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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년하루 Nov 02. 2024

평형 사회를 대비하는 자세

9-2. 평생 박사로 살아가기 ▶ 평형 사회를 대비하는 자세

인구의 자발적 퇴행은 독단적 감행으로 시작한다. 환경이 극도로 척박하여 삶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감행하는데 최고의 결정은 극단적 선택이다. 극한 정서적 괴리가 찾아오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상호 간섭을 거부하고 돌발 사태를 추구한다. 중요 부위의 역할이 약해지면 여러 부위에서 독자 노선을 위한 투쟁이 번진다.

비가 주르륵 흘러 손바닥을 거쳐 팔뚝으로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옆은 비어있는데 손을 바꾸기가 싫다. 왼쪽이 올리면 뭔가 빠진 듯 부스럭거린다. 힘이 꺾인 찬 기운에 부담 없이 준비한 검은색 민소매처럼 생긴 연탄 공세를 잘 막는 방탄조끼를 단단히 여민 채 전선에 뛰어든다.

부푼 오리 가슴에서 훔쳐 온 털이 조금씩 삐져나오는 ‘털출현상’을 마주한다. 조끼 표면에 꺼칠꺼칠한 가시 박힌 듯한 손가락 외침에 살짝 삐져나온 가시를 억지로 잡아당긴다. 이내 딱딱한 뼈대가 나오고 그 뒤를 하얀 공작이 날개를 펼친다. 똥꼬를 돌돌 말아 원래 나온 탈출구로 다시 집어넣어 보지만 들어가지 않고 나온 구멍만 커지는 증상을 발견한다. 더 건들면 상할 것이다. 뉴런 세포들 사이 억지 합의로 하던 작업을 멈춘다.

요즘은 뭔가 세포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 논지하나 제대를 이끌지 못하고 이 또랑 저 또랑으로 잘 빠진다. 머리카락도 잘 빠지고, 기억도 드문드문 이 빠지고, 인공 이빨도 뜯기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빠지지 않고 버틴다. 언젠가 손바닥에서 마주하겠지만 해후하는 날까지 잘 간수해야 한다. 벌써 차선을 벗어나기 일보 직전인 동무는 사고 중심에서 벗어나 엉뚱한 자리를 메꾸고 있다.

비가 오면 하수구 틈에 쌓인 담배꽁초, 우수로 옆 긴 네모로 뚫린 우수구를 막은 들풀과 가로수 잎, 물에 접근이 쉬운 풍경이 좋은 카페단지 주변에는 ‘풀가네 맛집’을 찾아 영미 이름을 가진 깽깽이, 개꼬리, 애기똥이 모여든다.

요즘 주차 뒤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일회용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큰 차 옆에 주차하고서 나올 때면 숨을 내뱉어 배를 홀쭉하게 만들어 최대한 오징어 스타일로 판금 한다. 힘겹게 꺼낸 우산을 계곡 빈틈으로 올려 꽃을 피우면 파도가 흩날린 춤으로 검정 벌판에는 벚꽃이 물든다. 트래킹을 위해 준비한 운동화 모공은 물결을 피하지 못하고 동굴 속에 들어찬 열 가락은 츱츱한 물살에 반신욕을 하며 건조한 인공물로 뒤덮인 세상으로 발 털기를 재촉한다.


엉덩이를 검은 천에 붙이고 바깥세상에 뿌려진 생명체를 훔쳐보면서 사각 모니터에 붉은색과 파란색이 혼잡한 숫자 전쟁 상황을 주시하던 중 5년 전에 회사가 정해놓은 숫자에 당첨되어 두 발 달린 인력거 여행을 좋아하던 우리 회사 민물낚시 회장을 부르는 소리에 옆을 스치듯 바라본다. 태어나서부터 낚싯대를 잡았던 한태공 회장은 여전히 나무 등처럼 뻗어 난 줄기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두 팔을 넓게 벌리다 주변 고목에 가지가 닿자 오므리고 공손히 두 손을 기도한 채 서로의 손을 비빈다.

퇴사 후 3년을 여행과 낚시를 하면서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낸 탐험가는 크고 작은 행사 참여가 늘어나면서 행사비를 받지 못하고 찬조하는 겨울 세상에 살려면 추위에 맞서야 한다고, 제2의 삶을 위해 철강회사 보안담당으로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며 활짝 핀 주름 웃음을 투척한다. 탱탱한 사과 담벼락을 파헤치며 영원히 함께하자며 담방이던 하얀 각설탕은 어느새 누렇게 익어 수확을 기대한다. 손 없는 날을 파묘 일로 잡고 고갤 숙이고 손을 놓는다.



임플란트(implant)를 위한 인공뼈이식을 마치고 유리벽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 걸려있던 수액이 바닥에 흔적을 남기고 도시를 코팅한다. 종이 약봉지에 뿌려진 작은 방울이 퍼질 때쯤 저만치 거리에 흰 페인트 작대기 앞에 작은 나무가 보인다. 손을 들어 허공을 저어 보지만 나뭇가지 흔들림은 바람을 타지 못하고 아쉽게 바라만 본 채 제 길을 떠난다.


5~60대에 퇴직 후 전문 회사의 임원이나 비상임 이사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60대 이후라면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군이 제한된다. 퇴직 후에도 특허나 전문 기술이 있으면 필요시 일을 할 수 있지만 평범한 분야에서 직업 전선을 마친 경우라면 눈높이에 맞는 제2의 직업 찾기란 쉽지 않은 여정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대학원 진학을 염두해 두고 있다면 앞으로 인생 설계 방향을 깊이 잘 생각하여 단계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지금 하고 있는 분야가 앞으로 잘될 희망이 있고 진입이 어렵다면 확고한 자리매김을 위해 학위 취득이 필요하겠지만 경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면 대학원 진학보다는 퇴직 후 경제적 발판이 되는 전문 기술을 습득하거나 필수 자격증 취득에 우선순위 두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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