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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an 25. 2024

여름나라에서도 가을을 탄다 - 토마토피쉬스튜


비록 봄가을이 반짝하고 스치듯 지나가곤 하지만 그래도 4계절이 존재하는 나라에 살다가 이렇게 1년 내내 여름나라에 살다 보니 감정의 폭이 단조로워진 느낌이 든다.

계절이 바뀌면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달라지고 그때마다 거저 주어지는 쾌감이 있는데 이곳에선 그 변화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오늘은 '꽤 시원한 편이다..' 싶어도 텁텁하고 습함이 늘 함께 하기에(에어컨 실외기 앞에 서있는 느낌..)

쾌청한 바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가을을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에 9월 즈음부터 가을이 몹시 그리워진다.

40년 가까이 몸이 그 리듬을 익힌 건지 그즈음이 되면 왜 가을이 오지 않냐고 말하는 듯 여름을 버티기가 살짝 힘들어진다. 그런데 여름만 있다고 해서 가을을 타지 않는 것도 아니더라.


여름나라에 살아도 가을을 탄다.

몸이 그 시간을 안다. 몸이 알아첼 즈음 수없이 올라오는 인스타 속 가을 사진들을 보면서, 가을 냄새나는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기억으로 떠오르는 가을을 탄다.

보통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가을 식재료들로 가을 음식을 하며 가을을 가장 잘 즐기곤 했다.

한국에서 사들이던 신선한 가을 제철 식재료는 찾을 수는 없지만 에어컨이라도 빵빵하게 틀어놓고 뜨끈한 음식을 해댄다. 비록 이나라 주방들의 구조상 에어컨을 틀어도 주방에선 땀뻘뻘이지만 이럴 땐 내게 요리가 힐링인 게 정말 다행이다.


평범한 날의 아침. 아들과의 등굣길.

차 시동을 걸자 자동으로 연결된 블루투스에서 한국 가을노래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었다.

내가 직접 재생한 게 아니어서 반가움이 배가 되었다.


‘이 플레이리스트 완전 나를 위한 리스트네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잘 만들었다.’


생각하고 나니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시디참 잘 구웠는데… 내가 구운 시디를 학원에서 틀면 다들 그렇게 제목을 물어보고 좋아했었는데..’


입시미술로 불태우던 그 시절..

열명 넘는 아이들이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한 귀퉁이에 등유 난로가 켜있고 그 옆에 시디플레이어가 항상 재생되고 있었다. 물론 수능 한참 전의 풍경이다. 수능이 가까워지면 살얼음 판이고 수능이 끝난 후엔 더더더더더 살벌하다. 수능 이후가 더 치열한 게 미술 입시니까..

화실 내 음악 금지, 그림 그리면서 이어폰은 당연히 금지…

홍대 앞 입시미술 앞치마 부대의 가을과 겨울은 그랬다.

재수시절 이 시기에는 뜨끈한 정종의 추억도 있는데.. 그건 다음에 또 풀어보기로 ㅋㅋㅋ

이 또한 나의 가을겨울 추억중 하나네..


운전을 하는 내내 창밖의 뷰가 노란색 오렌지 색이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죄다 따라 부르고 있으니 아들이


“엄만 참 아는 노래가 많네” 하고 한마디 던진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우리 저녁에 스튜 해 먹을까?”


“좋지! 난 크림 스튜 말고 토마토 스튜가 더 좋아”


“그래? 난 치킨크림스튜 생각하고 말한 건데?”


“난 싫은데..”


“그래 그럼 토마토로 하지 뭐 나도 토마토 좋아”


에어컨 빵빵한 차 안에서 나눈 대화를 마치고 학교 주차장에 주차하고 문을 여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덥다… 스튜는 개뿔.. 그래도 오늘 저녁은 스튜를 끓였다.



가장 아끼고 매일 쓰고 있는 주황색 르쿠르제를 꺼냈다.

줄리앤줄리아의 그 무쇠솥.. 감자랑 양파를 달달 볶다가 치킨스톡을 넣고 끓인다.



홀토마토를 넣고 새우도 넣었다. 소금 후추 간을 하고 여기서 뭠췄어야했다.

생선에 딜까지 추가했더니 내가 딱 싫어하는 맛이 되었다..

평소에 무섭게 많이 먹는 아들이 딱 한 그릇 먹고 배부르다고 그만 먹겠다고 했다.. 매너 있네 ㅋㅋㅋㅋㅋ


“맛이 별로지?”


“음.. 머~~ 그냥.. 어.. 사실 좀 별로야”


“그래 엄마도야.. 역시 스튜는 고기지…”



이제 스튜에 생선은 평생 안 넣을 거 같다 ㅋㅋㅋ우리가 싫어하는 허브는 딜 인 것도 확실해졌다.

스튜는 실패했지만 우리의 음식 취향을 또 알았고 우리 둘의 추억이 또 생겼으니


'결국은 무언가를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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