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길
뻣뻣하게 서 있는 나를 만난 바람은 쿵 부딪혀 반대로 튕겨나가 버리곤 했다. 힘을 주는 법만 배워왔기에 풀들처럼 힘을 빼는 법을 몰랐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늘 긴장상태였다.
말할 때조차도 늘 목에 힘을 주었기에 이젠 조금만 말을 많이 해도 금세 목이 잠겼다. 감기도 늘 목에서 시작했다.
훌라를 출 때 손끝에 힘을 빼는 게 정말 어려웠다. 전면 거울 앞의 나는 동작을 틀릴까 봐 온 감각이 곤두서있었다. 훌라핸즈에 힘을 빼는 데 3년 걸린다고들 하는데 나는 30년이 걸려도 안 될 것 같았다.
몸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시작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목소리를 낮췄다. 몸이 조금씩 여유를 찾았다. 그리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바람이,
내 안에서 불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에 구멍을 만들자 숨통이 트이고 바람길이 생겼다. 내 안에서 불어 나온 바람은 손끝으로 흘러나와 파도가 되었다.
훌라를 한 번씩 출 때마다 콘크리트벽처럼 굳어있는 몸과 마음이 연해진다. 구멍이 하나씩 늘고 길들이 새로 난다. 바람이 드나들고 파도가 친다.
2024.06.11
그림을 보고 쓰다
박정은
작품 <억새의 파도, 권소영>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