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 체스트데이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벤치는 쉬는 곳이 아니야

by 실버라이닝

텅 빈 헬스장.


불은 켜져 있지만

거울은 검은 물처럼 잠잠하다.


거울에 비치는 건

플랫 벤치에 앉아 있는 내 모습.


가슴 근육을 갈라야 해.


시작해 볼까,

체스트 업!


그때—


위이이잉—


아무도 없는 러닝머신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거기… 누구세요..?”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또르르—


덤벨 하나가 바닥을 굴러

내 발 앞에서 멈춘다.


툭.


차가운 쇳덩이.

그 위에 보이는 얼룩.


헉, 이건… 핏자국인가?


아,

땀이구나.

그런데 누가 있었던 거지?


고개를 들자,


거울에 선명하게 쓰여 있는 글씨.


“나는 네가 지난 체스트데이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지난주,

벤치프레스를 하다가 깔려서

마지막 세트를 남겨두고

조용히 벤치를 떠난 나.


펙덱도, 덤벨 플라이도

뒤로 한 채

사레레랑 암컬로

대충 운동을 마무리했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나뿐인데…


아무도 모를 줄 알았다.


아니야… 아니야…

바벨에 깔려 죽는 줄 알았다고…

난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수건으로 거울에 적힌 글씨를 지우고

물을 마시러 정수기로 향한다.


쪼르륵.


텀블러에 한가득 물을 담고

반쯤 마신 뒤

그대로 두고

다시 플랫 벤치에 눕는다.


인클라인 덤벨 체스트 프레스 세 세트.

이제 덤벨 플라이 차례.


윗가슴 채우고,

습!


에잇. 잘 안 된다.

가슴 짜는 게 어렵다.

팔 궤적이 자꾸 바뀌고…


인스타나 좀 볼까.


핸드폰을 켜니

외국 언니가 케이블 플라이를 한다.


다음 화면으로 넘기려는 순간—


화면 속 언니가

긴 머리를 넘기더니…


으악!


화면 밖으로 두 팔을 내밀며

나를 붙잡으려 한다.


안 돼!


핸드폰을 집어던지는데—


텅!


바닥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


앗.


이건…?


텀블러가 벤치 옆에 놓여 있다.


뭐야, 뭐지?

난 분명 정수기 앞에 두고 왔는데!!!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정은님…”


등골이 서늘하다.


“정은님…”


점점 가까워진다.


“정은님… 덤벨 잡아요…”


기구 사이 어둠 속에서

누군가 서 있다.


긴 생머리.

창백한 얼굴.

손에는 덤벨.


눈이 마주치고


그 순간—


쿵.

쿵.

쿵.


그녀가 걸어온다.


숨이 막히고

다리가 굳는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멈춰 서서

조용히 말한다.


“정은님… 쉬는 시간 끝났어요…”


속삭이듯, 그러나 또렷하게.


“다음 세트… 가야 돼요… 지금이요.

빨리요. 덤벨 잡아요… 제발…”


아, 나 샘이랑 수업 중이었지.

정신 차리자.


코앞까지 들이닥친 덤벨.


“아… 쌤… 그게 아니라…

제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요…

아직 호흡이 안 돌아왔는데…”


나는 멍하게 고개를 떨군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샘이 쓱 다가와

내 손목을 잡는다.


말없이 뻗는 창백한 손.


“정은님… 애플워치 좀 볼게요…”


“…어머. 심박수 98.

이 정도면 주무시는 상태라고 봐야 돼요…”


“그게 아니라…”


“… 어서 잡으세요, 덤벨.

플라이 가실게요.”


“흑흑… 네…”


여덟, 아홉, 열!


휴, 끝났다.

이제 좀 쉬어볼까.


“정은님… 덤벨 잡아요…”


“네? 샘, 방금 끝났잖아요.”


“컴파운드예요…

덤벨 프론트 레이즈 가실게요...”


“네… 흐흑…”


흐느끼는 내 곁에서

여전히 두 개의 덤벨을 들고 있는 창백한 두 손.


아직은 안돼. 조금만… 조금만 더 쉬고 싶어…


시간을 끌기 위해

스트랩을 감고 또 감는다.


“정은님… 정은님… 잡으세요… 덤벨…”


덤벨을 든 두 손.

한이 서린 눈빛.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덤벨 플라이와

덤벨 프론트 레이즈 컴파운드의 위력은

대단했다.


가슴이 짜이는 느낌이

드디어 오기 시작하고

가슴에 옅은 선이 비친다.


“샘! 지금 느낌 왔어요.”


“네,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덤벨을 제자리에 두고

90도로 인사를 하는 나.


“정은님… 수업 아직 안 끝났어요…”


“팩덱 가실게요.”


“네… 흐흑…”


그렇게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힘든 시간이 준 선물—

부푼 가슴을 안고

샤워를 한다.


나는야 한 마리 수탉.

성이 난 킹콩.


지난 체스트데이의 아쉬움을

만회하고도 남을

무섭고도 보람 있던 시간.


그래, 벤치는 쉬는 곳이 아니야.

불편하고 힘들어야 하는 곳이지.




<<<에필로그>>>


그런데,


샤워를 마치고 나온 탈의실이

유난히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샤워기에 남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크게 들린다.


똑.

똑.

똑.


그때 보이는 젖은 발자국.


어? 샘이 들어오셨나?


“샘? 샘?”


탈의실 밖으로 외쳐보지만

센터는 조용하기만 하고


“어디 나가셨나…?”


탈의실 문을 닫는 순간,

내 사물함으로 시선이 향한다.


이건 뭐지?


쪽지 하나가 놓여 있다.

종이를 펼치는 젖은 손이 여리게 떨린다.



헬스장 행운의 편지


이 편지는 2026년 어느 헬스장에서 시작되어

지금 당신에게 도착했습니다.


이 편지를 읽은 당신은

이미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한 회원은

이 편지를 읽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그는 “내일부터 하지 뭐”라며

체스트 데이를 미뤘고,


3일 뒤—


그나마 없던 가슴이

사라졌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다른 회원은

이 편지를 읽고 바로 벤치프레스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20kg,

그다음은 30kg,


마지막 세트에서

팔이 후들거렸지만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 결과—


그는 다음 날

대흉근으로 인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절대 장난이 아닙니다.


7일 안에 반드시

체스트 데이 3회를 완료해야 합니다.



또한 이 편지를 받은 후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지 않을 경우,


당신은 운동 중

항상 마지막 세트 직전에

이상하게 힘이 빠지는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운동하는 사람 7명에게 전달한다면,


당신은 다음 운동에서

마지막 3회가

이상하게도 버텨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편지를 읽은 순간부터

카운트는 시작되었습니다.


7일.


남은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