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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차 버스

맞이하는 자세 (1)

by 천년하루

1.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도 아니야

사진사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어디를 가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빙빙 전해 들었을 뿐

명령인지 요청인지 모르는 상태로 버스에 탄다

여러 명이 앞과 뒷자리를 차지하려 매섭다

버스기사 면전에 낮은 소리로 항의한다

어쩌면 인원수가 많아 다 타지 못할 것 같네요

기사는 걱정 말라고 한다

자연의 섭리처럼 잘 해결될 겁니다


2.

뒤에서 밀려들어온 사람들로 뒷자리는 모두 채워진다

남은 자리라곤 앞에 보조석과 문 옆 접이식 좌석뿐이다

나와 네가 앉을자리가 없지만 기대해 볼 만하다

기사가 승낙하면 접이식 자리라도 앉을 작정이니까

버스가 출발한다

약간의 기대가 성공으로 확신될 때 기사에게 물었다

저 자리를 펴고 앉아도 되나요

기사가 우릴 쳐다보더니 왜 안 내렸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2킬로 정도 빠진 버스는 꺾어지는 도로에서 앞 문을 치익 연다

기사는 말이 없지만 내리라는 무언의 명령이다


3.

상처 난 허파에 알코올 소독이 필요하다

부아가 돋아 쓰라린다

기사 양반 보아하니 잠이 덜 깬 것 같은데 정신 좀 차려야지

어떻게 초과된 손님을 태워놓고 태연하게 출발합니까

당신은 분명 잠이 부족하던지 약물에 취한 것이 확실하네요

큰 소리로 따지듯 물은 뒤 앞 문 계단에 발을 쾅쾅 구르며 내린다

버스는 출발도 못하고 승객과 기사 간의 확인 사살이 시작된다

우린 웅성거리는 소리를 기운 삼아 어둠에 휩싸인 길을 걷는다

버스에 귀신이 들어차 살상하듯 비명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린다

우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빠른 걸음이다

뒷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왔을 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싹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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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