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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an 23. 2024

해외이사보다 더 힘들었던 싱가포르 이사기행

싱가포르살이 2년 차.

이곳에 내 집 없는 외노자 가족으로서 우리의 첫 번째 월셋집 2년 계약을 마치고 얼마 전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한국에서도 이사라는 것이 보통일이 아닌데 싱가포르에서의 이사는 그 몇 배의 수고가 따른다.


우선.

한국외의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사다리차가 없다. 정말 사다리차는 노벨상을 줘야 한다.

사다리차가 없으니 일의 속도가 기본적으로 3배는 느린 거 같다.

그렇다고 이사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오느냐?

놉!! 그럴 리가!!

나무 판때기 카트로 이사박스를 모두 옮겨서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작은 트럭에 싣고 그 트럭으로 바깥의 큰 이사트럭에 짐을 옮겨 싣는다.


포장이사?

와서 싸주긴 한다.

하지만 그 악명을 미리 들어서 어떤지 알고 있었기에 박스를 업체에 미리 요청했고 60% 정도는 내가 이사 며칠 전부터 미리 잘 포장을 해두었다. 당일 날이 되어 그들의 짐 싸기를 보니..

어휴.......

이렇게 대충대충 싸면서 또 어찌나 느린지.. 한국은 손이 2배는 빠르면서 꼼꼼하게 싸주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국뽕이 차올랐다.. 짐을 풀다 보니 참 그마저도 가관이었다. 나름 서랍을 깔끔히 잘 정리해 놓는 편인데 물건을 분리해서 담아 둔 트레이가 자기가 준비해 둔 박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는지.. 그걸 그냥 다 쏟아서 부어놓았었다. 이 서랍 저 서랍의 내용물이 모두 한데 모여있었다. 딴에는 완충효과를 주겠다고 또 중간중간 갱지를 대충 구겨 넣었더라..


게다가 참 신기한 장면을 마주했는데 바로 '랩핑기법!'

수납되어 있는 물건들을 그냥 통째로 랩으로 칭칭 감아 봉해버린다. 아 신박해!!



이삿짐을 다 빼고 새집으로 짐을 들여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이번엔 더 심했다.. 이 아파트는 또 지하에 트럭도 못 들어오게 한다..

나참... 머 살러 오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곳의 콘도들은 대부분 짐을 출입현관으로 옮길 수가 없다. 우리나라 아파트처럼 라인별 현관이 있는 게 아니라 주로 로비가 등장하기 때문에 모든 짐들은 지하주차장을 통해야 한다.

즉 이 말은..

바깥에서부터 수레에 짐을 실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엘베 타고 영차영차 올라와야 한다는 말이 올 시다.


자.. 그럼 이 모든 과정은 얼마나 걸릴까?


그들이 제안한 기간은 3일이었다... 심지어 두 집간의 거리는 20분 남짓…. 싱가포르는 워낙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이삿짐 이동거리가 30~40분이 넘지 않을 듯하다.

트럭이라서 천천히 달린다는 것 또한 감안해서..

우리는 보통 이삿날이 언제냐고 물으면 ‘9월 30일이요.’ 식으로 하루를 꼭 집어서 말한다.

하지만...

여기선 일단 며칠부터 며칠까지로 통한다. 3일을 제시하지만 우겨야 한다.

‘안돼! 이틀에 끝내야 돼!’

그래서 난 박스를 미리 요청했고 내가 미리 많이 싸놓을 테니 이틀 안에 끝내라 요구했다. 내가 짐이 많긴 하다. 짐이 좀 더 적으면 이틀을 하루로 줄이는 게 관건이다. 그리하여 우리 집은 이틀을 꽉꽉 채워서 끝냈다.

이 집도 저 집도 다 난장판 상태인지라 우리는 호텔에서 하루 자야 했다.


짐이 들어가는 날.

아파트 관리인이 5시 40분쯤 와서는 6시 땡 하면 짐 옮기기 금지란다. 자기가 cctv로 보고 있겠다고 했다.

사다리차고 아니고 수레로 옮기는데 그마저도 감시라니.. 머 암튼 6시 땡 하고 마지막 짐이 집안으로 들어왔고 그때부터 침대를 다시 조립했다. 엘베 이동이니 침대가 통으로 나갈 수 없는 일이니까 이러니 언패킹은 머 언제 하겠나. 결국 내가 다 풀어야 한다. 종이박스 하나하나...



이삿짐을 빼고 나가는 뒤를 따라 인테리어 업자들이 마룻바닥을 와다다다 들어내며 따라 나오는 우리나라의 속도는 여기선 거짓말 같은 일이다. 아침에 이사하고 저녁에 짐정리 다 끝내고 짜장면 먹는 일은 화성에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살던 집과 새로 들어갈 집 핸드오버 하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다. 그 이야기 다 기록하자면 스트레스가 다시 올라올 거 같다. 이 나라에서의 이사는 1달씩 걸린다는 말이 뭔지 알 거 같았다. 3~4일 만에 짐정리가 끝났다. 정말 빨리 정리한 편이라고 주변에서 들 말했다. 이렇게나 고되고 힘든 이사였지만 짐정리를 마치고 나니 살 것 같고 정리가 되는 모습에 힐링이 되기도 했다. 이전집보다 조금 더 넓고 매우 많이 조용하다. 초록초록 풍경이 보인다.



고된 이사였지만 어쨌든 지금은 I'm fine. 여기서 또 2년을 잘 보내야지.

2년 뒤엔.. 해외이사 포장을 또 싸야 한다 생각하니..

짐을 풀면서도 아찔하긴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깔끔히 포장해 준 이삿짐들을 여기서 풀 때가 이번보다 좀 더 나았던 거 같은데..

갈 때도 그렇겠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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