 여러 조형적 장치를 활용하여 기념 풍경을 만들었다. 친절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혹시라도 너무 가볍게 여기게 될지 염려스럽다.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은 분위기임을 떨치기 어렵다. 


보다 더 진솔하고 경건하게 다가가게 할 수 없을까? 



5.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인천 수봉공원 언덕 위에 철책을 두르고 자리하였다.


높이 7.5m의 탑이 너른 바닥에서 서서히 시작되어 돌조각을 쌓아 올리듯 솟아올랐다. 탑신이 이루는 완만한 곡면이 두드러진다. 위로 오를수록 좁아지는데 정점 가까이 여신과 군인 모습을 새겼다. 꼭대기는 왕관의 장식처럼 피어난다. 기교가 세련되었다.

인천 수봉공원,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인천 수봉공원,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부분

연혁: 

"… 참전자 명단 현황 총 참전자: 641명, 일본 귀환자 268명, 본국 잔류자 226명, 전사자 60명, 실종자 87명"


앞 군상은 청동의 기운을 내뿜는 듯하다. 3인의 병사는 태극기를 치켜세우며 전투 자세이다.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조국의 제단에:

"동방의 거룩한 터전을 열고/ 유구한 역사의 명맥을/ 이어 온 배달겨레 … 의기와 정렬의 사나이들/ 그 정신 역사에 새겨/ 민족 행진에 횃불이 되고/ 조국의 제단에 피를 뿌려/ 청춘을 낙화처럼 바친 이들/ 겨레의 가슴마다 열매 맺아/ 조국과 함께 길이 살리라. 1979년 10월 1일"


학도병은 늘 학생복을 입는다는 인식을 고쳐주고 있다. 

그런데 전투 장면을 연출한 동상은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이다. 수많은 전쟁 기념물의 형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다 다를 텐데도 말이다. 싸우면 같아진다는 말인가.



6. 광주 전남 순국 학생 위령탑

광주시립미술관 옆 작은 편백나무 숲 가장자리에 자리하였다. 

높이 약 4.2m 정도의 책 형태의 조형물이 이채롭다. 옆에는 큰 소총을 든 오른손 조형물이 함께 하고 있다. 

광주 중외공원, 광주 전남 순국 학생 위령탑

건립기:
"… 펜을 버리고 그 손에 총을 들어 군번 없이 무명전사로 참전한 광주·전남 출신의 학도병 212명의 우국충정과 애국정신을 후세에 남기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


친밀한 크기에 익숙한 책과 펜과 월계수 그리고 총이 섞이어 하나의 큰 모양새를 이루었다. 폭탄의 파편 흔적까지. 대립의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친절하고 쉽게 이해할 만하다. 

다만 여기에 좀 더 "비상한" 그리고 "심각한" 인식을 줄 수 있으면 어떨지.



7. 학도병 충혼탑, 충령비

회색 톤이 많아 다소 어둡게 느껴지는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태백중학교 캠퍼스에 자리하였다.


높이 약 6m의 오벨리스크 형 탑이다. 아래에 기단이 크게 만들어 난간석까지 둘렀다. 든든한 형태의 기단 중앙에 "전투에서 승리하는" 장면을 새겼다. 탑 꼭대기에는 금속 공을 올렸는데, 마치 승리의 트로피 같다.

태백시 태백중학교, 학도병 충혼탑

충혼탑을 중심으로 방사선 8줄을 그어 8 지구 전투지를 표현하고, 18 군인이 전투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각자 이름표에는 실재 전몰 학도병의 이름을 지녔다! 그러니까 마치 실재 생존 때 활약하는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헌시: 태백 혼 월일 이창환

교모를 벗고 철모를 쓰고,

펜을 던지고 총검을 잡고,

학원과 조국을 지키려,

선혈을 뿌리며 백전백승한,

아! 장하다 우리 태백 혼

오! 우람한 표상 여기 섰도다.

태백시 태백중학교, 학도병충혼탑과 충령비

인체 크기의 학도병들이다. 얼굴 표정도 꽤 실감 난다. 큰 연출 무대이다. 독특하다. 좋게 보면, 상심에서 벗어나 "승전"도 알리고 우울한 현실을 극복하고 싶은 의도도 있지 않나 싶다.


동상 표현의 또 다른 극사실주의인 셈이다! 그러나 부담 줄 수 있고, 관리도 쉽지 않을 텐데. 게다가 매일 이 풍경을 봐야만 하는 재학생들은 어떠할지? 장난감 병사들의 전쟁 놀이터 같아 보인다고 한다면, 너무 무례하다고 지적당하지 싶다.


작품 의도와는 달리 평가절하될 소지가 크다.

전몰자의 기념 풍경은 먼저 경건함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지.



8. 강릉 학도 6·25 참전 기념비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강릉 통일공원 내 한 곳에 자리하였다. 이곳에는 기념물과 비·탑이 즐비하다.


작품 설명: 호국의 얼, 꽃 피우다 휘호 최범규

본 작품은 ‘강릉 학도의 숭고한 희생과 화합 그리고 그것이 지켜낸 평화’를 주제로 제작되었다. 작품의 바닥에서 시작되는 조각들은 뿌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하나가 되어 상승하고 이 하나의 뿌리는 상부에서 꽃이 되어 피어난다. 이는 강릉 학도병의 기운을 받아 힘차게 피어나는 꽃, 즉, “피어오르는 희망”이며 “평화의 꽃”이다. 의용군의 소중한 희생과 애국정신이 자양분이 되어 피어 맺은 결실이 오늘날 평화의 꽃을 피운 것이다.

강릉시 강릉 통일공원, 강릉 학도 6·25 참전 기념비

헌시: 존귀한 별, 숭고한 충정 아득하여라- 강릉 학도병, 조국에의 그 불꽃 앞에서 엄창섭

"… 노을 속에 타오르는 선혈, 비목에 묻어있는

자잘한 기억의 흔적은 너무 또렷한데

조잘거리는 여울에 말끔 씻겨난 여린 풀잎,

어제의 참담함은 서러운 눈물의 강이다. …"


작자의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다만 작품은 첫인상에 어디서 본듯하면, 성공작이라 하기 어렵다. 물론 기념탑의 형식이 뻔하긴 하고 또 디테일이 차이 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 창작이 어렵다. 



9.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전장의 현장 가까이 포항시에 일찍이 개관하였다.

전시는 몇 차례 업그레이드되었다. 


바깥에는 전몰학도 충혼탑으로 "역사의 계단"이 숲 속으로  234단 오른다. 계단 찰판에 전투 관련된 기록 동판을 여럿 붙였다. 그 옆 "대표적인" 학도병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조형물까지. 어머니 동상이 함께 했다.

충혼탑 가까이 편지비도 새로 설치하였다.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옆 역사의 계단과 조형물

계단을 오르며 긴장하게 될까?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용흥공원 편지비

이곳은 학도병을 위한 기념관으로 그 의의가 크다.



10. 육이오 참전 학도병 기념탑

춘천 호반에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에 여러 기념물 중 하나이다. 춘천 대첩은 우두벌 소양강 전투로서 4일 3야의 격전이었다. 학도병을 기리는 탑이 뒤질세라 높게 섰다. 

춘천시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 육이오 참전 학도병 기념탑

비문: 우리는 학도였다.

"… 그때 젊은 학생인 우리는 교복도 벗지 못한 채 참전하게 되니, 일명 군번 없는 용사요, 무명용사요, 학도병이었다. …"


좌우 학도병은 포탄과 소총을 들고, 중앙의 학도병은 책을 품고 건네는 모습이다. 사실적 묘사는 늘 아슬아슬하다.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단이 앞으로 나오게 하여 동상이 전진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탑신은 곡면으로 감싸 올렸다. 부분적이나마 곡선이 부드러움을 주니 긴장감을 덜어주는 듯하다.



11. 대구 상원고등학교 6·25 참전 호국영웅 명비

대구 상원고등학교 캠퍼스 내 녹지에 자리하였다.

높이 2.73m의 규모로서 남녀 청동상과 화강석 기단으로 이루어졌다. 매우 사실적인 모습이다.


설명문:

"1950년 6월, 학업에 열중하던 선배들이 책과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선에 나가 싸워 이겼다. …"

대구 상원고등학교, 6·25 참전 호국영웅 명비: 기원

두 학생이 마주 보고 섰다. 총을 메고 출전하는 남학생이 배웅하는 여학생에게 책을 건네고 있다. 

아쉬움 속 약속하는 듯하다.

연출 미가 충분하다. 주제가 심각한만큼 절대 신파극으로 느끼면 안 되지만, 자칫 오해소지가 없지 않다.



12. 장사 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경북 영덕군 드넓은 장사 바닷가에 겨우 조성되었다. 기념관 건축 문제로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곳에는 위령탑, 기념관 그리고 여러 동상 조형물로 구성되어있다.


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

옛 위령탑은 1991년에 건립되어 있었고, 더하여 2014년 6월 새 장사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을 건립하였다. 그 좌측으로 추모공간을 더하여 이전하였다. 옛 위치에는 이전 표지석 설치하였다.

경북 영덕군, 장사 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

병사의 모습을 빈 공간으로 파낸 곡선의 탑에는 독수리 형상, 태극기 조형물, 한자 등을 새겼다. 네거티브, 포지티브의 구성 속에 틀이 강조되고 거창하다. 


학도병 동상

바다, 바람, 모래, 해변 그리고 학도병 10인의 등신대 동상은 상륙하는 모습을 생생히 연출하고 있다. 역동적이다. 

영덕군 장사 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중 동상

기념지와 해수욕장 경계가 따로 없으니, 여름 성수기일 때 어떤 상황일지?  이곳은 전투 장면 촬영장 같다.


기념관

기념관 전경

2020년에 개관했다. 위치나 상태가 옛 기록과 다르다.

군함 내부의 상황과는 무관하니 그저 외형 치중일 뿐이다. 게다가 문산호 형태의 전시관은 뱃전이 드러나 거창하지만 모양새가 어색하다. 주변 화장실의 외관이 너무 강조되었고.


내부는 흔한 건축물의 전시장일 뿐이다. 군산함을 모방한 의의가 단순히 외형만 연출하는 정도는 매우 아쉽다. 내부도 조금이나마 문산함 내부와 유사하게 구성했다면 훨씬 효과적이었으리라.


전시의 과장된 연출이 여전하다. 


노래 제목: 청춘의 불꽃, 아! 장사 학도병, 서요한 작사, 최영섭 작곡

"안개 낀 동해바다 장사 바닷가

북녘 군 남침 속에 국운 오갈 때

젊음을 불태워서 나라 구했다

조국은 기억하리 순수 학도병 …"

기념관 전시(부분)

남겨진 39인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런데 장사상륙작전은 대부분 학도병으로서 전사 139명, 부상 92명, 수십 명의 행방불명자. 이러하니 육군본부에서 참전자 모두에게 우국 청년(의사) 호칭을 주었다. 문제는 결국 이 전투는 패퇴한 것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명칭이 “전승”이고 또 "전승기념관"인가? 



13. LST 문산호 전사자 기념비

부산 영도 순직선원위령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 입구에 작은 비 하나가 비탈에 자리하였다.

장사 상륙작전에 동원되었던 문산호 전몰 승조원을 기리는 비.

부산 영도, LST 문산호 전사자 기념비

그 어떤 큰 연출이나 규모 있는 표현 보다도 이 작은 기념비가 더 진지하게 보인다. 어떤 큰 기념 형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진정성은 갖출 수 있다.


전몰 학도병 기념 풍경에서 "숭고미"를 찾고 싶다.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전몰 학병 추념비1954년 3월 1일 건립, 전몰 학도병 추념비: 1998년 6월 확장 재건립, 경상북도 경주시 원효로 231 경주고등학교, 구 추념비 글: 경주 중·고등학교, 글씨: □□□, 확장 건립문 추념비 글: 경주 중·고등학교 총동창회, 글씨: □□□, 이면 부착 석판: 개교 60주년 동창회 기념사업 추념비 교문 건립 성금 현황

2. 서울 학도병 참전 기념비서울 학도 포병 참전자 명비, 순국 학도 탑: 1956년 10월 23일~ 2005년 10월 20일 건립, 서울특별시 용산구 두텁바위로 60 용산고등학교, 제작: 서울디자인 광고물 협동조합 (용산고등학교 6.25 참전용사 명단: 용산 고등학교장 육군 참모총장)

3. 전몰학도 충혼탑: 1957년 8월 11일 건립 제막,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용흥동 산 103번지 용흥 공원, 제막식 기념사: 이승만 대통령, 제작: 김종영

4. 포항여중 전투 학도의용군 명비: 1977년 12월 15일→ 2016년 1월 25일 이전 건립,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장미길 10, 포항여고 앞, 전공사 휘호: 김재규, 증언: 김만규(목사, 당시 연락병), 글씨: 이성조, 제작: □□□

5.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 1979년 10월 1일 건립,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660 - 244 수봉공원, 글: □□□, 헌시: □□□, 제작: □□□

6. 광주 전남 순국 학생 위령탑: 1989년 건립,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중외공원 내, 추진위원장: 임병성, 헌시: 손광교, 글씨: 이돈흥, 제작: □□□

7. 학도병 충혼탑: 1991년 2월 10일 건립, 강원도 태백시 장성로 265 태백중학교, : 전몰 학도병에 헌시: 월탄 박종화, 제작: □□□ (충령비: 1954년 12월 8일 제막, 충혼탑: 1971년 5월 10일 건립) (충혼 비문: 1963년 10월 8일) (건립문: 1970년 12월 태백 동창회 회장 최정섭)

8. 강릉 학도 6·25 참전 기념비: 2001년 9월 26일 건립,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616 안인진리 강릉 통일공원, 헌시: 엄창섭, 글: □□□, 제작: 최범규

9.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2002년 7월 28일 건립,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탑산길 14, 기념관 건축: □□□, 전시: □□□, 제작: □□□

10. 육이오 참전 학도병 기념탑: 2004년 6월 30일 건립,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 8-6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 조각: 이성재

11. 대구 상원고등학교 6·25 참전 호국영웅 명비: 기원, 돌아오라, 용사여!: 2016년 10월 16일 건립,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로 241 상원고등학교, 기획: 원창호, 조각: 조정화, 제작: 예당건축조형미술연구소

12. 장사 상륙작전 전승 기념공원: ((구) 위령탑: 1991년 9월 14일 건립),  (장사 상륙작전 전몰용사 위령탑: 2014년 6월 이전), 2020년 개원,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703-2, 청춘의 불꽃, 아! 장사 학도병, 작사: 서요한, 작곡: 최영섭, 기념공원 조경: □□□, 건축: □□□, 전시: □□□, 글: □□□, 제작: □□□ 

13. LST 문산호 전사자 기념비: 2016년 9월 14일 건립,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태종로 793번 길 일원,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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