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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an 18. 2024

'권태롭다'라는 단어가 있다가 사라졌다.

'권태롭다.'

아침에 생각난 단어였다.

문득 떠오르긴 했는데 순간 괜히 낯선 느낌이 들어서 맞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 바로 찾아봐야지.


권태롭다 (倦怠롭다)

형용사

- 어떤 일에 싫증이 나거나 심신이 나른해져서 게으른 데가 있다.          

- 권태로운 생활.          


이렇게 쓰이네.. 순간적으로 '슬기롭다', '이롭다'처럼 긍정의 의미에만 '롭다'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보다. 요 며칠 나의 감정이었다. '권태로움.' 아마도 이제 많은 부분에서 익숙해져 셔인 걸까? 나는 지금 낯선 곳에 살고 있지만 지난 2년 동안 꽤나 익숙해졌나 보다.


싱가포르에서 산지 2년이 지났다.

남편의 발령으로 애정하던 내 집을 뒤로하고 해외이사 짐을 꾸렸다. 가벽도 직접 세웠다 부쉈다 하고 페인트칠 밥먹듯이 하며 집 꾸미기 참 좋아하던 나였는데... 그 집을 뒤로하니 아깝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기회이니 좋겠다고들 했지만 난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결과였다. 난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고, 차곡차곡 꾸려가던 중이었으니까... 아이엄마가 된 이 나이에도 엄마 껌딱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친정엄마 아빠와 동생을 떠나는 게 너무나 힘들었으니까.


"야.. 네가 하도 정신적으로 독립을 못하니까 하늘에서 4년 동안 진정한 독립을 해보라고 보내는 거야,

가서 진짜 독립 좀 하고 와"


6살 어린 내 동생이 나 맘 편해지라는 듯 해준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씩 만들어 가던 나의 길은 이곳에 온다 해서 크게 못 할 일이 없었으며 기약 없이 가는 것도 아니고 딱 4년 외국에서 지내는 것도 꽤나 좋은 경험이 맞았다.

가족들 보고 싶은 거야 말로 할 수 없지만.. 천리 먼 길도 아니고 딱 6시간.. 맘먹으면 아침에 비행기 타고서 한국에서 저녁 먹을 수도 있는 일이다. 처음 1년은 여행자인 듯 그렇게 살짝 들떠서 살며 적응해 나갔고, 지금은 이제 권태롭다는 단어마저 이따금씩 떠오르는 수준이 되었다. 싱가포르는 적응도가 그리 어려운 나라는 아니니까..

외국에 사니까 권태로울 일이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이곳도 평범하게 사람이 사는 곳이고, 오히려 행동의 범위가 너무 좁아져서 더 답답할 때가 많다. 만나는 사람들도 한정되어 있고, 운전하고 가는 곳도 가는 곳만 가게 된다. 혼자 차를 긁더라도 여기선 더 골치 아픈 일이니.. 나도 안다. 이 이유들이 해외라서 그런 건 아니라는 것. 한국에서도 다들 이렇게 살고 외국에서 다이내믹하게 더 즐겁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이 이유들을 들며 권태로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건 분명 지금 이 시기의 보내고 있는 '나'의 문제임이 맞다.

그저 내가 느끼기에 아무래도 모든 면에서 내 나라에서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1년 내내 하나의 계절..

나라 전체를 돌아도 서울만 한 크기.. 서울만 하다고들 말하지만 정작 사람이 다니는 곳을 보면 서울의 반토막..

강남이나 강북 만할 거다.

역마살이 껴있는 거 마냥 주말이면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 부부에겐 어쩌면 참 안 맞는 나라일 거다. 짧은 시간 저가항공으로 가볍게 갈 주변국가가 많은 건 장점일 수 있겠으나 어디 비행기 타는 게 당장 차 몰고 급여행 떠나는 거만큼 간단하랴...

20살..

어학연수로 캐나다에 갔을 때만 해도 난 크게 무서울 거 없이 혼자 여행도 하고 잘 다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얻어진 책임이 더 많다 보니 이젠 겁나는 것도 많아진 거 같다. 뭐. 원래 매우 천하무적도 아니었지만..


요즘은 이사갈날을 몹시도 기다린다. 아마도 리프레쉬가 필요해서이겠지. 다음집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골랐고. 이제 이곳의 환경도 제법 잘 알아서 우리 가족과 잘 맞는 곳을 찾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난 한국에 있었고 남편은 이곳에 있었어서 영상통화 원격으로 겨우겨우 정했었다. 뷰가 너무 맘에 들어 선택한 이 집이 이렇게 시끄러울 줄이야.. 모든 게 좋은 집이지만 고속도로 앞이라 참 시끄럽네..

역시 샤시는 한국이 제일이다.

이곳은 새시가 모두 이가 맞지 않아 틈새가 아주 대단하다. 덕분에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건.

난 청각이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 집에서 행복했다. 바로 앞바다공원을 잘 즐겼고 좋은 수영장도 즐겼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좀 더 시티에 가깝게 가야 한다는 것과 더 조용한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려준 집이다.


권태롭다라는 걸 느꼈고, 이런 생각이 왜 드는 건지 알고 싶어서 그때그때 문장이 생각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었다. 쭉 나열하다 보니 기록하고 싶어 졌고 글을 적다 보니 이 글에 맞는 영상도 찍어볼까 싶어서 찍어서 인스타에도 올려봤다.

아침에 문득 '권태롭다'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난 후 1박 2일..

참 신기한 건.. 그 생각이 들자마자 하나씩 적고 정리하고 촬영하는 사이 그 단어는 나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 이글의 막바지에 이르니 난 더 이상 권태롭지가 않다.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제법 머리가 복잡했기에 미역국이나 한솥 끓이고 미역국이 끓는 동안 유부트를 보면서 조금 남은 마늘을 깠다. 이런 잔잔한 살림이 머리 비울 땐 최고라서 참 좋아하는 시간이다. 이게 힐링이지 별게 힐링이랴.




어쨌든

난 더 이상 권태롭지가 않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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