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쓰는 인간 : 호모 광배리우스

헬창의 진화

by 실버라이닝

등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나

그것은

불이 발견되기 전의 인류와도 같았다.


추우면 떨고,

배고프면 참고,

어두우면 무서워할 뿐


눈앞의 나뭇가지와 돌멩이가

전혀 다른 세계를 열 수 있다는 걸

모른 채 살던 시절.


BC(바프기원전) 3년,

처음 나는 모든 등운동을

손으로 하고 있었다.


시티드 로우도, 랫풀다운도

손으로 당기고,

팔로 버티니


움직이는 건 오직

손, 팔, 그리고 전완근뿐이었다.



등.


분명 존재하지만

아무리 몸을 뒤틀어도

볼 수 없는


지구가 늘 그리워하는

달의 뒷면 같은 곳.


몇 달을 운동해도

등운동만 하면 늘 손과 팔이 아팠다.


그럴수록 트샘은 더 간절해졌다.


“등이 먼저 움직일게요. “


그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날개를 펴서 날아보세요.”



‘등을 쓰다.‘


교과서에는 있지만

실생활에는 없는 문장 같았다고 해야 할까.


분명 내 몸에 붙어 있지만

항로가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대륙.


그래서 나는

원시인처럼 더듬기 시작했다.


어깨를 내리고,

견갑을 모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등아,

제발 너 먼저 움직여다오.


불을 피우기 위해

나무를 문지르고

돌을 부딪히던

인류의 간절함으로


매일

어깨를 내리고

견갑을 모으고

등을 으쓱으쓱해본다.


등이 먼저야. 등.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손이 아니라

등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넓고, 낯설고,

생각보다 강한 두 대륙이

뒤에서 만나고 있는 자극.


순간 숨이 멎었다.


아.


이게 등이 움직이는 거구나.


헬창의 진화.

등의 발견.


나는 그것을

‘호모광배리우스’라 부르겠다.


——————


돌을 들고 어둠을 헤매던 시절을 지나

마침내 불이 붙었으니

세상이 달라진다.


등으로 당기자

손으로만 당기던 무게들이

훨씬 가벼워졌고,


팔만 아프던 운동은

몸 뒤편 전체를

하나 둘 깨우기 시작했다.


손과 팔에 의존하던 인간에서,

몸의 뒤편에 숨겨진

크고, 강하고, 넓은 세계를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사용하는 인간으로 바뀐 후


첫 바디프로필 날,

나는 망설임 없이 등을 내놓았다.


앞을 보여주던 인간에서

뒤를 증명하는 인간으로.


그리하여 나의 등 사진은

피티샵 포스터에 등재되고


엘리베이터와 정류장에 붙어

누군가의 시선에 한 번씩 머물렀다.


불을 다루기 시작한 인류가

그 흔적을 동굴에 남겼듯


내가 발견한 등을

도시에 남기는 쾌거.



요즘도

등을 쓸 때마다 칭찬을 듣곤 한다.


그것은 격려가 아니라

헬창의 진화에 대한 확인.


더 이상

앞만 쓰는 인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자부심.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진화된 방식으로

무게를 당기고

인스타 동굴벽화에

사진과 영상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