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플러스 마이너스.

결혼, 정답은 없지만 ...2018년 생각

by 우산

삼월이다. 눈을 감아도 언 가지 위로 피어오르는 초록색 향기가 보인다. 그 향기를 따라가니 은빛 장막이 걷힌 저수지 위에서 청둥오리가 커다란 목소리로 짝을 부르고 있다. 꽃들은 겨우내 품었던 봄 내움을 터뜨리고 사람들은 봄의 왈츠를 따라가느라 분주해진다.

겨울이 춥고 길수록 봄을 향한 기다림은 간절하지만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온다는 것은 젊음을 밀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마음은 움트는 꽃나무 속처럼 복잡하다. 시간의 질서를 거역하지 못하고 거칠어지는 머리카락이 신경 쓰였다.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미용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갸름한 얼굴에 날카로운 콧날, 짧게 올려친 커트 머리가 차가워 보였다. 하지만 머리 상태와 처방을 세심하게 일러주는 그녀의 빠른 경상도 말씨는 리듬을 타듯 머리의 이곳저곳을 스치는 민첩한 손놀림과 함께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곧 손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다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거친 머릿결은 미용사의 처방을 따르라는 그녀의 말에 따라 한 달을 기다려 염색하기로 했다. 염색이 머릿결을 상하게도 하지만 클리닉과 함께 염색제가 들어가면 약간의 코팅효과도 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가서 그녀가 정한 시기에 나의 머릿결 치료를 위해 미용실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지난번과 달리 그녀는 다른 남자 손님과 매우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나를 본척만척했다. 이제 마흔다섯이 된 그녀는 머리를 감는 청년이 자기 아들이라 했다. 요즘 말로 돌싱인지 싱글 맘인지 모르지만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남자 손님이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소개받을 남자의 사진을 보고는 외모도 마음에 든다며 자기 부모님의 성품까지 자세히 말한다.

“저 사실은 쫌 못됐어요. 그래서 착한 남자가 좋아요. 돈은 없어도 돼요. 제가 벌잖아요. 키는 … 저보다 쪼금 컸으면 좋겠어요. 참고로 저는 술을 좋아해요. 호호.

그리고 저는 착한 남자가 좋아요. 나쁜 남자를 만났더니 한도 끝도 없이 바라기만 하고 힘들더라고요.”

내가 보기에 그녀는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외모에 실력도 인정받아 단골 고객도 많은 전문직 여성이다. 약간은 도도해도 따르는 남자 몇은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꼭 결혼할 짝을 찾고야 말겠다는 듯 초상화 위에 맘 그림까지 그리듯 애쓰고 있다. 결혼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내 순서가 되었다. 결혼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중에도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고 어떤 스타일의 머리로 할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역시 머리에는 프로다.

염색약을 바르고 자리를 옮겨 기다리는 동안 미용실에 있는 잡지를 뒤적거리니 연예인의 이혼 기사가 있다.

얼마 전 자녀와 함께 외국에 나가 있는 아내와 이혼한 기러기 아빠 연예인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결혼 초부터 유학을 원해 유학을 떠났던 아내와 부부 사이가 서먹해지고 결국 이혼에 이르렀다는 기사다. 국제화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자식을 위해, 또는 배우자를 위한 선택이 이별의 이유가 된다니 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혼의 세세한 사연을 어찌 다 남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라는 말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의 갈등이 묻혀 있을까. 만남도 헤어짐도 개인사인데 남의 이목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보니 헤어지는 이유에 대해 팬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과정도 화려한 연예인의 삶에 주어진 통과의례인 것이다. 행복한 얼굴로 하늘이 갈라놓아도 끝까지 사랑할 것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한 운명에 주어진 흔들 다리를 건넜던 아픔과 태풍을 어찌 한마디 인터뷰로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혼하지 않은 부부라고 해서 어찌 활활 타는 사랑으로만 살겠는가. 많은 사람이 정으로 살고, 자식 때문에 살고, 살던 거니 살면서 미워하고 화내고 보듬고 살아가는 것이 부부일 것이다. 어느 순간 흘러야 할 사랑의 강이 막힌 줄도 모르고 지내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함께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요즘은 내 인생에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새로운 행복을 찾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주인공(메릴 스트립)은 평범한 일상을 살다 중년에 만난 사진작가(클린트 이스티우드)에게 강렬한 이끌림으로 사랑에 빠진다.

함께 떠나자는 그에게 선택의 상황에서 이별을 고한다. 떠나간다 해도 현재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를 맞으며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를 남편이 운전하는 트럭 안에서 바라보며 오열하는 여주인공.

평생 그가 만든 마음 자리에 부는 찬바람을 느끼며 남은 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추억의 뜰에 비치는 햇살을 느끼며 행복할 지도 모른다.

결혼생활 23년을 하고 이제 딸의 결혼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결혼의 의미를 깊이 짚어보게 된다. 내 주위에는 배우자의 이상 성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혼을 선택한 친구도 있고,

결혼 생활 내내 남처럼 지내다 배우자의 외도로 결혼 생활을 정리한 친구가 있다.

누가 보아도 부럽기만 하던 잉꼬부부가 배우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아무리 평등하려 해도 여자가 많이 희생해야 된다고 혼자 살겠다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젊은 남자들의 경우도 경제적으로나 생활면에서 독신의 편리함만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 혼자는 생활이 불편해서 못 산다고 하지만 요즘은 가전제품이며 배달 반찬까지 있어 단지 혼자 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결혼 초부터 생각지 않았던 문제로 고비고비를 넘으며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나갔다.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친정어머니의 충고 를 따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딸에게 나는 말한다.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너희를 낳은 것은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잘한 일이라고.

이혼율도 높은데 결혼하지 않는 게 낫지 않느냐는 딸에게 이혼을 한다 해서 결혼생활 모두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결혼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고 망설이며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따진다면 두 사람이 만나 혼자 살 때보다 행복을 느끼고, 몰랐던 아픔도 느끼며 성숙해 가는 과정이 바로 결혼의 플러스라고 말하고 싶다.

자녀까지 낳고 얻는 기쁨은 플러스 플러스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가족의 숫자가 결혼의 행복을 재는 척도는 결코 아닐 것이다.

간혹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꿈을 향해가며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도 있고, 배우자의 꿈을 위해 자신의 꿈을 양보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 굳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결혼을 이어 온 엄앵란 신성일 부부, 그들의 자녀까지도 왜 이혼을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신성일의 영결식에서 엄앵란은 동지애로 살았다는 말을 한다. 이들 부부에게 누가 정답의 충고를 해줄 수 있을까.

엄앵란은 그녀가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과 그녀의 선택으로 이어진 그들만의 결혼을 지켜왔다. 분명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가볍게 말할 수는 없다.

사랑의 결말이 결혼이 아니듯 결혼이 행복의 완성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태초부터 사랑을 했고, 영원히 사랑하며 세상의 어떤 공식이나 원리로 제한할 수 없는 결혼의 행복도 제각기 다른 크기로 만들어 갈 것이다. 물을 주었는데 피어나는 꽃도 있고 피지 못하는 꽃도 있다. 소망을 갖고 물을 준 시간의 행복을 누리다 보면 누구나 곱고 아름다운 꽃이 주는 기쁨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이 차이와 국경을 넘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지구촌이라는 말을 사랑의 각도에서도 증명하고 있다. 만날 때의 간절함과 깊은 사랑이 오래오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지속되길 바란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따지며 결혼을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사랑하고 결혼하라.’고 말하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