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전된 생쥐처럼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깜짝 놀라 눈이 크게 떠지고 얼얼해지지, 그런 것처럼.
누군가 ‘사랑은 이념’이라고 했다.
‘사랑은 감정’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사랑이라는 것도 정신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닿지 않으면
애당초 가능하지도 않다. 감정은 무작정 생기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말 사랑을 이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랑의 폭은 인류애적으로 넓어진다.
누구든 고통스럽지 않은 삶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동지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내 사랑은 너무 색깔이 강해...
'이념'처럼 밖으로 퍼져나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 끌려들어오고 집중되어 폭발한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를 말했을 뿐이지만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삶의 방식의 차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단어의 해석이 달라진다.
지금은 사랑이란 것이 어떤 감정의 상태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랑은 愛인가?
희노애락애오욕 중 하나라고 말하기엔 사랑은
다른 모든 감정들을 모두 다 싸안는 것만 같다.
사랑은 슬픔과 기쁨, 두려움이나 공포조차 먹어버린다.
그것은 감정이나 욕구들 속에 잉크처럼 스며 있다.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오'라는
가곡의 한 소절처럼 사랑하길 바란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끝까지 소진해버리는 사랑이란
얼마나 낭만적인 꿈이란 말인가.
바람이 불어서 커튼이 날리고 있다.
살아 있으므로 해서 마음에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이 모든 감정들이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해도 나는 살아있고
그것도 끄떡없이 살고 있다.
어쩌란 말인가, 삶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 일처럼,
메론을 잘라 같이 먹는 일처럼, 자잘한 일과 작은 기쁨들로
그 살(肉)을 채우고 있는데.
밋밋하고 보잘 것 없는 일상들이, 그리고
잘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는
가장 귀한 것들이 되어 반짝거리는
알 수 없는 모순 속에 살고 있는 것을.
바람이 분다.
내 마음과 눈으로, 입속으로, 내 온몸으로
바람이 간지럼을 타듯 스며들고 있다.