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가슴살이 쓰다

그놈의 근육량

by 실버라이닝

운동을 시작한 첫 해,


인바디 결과지를 받으면

항상 확인하는 순서는


체지방률,

복부비만율,

내장지방 레벨,

그리고 마지막으로 BMI.


말 그대로

다이어트의 진행상태.



하지만 운동 4년 차.


이제 내가 집착하는 숫자는 단 하나.


근육량.



인바디 측정 날.


헬스장 분위기는

흡사 수능 보는 교실이다.


다들 평소보다

괜히 더 말이 없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사실 제일 긴장하는 사람은

트샘이다.


“공근육님.”


“…네.”


“체지방 10%, 근육량 22. 유지네요.”


잠깐의 정적.


공근육이 작게 웃는다.


회원들도 따라 웃고,

트샘은 더 크게 웃는다.


다행이다

오늘 PT는

평화.



“다음. 골디님.”


골디 언니가

결과지를 보자마자 입술을 떤다.


“… 나 어떡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한 달 넘게 식단 했는데…”


“왜 체지방은 늘고

근육은 줄어든 거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녀를 달랜다.


“언니 요즘 잠은 잘 자요? “

”스트레스받았나? “

“물 많이 마셨어요?”

“혹시… 변비는…”


갑자기

인생 상담에 장 트러블 상담.


이 질문들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 숫자를 마주한 심정을 알기에

아픈 상처에 ‘호’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


조용히 올라가는 한 사람.


이영백.


다이알 피티 전교 1등.


최근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3대 250을 치는

근육 엘리트.


지잉—


“드디어 체지방량 한 자릿수네요.”

“근육량은 2kg 늘어서… 27!”


와…


뉴스 속보.

이영백 근육량 또 증가.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는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는… 몰래 내 어깨를 짠다.


눈바디라도 …


“언니도 잘 나왔어요?”


“…어, 나?”


“체지방은 좀 떨어졌어.”


“근육은요?”


“…22 그대로야.”


공기 중에 숫자들이 떠다닌다.


22


22

22


22


22



영백이 조용히 웃는다.


위로도 비웃음도 아닌

그냥

알고 있었다는 듯한 미소


그녀의 이마에 27이라고 쓰여있는 것만 같다.


운동이 끝나고


영백은 남아서

또다시 하체 운동을 한다기에


공근육과

닭가슴살 도시락을 들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벚꽃이 떨어지고,

비둘기가 다가온다.


쟤네 왠지

우리랑 비슷한 표정인데.


너네는 우리가 부럽니?

우리는 영백이가 부럽다…



“영백이 봤어요?”

“스쿼트 100 들던데요?”

“맨몸 풀업도 하더라고요…”


“근육량 27이라니…”

“난 0.1 올리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새 2킬로가 늘었다니…”


“부럽다…”


“부럽다…”



닭가슴살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퍽퍽하다.


첫 입은

부러움의 맛.


근육량 27.

27

27


“와…” 했던 그 감탄이

닭가슴살 결 사이에 껴 있다.


오늘따라 닭가슴살이 더 질기다.

—-


브로콜리를 집는다.


씹자마자

은은하게 올라오는


질투의 맛.


“왜 쟤는 근육이 자꾸 늘지?”

라는 생각이


풀 향처럼 퍼진다.


건강한 척하는 맛인데

속은 꽤 씁쓸하다.



밥을 한 숟갈 뜬다.


투지의 맛.


밋밋할 줄 알았는데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온다.


“그래, 계속해보는 거야. “


배가 차오르고.


다시 닭가슴살.


아까보다 덜 퍽퍽하다.


이건


열정의 맛.


어떻게든 넘겨보려는


그 마음.



뚜껑을 덮다가

손을 멈춘다.



잠깐,


왜 우리는

우리 얘기는 안 하고

남 얘기만 하고 있는 거지?


왜 운동을

관찰일기로 바꾼 거지?



인바디 종이를 다시 펼쳤다.


누군가랑 비교하는 표가 아니라


어제의 나,

지난주의 나,

처음 시작했던 나.


그 수많은 내가 그려온

점과 선이 그려낸

성실한 곡선의 그래프.



그래,


나는 영백이가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안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언제나 위너.



22.


그건

초라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겨우겨우

여기까지 끌고 온

어마어마한 결과다.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식단을 챙겨 먹지 않았더라면,


그땐 정말 무서운 숫자를

받아 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병동에서 수액을 맞으며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인바디 결과지를 접었다.


이번엔

구기지 않고


고이 접어 가방에 넣는다.


“우리 그냥… 더 하자.”


“뭐를요?”


“… 운동도 더 하고,

고기도 더 먹고.”



그 말이

오늘 제일 멋있었다.


그리고

제일 현실적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남을 쳐다본다고

내 몸이 바뀌진 않는다는 걸.


바뀌는 건


다시

운동하러 가는 사람이라는 걸.



다음 날,


다시 헬스장에 갔다.


영백이 이미 와 있었다.


당연하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



조용히 바벨 앞에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럽냐?


응, 부럽다.



그러면?



하나, 하나부터 하자.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나처럼.


시선은 언제나 나에게로

내 소중한 근육 22kg의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